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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 부마민주항쟁 ㅣ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다드래기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4년 5월
평점 :
1979년 10월 16일. 이 날짜를 기억해야겠다. 잘 기억할 수 있다. 그동안은 모르고 지나쳤어도, 이제부터는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다.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를 기억하고 세세하게 따지며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미 몸으로 체득했다. 지난 일이라고 얼렁뚱땅 넘기려 들고 과거를 제대로 되짚지 못하는 우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잘못은 인정하고 바로 잡을 것은 고쳐가며 앞을 향해 가야한다. 누군가는 이미 다 지난 일이라며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혹은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할 지도 모른다. 특히 지금의 어린 아이들에게는 역사책에서나 접하게 되는,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할 한 줄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한 줄이 적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이 그 안에서 무너지고 짓밟혔는지를 지금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우리의 현재가 어떤 과거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애써 알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지금에 와서 우리가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러니 지금 우리가 할수 있는 최선은, 잘 알고 기억하는 것이다.
제목이 왜 <불씨>인지는 길게 설명할 필요도 없다.
"작은 불씨라도 바람을 타면 멀리 날아가기 마련이다."
어렸을 때 불조심에 대한 교육을 받으며 꼭 이 말을 했었다. '꺼진 불도 다시 보자!' 꺼진 불인줄 알았지만 그 안에 아주 작은 '불씨'가 남아 있으면 다시 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다시 활활 타오를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이 말을 누군가에게 그대로 돌려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심하라고, 작은 불씨가 얼마나 큰 불이 되어 타오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그러니, 그 불씨가 다시 터져나오기 전에 그런 불씨를 만드는 일부터 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싶어졌다. 어디에 대고 말하면 이 말이 들릴까.
부마민주항쟁은 5.18민주화운동이나 6.10민주항쟁에 비해 잘 알지 못하는 우리의 역사란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이번 책을 읽으며 부마민주항쟁이 그 분명한 시작의 불씨였고, 이 불씨를 통해 그 다음, 또 그 다음의 민주화운동이 가능할 수 있었다. 국가라는 거대한 힘을 상대로 작고 힘없는 시민들이 나서서 더 큰 힘을 만들어 들고일어났던 항쟁이었음에도 역사적으로도 또 국가에서도 그 의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혹시라도, 재난이나 사건은 숫자로 기억된다는 말이 여기에서도 적용된 것은 아닐지. 우리의 역사를 다시 잘 들여다보고 꼼꼼하게 살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과?
화가 나는 지점 중 하나가, 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있지만 가해한 이는 없는 것인지. 누군가의 잘못으로 일이 벌어졌다면, 그 잘못을 인정하고 빠르게 사과하는 것이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어느 누구도 먼저 잘못했다며 사과하는 경우를 볼 수가 없다. 분명 맞았는데 어느 누구도 때리지 않았다고 하니, 맞은 사람만 억울한 것으로 끝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말이다. 억울하고 화가 나고 속상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하지 못한 채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 수밖에 없었던 분들에게 이제라도 할 수 있는 것은, 뒤늦게나마 과거의 문제를 제대로 확인하여 옳고 그름을 명확히 판단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으려면, 우리가 제대로 기억하고 의미를 되새기는 것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지금 우리 사회가 쉽게 만들어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싶다. 특히 민주화는 너무 많은 희생과 고통의 시간들을 거쳐 겨우 지금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 그 당연한 것을 얻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아야했던 그 용기는, 아직도 내가 할 수 있으리라 자신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래서 무척 대단하고 경이로우며 또 화가 나고 너무나도 억울할 수밖에 없다. 권력과 힘을 손아귀에 쥐고 누구든 함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 속에 몰아넣었는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끔찍하다. 그러니, 이 모든 일들이 쉽게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화만 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알고 할 수 있어야겠다.
그리고 작은 '불씨'를 멀리까지 보낼 줄 알았던 모든 분들의 용기와 행동에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