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 마치 세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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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지와 일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일지(日誌) 그날그날의 일을 적은 기록. 또는 그런 책
일기(日記)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

애정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렇게 뜻이 나와있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날마다', '겪은', '생각, 느낌 따위', '개인의'에 있었다. 일지와 일기의 차이. 왜 일지 같지만 일기여야 하는지는 여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날마다 빠짐없이 겪은 개인의 생각과 느낌이 포함되어야 일기인 거니까.

사실 처음엔 일지였다. 일기라는 이름에는 어쩐지 낯간지러운 구석이 있다.(16쪽)

나도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지를 써볼까?'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금의 나의 일기(라기 보다는 작은 수첩 크기의 다이어리)와 비교했을 때, 좀 더 촘촘하게 하루의 기록을 남겨보는 것은 어떨지, 그렇다면 손으로 쓰는 것은 무리가 있고 어떤 공간을 활용해서 쓰면 좋을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헌데 이 책을 점점 더 읽어가면서 나의 문장과 글쓰기 능력,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매일의 기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회의가 들었다. 누구에게 읽힐 것도 아니고 또 그런 마음이라면 나라도 읽어줘야 하는데, 과연 나는 과거의 기록을 하나씩 들춰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싶어서. 또 하나의 핑계는 매일이 비슷한 일들의 반복이고 지금 그 작은 수첩 크기 일기장에 쓰는 내용도 매일이 거기에서 거기인 느낌을 뿐인데, 더 자세한 일지가 나에게 소용이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덮으며, 일지를 써보겠다는 마음도 우선은(그래도 마음 한켠에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살짝 남겨두고), 접었다.

겨울에서 다시 겨울, 그리고 '다시 봄'에서 또 가을까지. 여덟 계절을 거쳐 한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일기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딱 알맞다!)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봄에서 겨울까지, 그리고 다시 봄에서 겨울까지가 아니라, 겨울에서 가을까지,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했을 작가의 삶을 상상하며 또 다시 봄에 나온 책을 손에 들고 있는 기분도 좋았다. 겨울의 찬 기운이 코끝을 알싸하게 만들며 번쩍 눈 뜰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작인 것 같기도 해서 상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기여서 좋은, '생각, 느낌 따위'에 공감하는 내가 보였다. 괜히 일기 안에서 문장을 고르고 싶어지고 고른 문장을 나의 문장으로 만들고 싶어지는 마음도 생겼고, 그러면서 살짝 불안하고 조급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책을 읽으면 고민했던 부분이 있있으니까. 과연 일기는 내가 어떻게 읽어내야 제대로 독서했다고 할 수 있을까. 고요서사에서 진행된 워크숍에서 일기를 함께 읽으며, 과연 그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론은, 자서전이 아닌 일기를 읽고 있는 것이니, 그 사람을 말아야겠다는 생각 말고, 그 날마다의 일상 속에서 드는 하루하루의 마음을 그냥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의 일상도 매일 반복되어도 그날그날의 마음과 생각까지 반복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일상에서의 나를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알아채게 되는 법이니까.
가령, 이런 부분들에서.

그러니까 사람들이 왜 책을 읽는지, 그리고 나는 왜 책을 쓰는지...(99쪽)
_그러니까. 나는 왜 책을 읽을까. 가끔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책을 못 읽는 시간에 마치 금단증상이 일어나는 듯 불안하고 해야할 것을 다 하지 못한 찝찝함이 들기도 하니까.

주말은 늘 정신이 없다. 나윤이랑 놀아 주고 밥 먹고 정리하고 놀아 주고 그러다 보면 또 먹을 시간이 오고 정리하고 놀아 주고 그러는 내내 나윤이는 무언가를 요구하고 요구하고 또 요구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114쪽)
_나도 육아 경험이 있으니, 어떤 마음일지 충분히 공감된다. 그런데 이 때 갑자기 생각났다. 얼마 전 어느 시인이 말했다. 아이는 우리에게 온 선물이라고. 그래서 어떤 것도 모두 다 요구해도 된다고. 시인의 말대로라면, 나윤이의 요구를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자정이 넘어 다들 돌아갔고, 지은이가 잠에서 깬 나윤이 재우러 들어간 사이, 나는 설거지하고 또 한가득 쌓인 재활용품 분리수거했다. 미루지 않기. 조금 늦었지만 그걸 올해 목표로 삼아야겠다.(189쪽)
_자정 넘은 시간 새벽에, 부지런히 설거지에 쓰레기 정리까지. 요즘 저녁밥만 먹으면 온몸의 기운이 하나도 없는, 체력 바닥의 상태가 되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 심지어 얼마 전에는 밥 먹은 밥그릇 하나와 수저 한 벌이 전부인 설거지도 자고 일어나 아침으로 미룬 나였기에, 반성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미루지 말아야겠구나, 싶으면서도 벼락치기가 이미 한몸이 된 지 오래되어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아찔하기보다는 막막한, 비명이 터져 나오기보다는 이대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오는, 어떤 거대한 체념과도 닮은 그런 기분. 다시 생각하니 그건 일이 잔뜩 밀렸는데 도저히 제 시간에 해낼 길이 없을 때 느끼는 기분과 닮았다. 다시 말해, 나는 늘 그런 기분이라는 거다...(214쪽)
_일이란 하나가 끝나고 그 다음 하나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우선순위 없이 급급한 상태로 계속 하나의 일로 다른 일을 밀어내는 형상이니 말이다. 숨 쉴 틈도 고민과 생각의 여지도 주지 않고 밀려드는 기한을 맞추기 위해 형식적으로 손과 몸을 움직여야만 겨우 해낼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시즌제로,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어야 회복할 수 있는 법인데, '늘 그런 기분'이면 너무 힘들기만 할 것 같다.

그래도 날마다 매일, 반복같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은 일상을, 작가처럼 나도 살아가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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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저택
김지안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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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을 보며 떠오르는 기억들...
하나, 태어나서 대학시절을 보낼 때까지 한 집에서 살았다. 주택이었고 주택가 골목의 가장 끝 코너집이었고, 그 코너 담에는 빨간 넝쿨장미가 가득했다. 이맘 때쯤이면 담을 타고 자라난 장미의 향이 진동했고, 우리집은 늘 넝쿨장미집이었다.
둘, 직장 뒤뜰에 커다란 목련 나무가 있었다. 너무도 탐스럽고 아름답게 꽃을 피워내어 저절로 고개를 뒤로 젖혀가며 목련을 감상하곤했다. 때마침 행사 사진 찍는 담당이 되어 커다란 카메라를 무겁게 목에 걸고 곳곳을 누비고 다녔는데, 그때 이 아름다운 나무를 사진에 남겼다. 그리고 몇 달 안 지나 누군가가 나무의 가지들을 댕강댕강 다 잘라버렸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공포스럽기까지했다.
셋, 어렸을 때부터 제일 좋아하는 꽃이 장미였다. 언제나 변함없이 장미가 제일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노란 장미를 무척 사랑했다. 노란장미 화분을 선물받아 잘 키워보려했지만, 실내 베란다 화분에서는 잘 자라지 못했다. 진딧물도 너무 많이 생겨, 결국 실패했다.

지나 생각해보니 그 각각의 순간들에서 이 모든 꽃들을 사랑했던 거였다.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 사랑에 또한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장미 저택>의 장미들은 정성을 다 하는 멧밭쥐들과 멍멍 씨 덕분에 제 빛깔과 향기로 다시 피어날 수 있었고, 그렇게 피어난 모든 장미들이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아마 미미 씨도 그런 사랑스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어 결국 다시 장미를 가꿀 수 있게 된 것이겠지. 사랑은 주머니에 넣은 송곳처럼 어떻게 해도 티가 나는 법. 그러니 미미 씨가 혼자 방 안에 있기에는 사랑의 마음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숨길 수 없는 마음, 사랑의 마음.

멍멍 씨, 잠깐만요.
자르지 말고 그냥 둘까요?
조금 작더라도 괜찮을 것 같아요.
모두 함께 피면 좋겠어요.

꽃으로 피어나기 전의 봉우리만으로는 어떤 꽃이 피어나게 될지 정확히 알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어느 누가 앞으로의 일에 대해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그저 제 힘으로 잘 피어날 수 있도록 지켜보는 수밖에. 그러면 제각기 다른 속도와 크기대로 크겠지만, 꼭 알맞은 자신만의 모습으로 꽃은 피어나게 될 것이다. 이때 조금 작아도,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꽃이 될 것이다. 잘 돌보고 보살피며 기다려주기만 한다면.

미미 씨와 멍멍 씨가 멧밭쥐들의 도움 없이도 다시 장미 정원을 잘 가꾸어나갈 것이다. 특히 제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넘치는 사랑의 마음을 잘 표현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장미를 가꾸며 얻은 가장 소중한 깨달음은 사랑을 감추지 않고 있는 힘껏 표현하며, 그 자체의 있는 그대로를 아낄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마음을 누구와도 함께 나눌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장미 저택에 초대받아 가는 이들의 표정과 마음이 어느 때보다 들뜬 이유가, 미미 씨의 그 마음이 모두에게 전달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것, 그 마음을 마음껏 표현하며 모두와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 이야기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유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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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의 시선 (반양장) - 제17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125
김민서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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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율은 어떤 시선을 갖고 있다는 걸까 궁금했다. 세상은 자신이 보려는 방향으로 보게 되어 있으니까. 그렇다면 율은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다는 걸까. 세상을 보는 시선은 어떻게 그리고 누가 만들어 주었으며, 왜 그런 방향의 시선을 갖게 되었을까.

나는 지금껏 나와 같은 사람을 본 적 없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을 발로 인식한다. 나는 어릴 적부터 사람의 눈을 보는 게 싫었다.(14-15쪽)

아래를 향하는 율의 시선은, 더 정확히 사람의 눈을 보지 않는 율의 시선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놓여있었던 과거의 경험이 만들어 낸 마음의 행동이었다. 자신을 향하고 있는 타인의 시선은 닿지만 그 시선에서 어떠한 따뜻함은 느낄 수 없었던 율에게 있어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도 있었다. 비극적인 극단의 상황에서 누구 하나 자신을 온전히 봐주지 않고 있다는 차가운 단절은, 다시는 그 시선을 믿지 않겠다는 불신, 바로 비정상의 상태를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이런 율의 시선에 대한 책임이 율에게 있지 않다는 것도 너무나 명확했다.

강약약강. 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게, 약한 사람에게는 강하게. 그것이 내가 사는 방식이었다.(9쪽)
물이 들어 있을 때는 가지고, 비어 있을 때는 버린다. 잔뿐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일까.(74쪽)

사람에게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은 과연 무엇일까. 상대를 자신의 필요 여부에 따라 쥐었다 놓았다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쉽고 또한 가능할 수 있는지를 율은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말과 행동을 했을 때 상대를 자신의 뜻대로 둘 수 있는지, 얼마나 그 관계를 인위적으로 조절하고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 율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얼마나 가식적이고 거짓 투성이인지,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친구도 가식적이고 거짓말 투성이로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오히려 율에게는 더 자연스럽고 편했던 것일 수도 있다.

"거짓말."(...)
"잘하는 거나 좋아하는 게 뭐냐며. 네가 물어봤잖아. 나 거짓말 잘해."(83쪽)

그래서 율이 선택한 생존 방식이, 거짓말이었지 않을까. 거짓말을 통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도 또한 받지도 않겠다는 간절함이 묻어났다. 그런 율에게 소설를 쓰라고 추천을 해 주는 이도해는 과연 어떤 아이인 걸까. 오히려 도해는 율과 반대로 하늘만 본다. 하늘을 구름, 별을 통해 도해는 어딘가로 숨고싶어 한다. 이도해가 아닌 북극성. 사람들이 길을 잃었을 때 길잡이가 되어 주는 반짝이는 별. 그런 도해와 율의 만남은, 서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던 인연이었을 것이다.

새는 계속 쪼아 댔다. 틈새를 쪼고 또 쪼아 댔다. 고목이 있던 곳에는 까맣게 썩어 버린 톱밥만 간간이 흩날릴 뿐이었다. 새는 절망했다. 더 이상 먹이를 찾아 날 힘이 없었다.(104쪽)
모두가 외계인이라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헐뜯고, 그리고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것이다.(142쪽)

도해의 추천으로 쓰기 시작한 율의 소설은, 이제 더 이상 강한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할 수 있는 어떤 힘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챌 수 있도록 해 주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외계인 같은 서로를 알아봐주기를 위한 거짓이 아닌 진실의 마음을 열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안율, 너 좀 변한 거 알아?"
"어디가?"
"눈. 눈빛이 아주 재수 없어졌어."
눈빛? 내가 되묻자 서진욱은 내가 요즘 대화할 때 발이 아니라 눈을 본다고 말했다.(212쪽)

그리고 드디어 발이 아니라 눈을 볼 줄 아는 율의 성장. 중학교 졸업장은 무척 얇고 가벼워 금방 바람에 날아가지만, 그런 졸업장을 잡아주고 챙겨주는 가족,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잘 알게 되었으니, 율은 이제 고등학생이 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율의 눈빛이 얼마나 재수 없어졌는지 보고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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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다운 게 뭔데? 창비청소년문고 43
저스틴 밸도니 지음, 이강룡 옮김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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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용감해야지, 똑똑해야지, 멋있어야지, 남자는 더 커야 해, 남자애들은 원래 그래... 차례만 봐도 어마무시하다. 내가 남자가 아니어서 더 그런지 혹은 남자가 아닌 이유로 좀 덜 그런지는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저 이 책에서의 '남자'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이 책을 어떻게 감당하고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한참 고민하게 된다. 이미 시작도 전에 저자는 남자가 읽어야 할 책이라고 단호하게 말했고,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그럼에도 꼭 읽겠다고 나서는 나같은 사람들은 분명 있을 수밖에 없고 읽어버렸으니, 그 다음은 모두 나의 몫이 되었다. 가만히 이 책의 효용과 의미를 따져볼 필요가 있겠다 싶다.

우선, 이 책을 굳이 남자에 국한지어 생각할 필요는 없겠다 싶다. 이 책에서 '남자'라는 단어를 '여자'라는 단어로 바꾼다면 어떨까 생각해보게 되니까(왠지 '여자다운 게 뭔데?' 책이 곧 나와야할 것도 같은 느낌적인 느낌!). 아마 많은 부분의 내용과 사례는 달라져야 하겠지만, 본질적으로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의도는, 성의 구분을 통해 사회적으로 만들어내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져야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굳이 이 책을 '남자'로만 읽을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면에서 남자 청소년들이 꼭 읽으면 좋을 이야기들이 있기는 하다. 특히 성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남자 아이들이 좀 잘 알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의 사회적 지식을 친구나 혹은 미디어를 통해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친구와 미디어가 언제나 올바른 이야기를 해준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아이들에게 누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해줄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줘야하는 사람들 역시도 '남자란'의 생각을 머릿속에 갖고 있으니, 얘기해줄 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진짜 남자 청소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책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긴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책에서 주의를 주고 있는 상황들은 굳이 '남자'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할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 억지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은 이 세상에 너무도 많고 그건 남자건 여자건 모두에게 벌어지는 일들이니까. 가령 남자만 뛰어내려야 용감한 것은 아니고 여자도 진짜 용기를 가져야할 일들은 너무도 많다. 그러니 이 책이 주고 있는 메시지는 남자만이 아닌 우리 아이들 모두에게 이 사회를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살아내야 하는지를 알려주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결국 이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으로, 나 자신을 제대로 알고 유연해질 수 있는 마음에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주변의 누군가가 아이의 잘못을 지적하고 주의를 주며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너, 이 약속 안 지키면 남자 아니다!' 이 말의 충격에 눈이 커졌고, 그 장면을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할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언어 속에 얼마나 위험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우리 아이들이 성장해서 도달해야하는 가장 최종 목표는 사람이 되는 것일 거다. 남자 사람, 여자 사람, 이런 거 말고 그냥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나 자신을 만들어나가는 것. 누군가가 입혀놓은 갑옷도 모두 다 벗어버리고 순수하게 나의 내면을 보여주며 다른 이와 관계맺을 수 있는 소통을 해 나갈 수 있는 진정한 '나'를 만나는 것.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이들이 가져야할 중요한 덕목이지 않을까.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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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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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표지 그림이 예쁘다. 각 단편 시작할 때마다 들어가 있는 간지의 흑백은 컬러 표지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확실히 표지 그림에 먼저 눈길이 가는 책이다. 그리고나서 그림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의자가 2개다. 누구와 누구의 자리일까. 의자의 방향도 완전 나란하지 않고 둘 중 하나는 비스듬하다. 두 사람이 앉는다면 살짝 서로를 향할 수 있을 정도로 틀어져 놓여 있다. 의자도 일반 식탁 의자가 아니다. 휴양지나 야영지에서 펼쳐놓고 앉으면 편안할, 그런 의자다. 누구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의자일까. 그리고 누구를 위해 차려진 테이블일까. 사람은 없고 사람을 기다리는 의자와 테이블 위의 음식들이 있을 뿐이다. 이곳에 앉으면 기분이 어떨까. 어떤 마음으로 이 공간을 찾아오게 될까.

표지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게 된 이유는, 이 소설들의 인물들에게서 느껴지는 느낌이 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결핍되어 있는 듯하면서도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는 나름 각 인물들이 흐트러지지 않으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잘 붙들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분명 상처가 있고 쉽지 않은 삶의 여정을 겪었으며, 만족스런 현재를 살고 있는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한 두가지의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헌데 이 소설들 속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물들은 특히나 더 깊은 우물을 마음 한켠에 만들어놓고 있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래서 마치 그 우물의 깊은 곳에서부터 울림이 차오르는 듯한, 서늘하고 차가우면서도 아득한 느낌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헌데 다행인 것은, 이들이 끌어안고 있는 우물에는 튼튼하고 긴 밧줄에 두레박이 매달려 있고, 그 두레박에 깨끗하고 맑은 물을 잔뜩 담아 끌어당기고 있는 인물들의 모습이 연상되었다는 것이다. 몰론 이 밧줄은 각 인물들이 스스로 찾아내고 엮은 것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의 식사나 카풀해준 후배와의 식사,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간 뒤 마주한 초등학교 동창과의 식사, 그리고 추워하고 배고파하는 후배와의 식사 등, 등장인물들의 식사 장면들을 보면 이들의 식사는 마치 그동안 인물 간 관계를 가로막고 있던 편견이나 큰 담을 한순간에 허무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 마주보고 앉아 밥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허물도 가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보일 수 있는 관계가 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니 이들의 마음은 이미 식사를 통해 한결 편안해진 마음이 되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의 무게나 짐, 마음에 갖고 있던 응어리가 조금은 풀어지는 그 시작이, 이런 식사였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인물들의 삶이 조금은 더 편안하고 안정적인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책의 제목으로 쓰인 <가벼운 점심>이 어쩌면 우리 삶에서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꼭 격식을 차리고 대단한 식사를 하지 않아도, 가볍게 하지만 오래 그리고 솔직하게 하는 식사의 자리가 만들어 내는 시간이 우리의 삶을 조금은 더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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