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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쓸 것, 뭐라도 쓸 것 - 마치 세상이 나를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금정연 지음 / 북트리거 / 2024년 4월
평점 :
일지와 일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일지(日誌) 그날그날의 일을 적은 기록. 또는 그런 책
일기(日記) 날마다 그날그날 겪은 일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적는 개인의 기록
애정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이렇게 뜻이 나와있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날마다', '겪은', '생각, 느낌 따위', '개인의'에 있었다. 일지와 일기의 차이. 왜 일지 같지만 일기여야 하는지는 여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을 것 같다. 날마다 빠짐없이 겪은 개인의 생각과 느낌이 포함되어야 일기인 거니까.
사실 처음엔 일지였다. 일기라는 이름에는 어쩐지 낯간지러운 구석이 있다.(16쪽)
나도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지를 써볼까?' 싶은 충동이 일었다. 지금의 나의 일기(라기 보다는 작은 수첩 크기의 다이어리)와 비교했을 때, 좀 더 촘촘하게 하루의 기록을 남겨보는 것은 어떨지, 그렇다면 손으로 쓰는 것은 무리가 있고 어떤 공간을 활용해서 쓰면 좋을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다. 헌데 이 책을 점점 더 읽어가면서 나의 문장과 글쓰기 능력, 그리고 나라는 사람의 매일의 기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은 회의가 들었다. 누구에게 읽힐 것도 아니고 또 그런 마음이라면 나라도 읽어줘야 하는데, 과연 나는 과거의 기록을 하나씩 들춰보며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싶어서. 또 하나의 핑계는 매일이 비슷한 일들의 반복이고 지금 그 작은 수첩 크기 일기장에 쓰는 내용도 매일이 거기에서 거기인 느낌을 뿐인데, 더 자세한 일지가 나에게 소용이 있기는 할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덮으며, 일지를 써보겠다는 마음도 우선은(그래도 마음 한켠에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살짝 남겨두고), 접었다.
겨울에서 다시 겨울, 그리고 '다시 봄'에서 또 가을까지. 여덟 계절을 거쳐 한 사람의 일기를 훔쳐보는(일기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딱 알맞다!)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봄에서 겨울까지, 그리고 다시 봄에서 겨울까지가 아니라, 겨울에서 가을까지, 그리고 다시 겨울을 맞이했을 작가의 삶을 상상하며 또 다시 봄에 나온 책을 손에 들고 있는 기분도 좋았다. 겨울의 찬 기운이 코끝을 알싸하게 만들며 번쩍 눈 뜰 수 있게 만들어주는 시작인 것 같기도 해서 상쾌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기여서 좋은, '생각, 느낌 따위'에 공감하는 내가 보였다. 괜히 일기 안에서 문장을 고르고 싶어지고 고른 문장을 나의 문장으로 만들고 싶어지는 마음도 생겼고, 그러면서 살짝 불안하고 조급했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 책을 읽으면 고민했던 부분이 있있으니까. 과연 일기는 내가 어떻게 읽어내야 제대로 독서했다고 할 수 있을까. 고요서사에서 진행된 워크숍에서 일기를 함께 읽으며, 과연 그 안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오고갔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론은, 자서전이 아닌 일기를 읽고 있는 것이니, 그 사람을 말아야겠다는 생각 말고, 그 날마다의 일상 속에서 드는 하루하루의 마음을 그냥 따라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나의 일상도 매일 반복되어도 그날그날의 마음과 생각까지 반복되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을 일상에서의 나를 타인의 삶을 관찰하며 알아채게 되는 법이니까.
가령, 이런 부분들에서.
그러니까 사람들이 왜 책을 읽는지, 그리고 나는 왜 책을 쓰는지...(99쪽)
_그러니까. 나는 왜 책을 읽을까. 가끔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으니까. 책을 못 읽는 시간에 마치 금단증상이 일어나는 듯 불안하고 해야할 것을 다 하지 못한 찝찝함이 들기도 하니까.
주말은 늘 정신이 없다. 나윤이랑 놀아 주고 밥 먹고 정리하고 놀아 주고 그러다 보면 또 먹을 시간이 오고 정리하고 놀아 주고 그러는 내내 나윤이는 무언가를 요구하고 요구하고 또 요구한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114쪽)
_나도 육아 경험이 있으니, 어떤 마음일지 충분히 공감된다. 그런데 이 때 갑자기 생각났다. 얼마 전 어느 시인이 말했다. 아이는 우리에게 온 선물이라고. 그래서 어떤 것도 모두 다 요구해도 된다고. 시인의 말대로라면, 나윤이의 요구를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자정이 넘어 다들 돌아갔고, 지은이가 잠에서 깬 나윤이 재우러 들어간 사이, 나는 설거지하고 또 한가득 쌓인 재활용품 분리수거했다. 미루지 않기. 조금 늦었지만 그걸 올해 목표로 삼아야겠다.(189쪽)
_자정 넘은 시간 새벽에, 부지런히 설거지에 쓰레기 정리까지. 요즘 저녁밥만 먹으면 온몸의 기운이 하나도 없는, 체력 바닥의 상태가 되는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일. 심지어 얼마 전에는 밥 먹은 밥그릇 하나와 수저 한 벌이 전부인 설거지도 자고 일어나 아침으로 미룬 나였기에, 반성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 미루지 말아야겠구나, 싶으면서도 벼락치기가 이미 한몸이 된 지 오래되어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아찔하기보다는 막막한, 비명이 터져 나오기보다는 이대로 작은 신음이 새어 나오는, 어떤 거대한 체념과도 닮은 그런 기분. 다시 생각하니 그건 일이 잔뜩 밀렸는데 도저히 제 시간에 해낼 길이 없을 때 느끼는 기분과 닮았다. 다시 말해, 나는 늘 그런 기분이라는 거다...(214쪽)
_일이란 하나가 끝나고 그 다음 하나가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우선순위 없이 급급한 상태로 계속 하나의 일로 다른 일을 밀어내는 형상이니 말이다. 숨 쉴 틈도 고민과 생각의 여지도 주지 않고 밀려드는 기한을 맞추기 위해 형식적으로 손과 몸을 움직여야만 겨우 해낼 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시즌제로, 그렇지 않은 시기가 있어야 회복할 수 있는 법인데, '늘 그런 기분'이면 너무 힘들기만 할 것 같다.
그래도 날마다 매일, 반복같지만 또 그렇지만은 않은 일상을, 작가처럼 나도 살아가야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