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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아이들
한요나 지음 / &(앤드) / 2024년 5월
평점 :
외모로 등급이 나뉘는 사회. 겉모습으로 어느 구역 출신 사람인지를 구분하고 그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사회. 나와 같지 않거나 낮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무시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사회. 숫자와 알파벳으로 경계를 구분하는 사회. 필요에 따라서는 아이든 어른이든 이용하려드는 사회. 그런 사회 속에 하루와 주하가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런 사회를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빌리와 레오니가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신물이 나는 킹이 있었다.
우리 사회의 미래가 진정 이런 모습이라면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어떤 미래를 꿈꾸라고 이야기해야 할까, 깊은 숨을 들이쉬게 만들었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 모습에 대한 상상의 그림이 이렇다면, 벌써부터 숨이 막혀오는 느낌이었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과 그것이 먹혀들어가는 모습은, 이 사회를 더 강력한 계급사회로 만들고 철저히 사람을 줄세워 권력과 이익만으로 사회와 사람들을 움직이도록 학습시키틑 결과를 낳았다. 사회가 숫자로 구분되어 있듯 학교의 학급도 알파벳으로 구분하여 출신과 태생에 따라 이미 서열화된 사회 안에서 이를 당연히 여기도록 교육시키고 있는 꼴이었다. 어디에서도 평등이나 공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니 하루나 주하가 감당해야 할 주변 아이들과 사회의 눈초리는 매서울 수밖에 없었다. 허락되지 않은 곳에 발을 디딘 다른 종족에 대한 경계와 무시, 오히려 이용하려드는 불법적인 거래는 너무도 명확한 폭력이었다. 그리고 이런 폭력을 부추기는 것은 오히려 학교와 사회였다. 가진 자들의 논리와 판단이 사회를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사회였다. 아무리 SF소설이지만, 이런 SF는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주하의 빨간 머리와 하루의 긍적적 마인드, 주변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거리낌없이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빌리와 레오니는 그 존재만으로도 빛났다. 가만히 보면, 이 아이들 중 어느 누구도 까만 머리카락으로 살고 있는 아이는 없었다.
머리칼이 콩처럼 까만 아이들은 모두 A반이었다. 콩보다 더 검은 머리칼들. 일명 대지의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축복받은 학생이었다.(9쪽)
이 사회는 까만 머리여야 온전한 사람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A반임에도 불구하고 까만 머리를 염색으로 가리고 다니는 아이들과 빨간 머리여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공간을 채우고 있는 아이, 그리고 이런 모든 아이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 흙갈색의 아이까지. 이 아이들은 모두 다르지 않았다. 이게 이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든 가장 첫 번째 생각이었다. 염색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까만, 콩보다 더 까만 머리카락으로 염색하려들 것 같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여기서 한 가지 희망을 읽었다. 어쩌면, 소설 속 사회에서 더 나아간 미래를 꿈꾸는 아이들은 어른과 반대 방향을 향해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결국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거야?"
"응?"
"어른들이 다 결정하잖아."
"우리가 아닌 누군가가 결정하는 거지. 우리를 대신한다고 하지만 전혀 대신하지 못할 사람들이 대표로 정하는 거야."(244쪽)
아이들은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고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의 눈에 비춰진 세상이 사실 가장 정확한 모습일 거라는 생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이 경우도 그런 경우. '전혀 대신하지 못할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이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어 놓았을 거라는 것. 그런 어른들에게 이 사회를 맡길 수 없다는 것. 그러니 미래는 직접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 하루와 주하가 마음을 먹고 결심하게 되는 이 과정이 멋지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이 소설을 읽고 든 두 번째 생각. 소설 속에서 아이들은 대화 속에서 아직 어리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이건 어리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른다가 아니라, 어리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읽혔다. 그만큼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주하가 COS라서, 능력이 있으니까 그렇다는 뜻이 아니라, 주하든 하루든, 어느 아이가 되었든간에 이 아이들이 알아챈 자신의 마음의 크기가 이 정도로 크다면 충분히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는 거다. 이 대목에서 어른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주하가 왜 빨간 머리일까. 그리고 5구역에서 발견된 빨간 머리, 노란 머리의 다양한 머리카락 색의 아이들은 또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해 보았고, 그래서 내린 답은 '무지개'. 우리는 무지개를 일곱 색깔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색깔과 색깔 사이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이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저 사람이 편의상 언어적으로 구분해놓은 표현일 뿐. 어찌보면 이 소설 속 경계는 무지개의 경계와 비슷하지 않을까. 사실은 명확히 구획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경계는 모호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 명확히 말할 수 없다. 그건, 색깔이 어느 한쪽 끝에서 반대쪽 다른 끝까지 이어져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아이들이 만들어나갈 사회는 무지개와 같은 사회일 수 있지 않을까. 다양한 색이 공존하고 하나의 색에서 다른 색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 섞일 수 있는 사회. 어디까지라는 부분의 차별 없이 누구나 어디에서라도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에 대한 가능성을 이 아이들이 찾은 것은 아닐지.
빠져들어 있었다. 청소년 SF소설만은 아닌 듯싶다. 오히려 어른인 내가 느끼고 깨달은 바가 컸다. 상상 속의 이야기이지만 지금을 살고있는 나에게도 뜨끔하게 만드는 지점이 있었다. 공들여 읽으면 좋을 이야기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