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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수상한 놀이공원 기린과 달팽이
기디언 스테르 지음, 마리아키아라 디 조르조 그림 / 창비교육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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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표지를 두르고 있는 미농지(!) 사이로 비치는 그림자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미농지를 벗긴 후 화려하고 밝은 빛을 받으며 돌아가는 회전목마는 여느 놀이공원의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회전목마를 즐기고 있는 대상이!
놀이공원에 폐장하고 하나 둘 사람들이 떠나면, 나무와 풀숲 사이에서 이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던 동물들이 나타난다. 어둠 속 두 눈을 반짝이며! 그리고, 그들을 위한 놀이공원이 다시 개장한다. 아주 화려하게, 마치 처음부터 그들의 공간이었던 듯.
그리고, 고리던지기에서 상품으로 물고기를 선물받은 여우는, 놀이공원을 즐기기에 불편했을 법도 한데, 절대 손에서 놓지 않고 놀이기구를 즐긴다.(살짝, 즐기는 건지 확신할 수는 없다. 여우의 표정을 읽을 수 없기도...) 그저 마치 처음부터 자신의 손에 들려있었던 듯, 어디에 놓고 갈 수 없는 소중한 것이나 되는 듯, 아니면 그것이 여우 스스로가 해야 할 임무라도 되는 양, 끝까지, 다시 놀이공원이 폐장을 하고, 개장 준비를 하느라 분주히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까지도 손에서 놓지 않는다.
과연 이 물고기를 어쩌려고 이리도 열심히 들고 다니는 걸까? 폐장하고 다시 숲과 나무 사이로 돌아가는 동물들 사이에서 여우는 따로 떨어져 나온다. 그리고 조용히 물가로 가, 물고기가 든 봉지를 이빨로 물어 뜯는다.
헙! 숨을 들이마셨다. 어쩌려고, 설마! 하는 마음에 심장이 콩닥거리며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책장을 쉽게 넘기지 못하고 한참 망설였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조마조마하게 살며시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그 다음은...

여우에게 이렇게 쉽게 마음을 빼앗기면 안 되는데, 싶으면서도 기여이 가는 마음을 어쩌지 못했다. 이 작은 동물에게 감동했고, 그리고 슬펐다. 과연 나는 무슨 결말을 상상했던 것일까. 그 상상은 동물의 마음이었을까 인간의 논리였을까. 한편으로 반성하게 되었고, 어떤 설명으로도 변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아직도 자연과 동물들에게서 더 많은 것들을 배워야하는 존재로구나 싶었다.
인간의 논리로 설명한다면, 인간의 공간에 동물들이 몰래 들어논 격이다. 하지만 동물의 마음으로 본다면, 애초부터 이 공간은 동물들의 것이지 않았을까. 동물들의 숲과 나무들 한 가운데에 숲과 나무를 없애고 베고, 처음부터 인간들이 그 공간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 너무도 당연하게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그리고, 동물들은 자연스레 사람들 주변으로 밀려나며 사람의 시선에서 도망쳐야만 했던 것은 아닌지.
이런 마음들 사이에서도 책을 읽으며 키득, 웃을 수밖에 없었던 장면은, 동물들의 놀이공원 폐장 때가 다가오자, 주섬주섬 동물들이 자신들이 즐긴 놀이공원을 청소하고 쓰레기를 줍는 장면이었다.뭐지? 싶었다. 사람들을 피해 다시 숨어야 하는 동물들이 하는 맞는 행동인가, 싶었다.
글자 있는 그림책보다 더 많은 얘기를 담고 있는 그림책이다. 그림책 속에 세상이 있고 사회가 있고 자연이 있으며, 그 속에 인간과 동물이 있다. 정말 '수상한' 그림책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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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목 지음 / 난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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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 읽을수로 계속 읽게되는 소설이었다. 소설이지만 소설로 읽히기보다는 시이기도 하고, 일기이기도하고, 깊은 사색이기도 한, 그래서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는 책이었다. 여러 장을 넘겨 읽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읽었다. 중반까지 읽다가도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또 다시 읽었다. 거의 다 읽어갈 무렵, 다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기어이 끝까지 다 읽어냈다. 마지막 책장을 넘기고, 작가의 말까지 다 읽고나서는, 이 글을 다 쓰고나면 다시 처음부터 읽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이야기였다.
표지와 제목만으로 뭔가 어둡고 묵직함의 느낌이 제일 먼저 전해졌다. 재라면, 무언가가 타고 남은, 그래서 그렇게 남은 재는 타기 전 모습에서 쪼그라진 채 일정 형태를 유지하다, 자칫 가볍게 스치는 손길이나 바람에도 언제 어떤 모양을 지니고 있었냐는 듯, 금새 가루로 먼지로 날아가 푸석하게 가라앉거나 혹은 날아가버린다. 그런 재라니, 그리고 한쪽이 뜯겨나간 듯한 표지는 무언가 한 구석이 찢겨나가버린 느낌이었다. 전체가 다 사라진 것도 아니고 그저 한 귀퉁이가 조금 그래진 것뿐인데도, 첫 느낌이 가볍지 않았다(재는 가벼운데, 그 재가 무거워지는 소설이라는 것일까, 싶었다).
재가 되는 소설이었다. 무언가가 불에 타고 재로 남는 소설이었다. 누구 한 사람이 재가 되는 것이 아닌, 이 소설의 등장인물 모두가 재가 되는 소설이었다. 재가 된다는 것을 굳이 죽음과만 연결시킬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모두에게는 몸과 마음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있지 못할 일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온전히 재로 사그라질 수 있다는 것은 그나마 지금까지의 삶의 모습을 그렇게 조용히 사라지게 만들면서도 남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아닐지, 생각해보았다. 오히려 책을 읽기 전보다, 읽으면서보다, 다 읽고 나서 조금은 마음이 안정되고 긴 심호흡을 하는 것으로 감정을 추스를 수 있게 한다고나 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 든 생각은, 왜 이리도 생각은 많고 사랑은 충만하며, 또 왜 그리도 사람은 사람 안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것이었을까. 수의 문 그림에서도 왜 그 많은 사람을 문 안에 가두고 왜 문을 열어주지 않았을까._이게 사랑이었을까? 모는 왜 현과의 삶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 자신의 삶의 끈은 놓아버렸을까._온전히 사랑할 수 있기 위해서? 누구를? 서로를 끌어안으면서도 기쁘고 행복한 감정보다 슬픔을 먼저 느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어쩌지 못하고 그 안에 가둬지는 문제인 것일까._슬픔 말고는 해결할 수 없는?
이들을 이리도 슬프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슬픔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말하고 있는 인물들의 노력이 너무도 슬프고도 아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슬픔을 재로 만들어 무거움을 가벼움으로 만들고, 여러 색을 하나의 색으로 만들고, 바람과 함께 자유로이 날아가고 흩어지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모두 이제 좀, 마음이 편안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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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오라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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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이숙, 아니 한나와 긴 여정을 함께 하면서 내내 무언가 꽉 막힌 듯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저 꾹꾹 눌러 담고, 침묵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모든 것으로부터 겨우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하나 남은 힘이었는데, 그 힘마저도 빼앗길 듯 위태롭기까지 했다. 독일에서의 유학 생활이 그랬고, 지금의 삶이 여전히 그랬다.
이숙은 그렇게 담담하게 간직하고 있던 과거를, 곧 자기 자신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던 그 순간,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을 자신으로,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또한 자신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살 수 있게 되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나로서의 삶이 또 다시 과거의 삶과 얽히면서 한 번 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골, 바다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기분이지 않았을까. 마치 그의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겪었던 것과 같은, 그런 어둠 속에 갇힌 기분이었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도대체 왜, 빛이란 것은 이들을 비추지 않는 것일까, 화가 났다. 따뜻한 햇살이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감싸주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을. 너무나도 답답하고 가슴 조이게 만드는 우리의 과거와 역사가, 아직도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어 소설을 읽으며 굳은 얼굴을 풀 수가 없었다.
마르코가 그랬고, 나쟈가 그랬고, 톰인 이반이 그랬고, 한나가 그랬다. 그들은 모두 그랬다. 그들의 삶은 온전히 그들의 삶만으로만 살아낼 수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같은 어둠 속에서 그렇게도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던 것이고.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탈출하고 싶어하는 이는 없구나, 싶었다. 진심으로 나가 아닌 다른 이가 되어 살고 싶었다면, 자신을 둘러싼 과거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면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을 온전히 쓴 인물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 모두가 그 안으로, 기꺼이 상처와 고통을 감수하고 한 발짝 더 깊숙하게 발을 집어 넣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삶의 모습과 가는 길을 진지하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내뱉는 말들 하나하나가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역사였고, 그 역사는 잊어서 될 것이 아닌 오히려 또렷하게 하나하나 기억하고 새겨야 할 것들이었다. 거부하지 않고, 도망치려고만 하지 않고,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그 시작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찌 보면 신기한 노릇이다. 처음 가보는 도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또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곳에서든 우리와 닮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사실이 지금 우리를 너무도 슬프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읽다가 순간 헉, 눈앞을 부옇게 만든 부분이 있었다.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자그레브를 발음할 때처럼 나는 오기를 부리며 비르흐니야를 발음해봤으나 그때마다 마르코는 배를 잡고 웃었다.
마르코는 알고 있을까. 일본 관동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혼란한 민심을 수습하려고 천재지변의 이유를 조선인 탓으로 돌리고 조선인들을 학살했다는 것. 그때 일본인들 사이에서 조선인을 솎아낼 때 쓴 것이 이방인들이 모사하기 어려운 일본어를 발음하게 했다는 것.(185쪽)

그랬다. 이 소설에는 아픔이 너무 많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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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여 오라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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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신기한 노릇이다. 처음 가보는 도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또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곳에서든 우리와 닮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사실이 지금 우리를 너무도 슬프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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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집
황선미 지음, 전지나 그림 / 시공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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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 <기다리는 집>을 마주하고는, 집이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는 구나, 하고 생각했다. 쓸쓸하게 남겨진 누군가의 빈집은 내내 그 자리 그 위치에서 늘 한결같이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구나. 그 집이 그대로 있는 한 결국 누군가는 올 수 있겠구나.
'가버리지 않고 기다려주어 고맙습니다.
나의 집은 당신입니다.'
라는 표지 문구를 보면서, 그렇다면 저기서의 '당신'은 누구일까. 집이 된 당신이 누구일까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금방 그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이 소설은 집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런 사람이 사는 마을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감나무집에 또다시 생기가 만들어지고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것이 결국은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 그 사이에서 잊히지 않는 과거와 기억, 그리고 절대 버려질 수 없는 집의 온기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가 이 이야기 속에 잘 담겨 있었다.
누구가 꺼릴 수 있었던 폐가와 같던 집, 하지만 그 집을 늘 한결같이 지켜보던 떡집 할아버지, 그리고 그 주변으로 당연하다는 듯 모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까지, 이 모두가 결국은 하나의 집을 통해 만들어진 관계들이었다. 그리고 마치 죽어있는 듯했던 그 집은 사람의 손길이 닿는 순간부터 순식간에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과도 같은 모습이 되며, 사람들을 또 다시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결국은 사람이 집에 들면서 또 다른 사람이 올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사람이 오면서 '기다리는 집'에서 '떠나지 않는 집'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럴 수 있었던 역할이 결국은 집에 돌아온 '사람'이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집'을 가장 편안하고 항상 가고 싶은 공간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래서 흔히들 이렇게 말하곤 한다. '집에 가고 싶다.'라고. 아마도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따뜻함, 그리고 집에서 나를 반기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집'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그 다음을 떠올리기에 충분한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 감나무집은 더이상 아무도 떠나지 않는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집으로 오래도록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집이 제대로 그 모습을 갖추었으니, 앞으로 이 마을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툭탁거리며 살아갈 일만 남지 않았을까. 아마도 툭툭 탁탁 집을 고치던 것처럼, 사람들 간의 문제가 있을 때에도 툭툭 탁탁 고치며 살아가지 않을까 짐작해 보게 된다. 왠지 이 툭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집은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 고통과 슬픔을 치유해주는 역할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이 집이 다시 살아닌 이후로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면서 응어리져 있던 감정들이 서서히 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이것이 '집'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아와 수아 엄마도 무사히 잘 돌아오면 좋겠다. 이 집은 기다리는 집이니, 이 집에서 명길이 돌아와 재성과 만난 것처럼 언젠가 꼭 돌아와 만나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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