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밤이여 오라 - 제9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이성아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평점 :
주인공 이숙, 아니 한나와 긴 여정을 함께 하면서 내내 무언가 꽉 막힌 듯 해결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저 꾹꾹 눌러 담고, 침묵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모든 것으로부터 겨우 자신을 지킬 수 있었던 하나 남은 힘이었는데, 그 힘마저도 빼앗길 듯 위태롭기까지 했다. 독일에서의 유학 생활이 그랬고, 지금의 삶이 여전히 그랬다.
이숙은 그렇게 담담하게 간직하고 있던 과거를, 곧 자기 자신을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게 되었던 그 순간, 그제서야 비로소 자신을 자신으로, 그리고 자신의 가족을 또한 자신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살 수 있게 되었음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나로서의 삶이 또 다시 과거의 삶과 얽히면서 한 번 더 빠져나올 수 없는 깊은 골, 바다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아 버린 기분이지 않았을까. 마치 그의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겪었던 것과 같은, 그런 어둠 속에 갇힌 기분이었을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도대체 왜, 빛이란 것은 이들을 비추지 않는 것일까, 화가 났다. 따뜻한 햇살이 조금이나마 따뜻하게 감싸주기라도 했다면, 좋았을 것을. 너무나도 답답하고 가슴 조이게 만드는 우리의 과거와 역사가, 아직도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어 소설을 읽으며 굳은 얼굴을 풀 수가 없었다.
마르코가 그랬고, 나쟈가 그랬고, 톰인 이반이 그랬고, 한나가 그랬다. 그들은 모두 그랬다. 그들의 삶은 온전히 그들의 삶만으로만 살아낼 수 없었고, 그래서 그들은 같은 어둠 속에서 그렇게도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던 것이고. 하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진심으로 탈출하고 싶어하는 이는 없구나, 싶었다. 진심으로 나가 아닌 다른 이가 되어 살고 싶었다면, 자신을 둘러싼 과거로부터 자유롭고 싶었다면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방법을 온전히 쓴 인물은 없었다. 오히려 그들 모두가 그 안으로, 기꺼이 상처와 고통을 감수하고 한 발짝 더 깊숙하게 발을 집어 넣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그들의 삶의 모습과 가는 길을 진지하게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내뱉는 말들 하나하나가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역사였고, 그 역사는 잊어서 될 것이 아닌 오히려 또렷하게 하나하나 기억하고 새겨야 할 것들이었다. 거부하지 않고, 도망치려고만 하지 않고, 그저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그 시작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찌 보면 신기한 노릇이다. 처음 가보는 도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서 동질감을 느낀다. 또 어찌 보면 너무도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어느 곳에서든 우리와 닮은 시간과 공간이 존재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사실이 지금 우리를 너무도 슬프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읽다가 순간 헉, 눈앞을 부옇게 만든 부분이 있었다. 이 부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자그레브를 발음할 때처럼 나는 오기를 부리며 비르흐니야를 발음해봤으나 그때마다 마르코는 배를 잡고 웃었다.
마르코는 알고 있을까. 일본 관동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났을 때 혼란한 민심을 수습하려고 천재지변의 이유를 조선인 탓으로 돌리고 조선인들을 학살했다는 것. 그때 일본인들 사이에서 조선인을 솎아낼 때 쓴 것이 이방인들이 모사하기 어려운 일본어를 발음하게 했다는 것.(185쪽)
그랬다. 이 소설에는 아픔이 너무 많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