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집
황선미 지음, 전지나 그림 / 시공사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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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제목 <기다리는 집>을 마주하고는, 집이 누군가가 오기를 기다리는 구나, 하고 생각했다. 쓸쓸하게 남겨진 누군가의 빈집은 내내 그 자리 그 위치에서 늘 한결같이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구나. 그 집이 그대로 있는 한 결국 누군가는 올 수 있겠구나.
'가버리지 않고 기다려주어 고맙습니다.
나의 집은 당신입니다.'
라는 표지 문구를 보면서, 그렇다면 저기서의 '당신'은 누구일까. 집이 된 당신이 누구일까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금방 그 궁금증은 해소되었다.
이 소설은 집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은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람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런 사람이 사는 마을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 마을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감나무집에 또다시 생기가 만들어지고 사람이 살 수 있었던 것이 결국은 그런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은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 그 사이에서 잊히지 않는 과거와 기억, 그리고 절대 버려질 수 없는 집의 온기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가 이 이야기 속에 잘 담겨 있었다.
누구가 꺼릴 수 있었던 폐가와 같던 집, 하지만 그 집을 늘 한결같이 지켜보던 떡집 할아버지, 그리고 그 주변으로 당연하다는 듯 모일 수밖에 없었던 아이들까지, 이 모두가 결국은 하나의 집을 통해 만들어진 관계들이었다. 그리고 마치 죽어있는 듯했던 그 집은 사람의 손길이 닿는 순간부터 순식간에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과도 같은 모습이 되며, 사람들을 또 다시 이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결국은 사람이 집에 들면서 또 다른 사람이 올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사람이 오면서 '기다리는 집'에서 '떠나지 않는 집'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럴 수 있었던 역할이 결국은 집에 돌아온 '사람'이었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집'을 가장 편안하고 항상 가고 싶은 공간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래서 흔히들 이렇게 말하곤 한다. '집에 가고 싶다.'라고. 아마도 '집'이라는 공간이 주는 편안함과 따뜻함, 그리고 집에서 나를 반기고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가족'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집'이라는 단어만으로도 충분히 그 다음을 떠올리기에 충분한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 감나무집은 더이상 아무도 떠나지 않는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집으로 오래도록 남을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집이 제대로 그 모습을 갖추었으니, 앞으로 이 마을에서 사람들과 더불어 툭탁거리며 살아갈 일만 남지 않았을까. 아마도 툭툭 탁탁 집을 고치던 것처럼, 사람들 간의 문제가 있을 때에도 툭툭 탁탁 고치며 살아가지 않을까 짐작해 보게 된다. 왠지 이 툭탁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집은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 고통과 슬픔을 치유해주는 역할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이 집이 다시 살아닌 이후로 어느 누구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고 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상처가 조금씩 아물면서 응어리져 있던 감정들이 서서히 풀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마도 이것이 '집'의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아와 수아 엄마도 무사히 잘 돌아오면 좋겠다. 이 집은 기다리는 집이니, 이 집에서 명길이 돌아와 재성과 만난 것처럼 언젠가 꼭 돌아와 만나게 될 것만 같은 느낌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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