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시마의 연인들
박수진 지음 / 다향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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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시마의 연인들 - 박수진

소설/로맨스/다향




<가고시마의 연인들>은 흐릿한 표지와 로맨스 소설답지 않은 두께, 한 페이지에 스물일곱 줄의 가득한 문자들이 나를 당황시켰다. 로맨스 소설이라면 그 자리에서 한 권 뚝딱 읽어낼 정도로 대화도 많고 페이지가 좀 헐겁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이건 역사서 같은 느낌? 그런데 몇 장 넘겨보니 이 빽빽한 글자들이 물 흐르듯 읽혀진다.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상황이나 배경까지 꼼꼼하게 그려내는 필력에 매력을 느꼈다.


두 남자와 한 여자의 로맨스. 아니 두 가문이 한 여자를 두고 펼쳐내는 로맨스.

한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냈지만 가족들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도쿄 동경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하는 은세나. 예쁜 얼굴에 대충 걸쳐도 여성스러운 라인이 살아나는 몸매를 소유하고 있지만 그녀 스스로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지 않았기에 그녀의 대학생활은 평범하기만 했다. 그녀를 편안하게 해주는 친구 사토 켄지를 제외하면...

그런데 같은 과에 재학중인 사토 켄지와 시노하라 류우지와의 불꽃튀는 언쟁으로 인해 엄청난 반전을 맞게 된다. 겨우 두 남자이긴 하지만 그들은 그냥 남자사람이 아니었으므로!

3대에 걸쳐 중의원을 배출한 정치 명문가의 자제 사토 켄지. 일본 전기전자산업의 정점에 있는 시노하라전자의 후계자 시노하라 류우지. 수업중에 이루어진 세나의 발표에 태클을 걸어온 류우지를 켄지가 맞서 막아내면서 켄지는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기 어려워지고 세나에게 마음을 전달하게 되는데 세나는 하나뿐인 친구마저 잃을까 속상하다.

마침 여름방학이 다가오자 그녀는 켄지의 마음을 피한 채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가고시마로 떠났다. 그런데 도착한 첫 날 노천탕에서 시노하라 류우지를 마주한다. 아름답게 그려지는 가고시마의 풍경, 그 속에서 일어나는 위협적인 사건들이 뒤섞이며 그 충격 탓인지 견고하게 닫혀있던 마음의 빗장도 풀어지기 시작하는데...


(스포처럼 보일지라도 사실 완전 초반에 제시된 내용 중에 주요 내용만 간추린 것이므로 맛보기 정도에 해당한다.)


슬쩍 보면 두 남자가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서 삼각관계에 빠지는 흔하디 흔한 로맨스로 치부될 수 있지만, 사실 <가고시마의 연인들>은 초반부터 누구와 연결될지 빤히 보이는 것과 별개로 그들의 아버지인 사토 코이지와 시노하라 요시로, 게이샤의 딸이자 일본 최고의 탤런트였던 하루카의 로맨스가 교차되면서 더 흥미롭다. 간혹 점쟁이도 아니고 복선을 대놓고 흘려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배경을 그리는 부분이라던가 인물들의 심리를 풀어낸 부분들이 참 섬세해서 읽는 재미가 있었던 로맨스 소설이다. 로맨스 특유의 분위기가 있긴 하지만 막장 드라마는 결코 아니며 재벌들 사이에 끼인 한 여인이라는 소재임에도 인물들이 억지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켄지의 친구이자 류우지의 동창인 도쿄 중앙병원 원장 아들 마쓰자카 료스케의 분량이 개인적으로 좀 아쉬웠는데 에필로그에 살짝 등장해줘서 반갑더라는. 그를 중심으로 한 메디컬 소설도 재밌을 것 같다. 그의 아버지 쇼헤이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이기에 더 만나보고 싶다. 마지막에 도쿄의 복잡한 사정은 정리가 되었지만, 한국에서의 세나의 복잡한 사정은 어찌 되었을지 궁금했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가 좀 아쉽다. 물론 급반전의 상황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녀가 훗날 후회하지 않을 그런 그림이 펼쳐질 것이라 예상했고, 엄마와의 사정이 조금 달라진 것 같은 분위기이긴 했지만 그들의 이야기도 좀 더 있었으면... 책장을 덮기 아쉬운 마음에 어떤 이야기든 더 많았으면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잔잔하면서도 재미있게, 긴 소설도 지루하지 않게 그렇게 읽을 수 있었던 <가고시마의 연인들>이었다.



"은세나, 내 세상의 중심. 나의 여왕님." (p260)

꺅~~~ 규슈의 태양은 달콤합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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