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아직, 우리가 굶주리지 않는 이유 - 곡물과 팜유에서 대체육까지, 어둠 밖으로 나온 식량 메이저들의 생생한 이야기
조나단 킹스맨 지음, 최서정 옮김 / 산인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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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어보고 싶다는 평소의 생각대로 이번에는 식량에 대한 책을 읽었다. 내용의 주된 부분을 식량자원 트레이딩이 차지하고 있다. 트레이딩이 곡물 등 식량의 가격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면, 나는 사실 곡물을 비롯한 식량자원의 무역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무역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관심만 많았지 나는 식량자원을 취급해 본 적이 없다. 언제쯤 식료품 수출입을 다루어 보려나. ^^;




책은 조나단 킹스맨이라는 분이 지었다. 이름부터가 멋있다. 세계적인 곡물회사 카길 미니애폴리스와 런던에서 원당 트레이더로 시작해 40년 이상 농산물 원자재 시장에서 일했다. 카길에서 근무한 이후에는 현물, 선물 브로커 시장에 몸담았다. 1990년 원당과 바이오연료 리서치 회사 Kingsman SA를 설립했다. 2015년 시장에서 은퇴한 이래 작가와 블로거로 활동 중이다. 이 책은 재미있게도 옮긴이인 최서정 님도 LLDC 싱가포르에서 곡물 트레이더로 일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미국 인디애나 대학교와 퍼듀대학교에서 MS-MBA in Food and Agribusiness Management 과정에 재학 중이다. 저서로 <나는 대한민국 상사맨이다>가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세계적인 식량회사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농산물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이해를 못 했었다는 뜻이다. ADM, Buge, Cargil, Dreyfus의 앞 글자를 따서 ABCD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물론 나는 저 중에 Cargil은 많이 들어 보았고, 내 업무 포지션도 종종 뽑는 회사니까. 적어도 카길까지는 한국에서 유명한 축에 드는 회사니까. 농산물이 트레이딩의 주된 목적물이 된다는 사실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인생이 걸린 문제였겠지만 내게는 그저 흥미로운 주제 거리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저자의 아버지도 농사를 지었다. 대학을 졸업한 저자가 당시 카길의 해외무역 조직이었던 Tradax에서 농산물을 사고파는 트레이더의 길을 걷게 되었을 때 아버지는 별로 즐거워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의 기억 속에는 농산물 상인들은 언제나 당신이 수확하여 내다 팔려고 했던 작물들의 가격을 후려치고, 돼지들을 위해 사야 했던 보리의 가격은 올려 받는 원수였다.



저자의 아버지는 농산물 상인들이 세상에 별로 가치를 더하지 않는다고 믿었고, 저자가 회계사와 같이 더 바람직한(회계사가?) 직업을 선택하길 바랐다고 한다. 글쎄... 회계사가 더 바람직한지도, 농산물 상인이 더 부도덕한지도 잘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책은 크게는 둘로 나뉘는 것 같다. 앞의 1장부터 5장까지는 무역 트레이딩 업계 전반에 대해 논하고, 뒤의 6장 이후부터는 개별 기업이나 경영자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는 식이라 할 수 있다.

 


앞쪽에서 재미있던 부분은 리스크였다. 역시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는 업계의 뒷이야기가 제일 재밌다. 필드는 피 터지게 치열하겠지만. 오늘날 트레이딩 업계는 예상대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지역 간의 가격 괴리를 포착하기 위해서는 한두 사람 트레이더만 달라붙어서 될 일이 아니다. 경쟁이 치열함에도 불구하고 또 트레이딩 회사들은 자체적인 거래 한도를 두는 식으로 특정 상대와의 리스크를 제한하고자 한다. 이 부분도 재미있었다. 나름대로 리스크를 헷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도는 회사나 구매자뿐만 아니라 거래를 하는 국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트레이더의 손을 통해 곡물을 저장되고 가공되기도 한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몰랐다는 무지함에 나 자신도 놀랐다. 트레이더들은 세상이 곡물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부터 필요로 할 때까지 보관한다. 흐음. 트레이더가 본인의 계산으로 리스크를 감내하며 가공 마진을 노린다는 뜻인데 이건 그만큼 리스크도 있는 행위이다. 그리고 가공에 필요한 원가를 낮추기 위해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한편, 가공을 잘 해줄 수 있는 업체도 수배를 해야 할 것이다. 여러모로 손이 많이 가는 일이다. 단순히 사고팔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책의 뒷부분, 그러니까 개별 기업에 대해 소개하는 부분은 역시 카길이 제일 중요했고 재미있었다. 개인적인 이유로 카길이 제일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사실 관심만 있었지 카길에 대해 별로 아는 건 없었는데 통상 수익의 80%를 재투자하는 놀라운 기업이라는 걸 알았다. 오늘날 카길은 아직도 미국에서 가장 큰 비공개 기업이다. 미국 곡물 수출의 25%, 내수 육류 시장의 22%, 그리고 미국 내 맥도날드에서 사용되는 모든 계란이 카길의 손으로 공급되고 있다. 수익의 80%는 재투자하고 20%만 배당하는 방침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인터뷰 내용을 보니 카길만이 갖는 장점으로 첫 번째는 뛰어난 인적 자원을 꼽았다. 두 번째는 글로벌한 사업내용, 세 번째는 다양한 사업부가 함께 일하는 방식, 네 번째는 고객 및 공급자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일이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정말로 이런 부분에서 강점을 갖고 있는 회사라면 무엇이든 잘 할 것이다. 물론, 카길은 인재 사관학교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동시에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다. 카길은 피라미드 구조이다. 사실 어디든 안 그럴까. 성과에 따라 승진이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는 밀려나는 사람들도 생기기 마련이다. 모두가 성공하고 승진할 수는 없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모두가 피라미들의 정점으로 올라설 수는 없기 때문에 다른 기회를 찾는 사람들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하나같이 모두 맞는 말이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늘은 아주 생소한 분야인 식료품 트레이딩에 대한 책을 읽어 보았다. 식량 자원. 매우 중요한 문제이고 숙제이긴 하나 그동안 너무 논의가 없었다. 그리고 이들의 트레이딩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데 식량이 없으면 우리 모두 제대로 생존하기가 힘들다. 식량자원에 대해 관심도 가질 겸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지난번 에너지 책을 소개할 때처럼 조금만 읽어도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된 것처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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