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클래식 유나이티드 - 음악도 인생도 뿌리에 물을 주어야 꽃이 핍니다 ㅣ 클래식 유나이티드 1
정경 지음 / 똑똑한형제들(주) / 2022년 7월
평점 :
"이런 책도 나오는구나."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멜로디를 글로 풀어낸 이야기라고 한다.

유명한 클래식 명사 12명의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물론, 나는 평소에 클래식을 잘 듣지 않는다. 어느새부터인가 그 좋아하던 음악 자체를 잘 듣지 않게 되었다. 아기가 태어나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어쨌든 어느 분야든지 최정상에 오른다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힘든 일이다. 뭐라도 한 분야의 최고가 된다면 세상에 부러운 사람이 없을 것 같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렇다. 아마 최고가 되면 또 다른 목표가 생기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최고가 될 수 있기도 하겠고.
책은 정경 님이 지었다. 정경 님은 유명한 바리톤이라고 한다. 바리톤이란 남성 성종의 하나로 테너와 베이스의 중간 목소리를 의미한다. 매일 오전 11시에 EBS FM에서 <정경의 11시 클래식>을 진행하신다. 워너 뮤직의 아티스트이자 클래식 신사업·예술경영부 상임 이사로 재직 중이며,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예술경영학을 진행하고 있다. 19개의 앨범을 발매했다고 한다.
사실 클래식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서 전문적인 내용이 너무 많으면 어렵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12명의 아티스트가 각자 살아온 이야기와 가치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공유하는 책이었고 전문 서적이 아니라 인문학 또는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세계적인 아티스트라고 해서 거창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큰 무대를 앞두고 긴장했던 기억이나, 대를 이어 음악을 하는데 음악계의 선배인 아버지로부터 칭찬보다는 현실적인 말씀을 들었던 이야기 등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어릴 때 집에 피아노도 있었고, 동생과 함께 동네의 피아노 학원도 다녔는데 음악이 참 어려웠던 기억이 난다. 동생은 피아노를 곧잘 치던데 난 왜 그렇게 어려운지. 피아노뿐만 아니라 리코더, 단소 등 학교에서 배웠던 거의 모든 악기에 대해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악보 보는 것조차도 서툴고. 시간이 지날수록 못하는 일은 더 안 하게 되니, 악기 연주는 그렇게 점점 더 멀어지게 되었다.
대학교 때, 피아노를 잘 치는 친구를 보고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 음악 학원을 다닐까 고민을 했지만 금세 마음을 접었다. 대학생 때는 하루의 절반을 운동에 미쳐 있었던 것 같다. 복싱을 미친 듯이 했었다. 매일 10km씩은 뛰고 운동도 두 시간 이상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대학 생활도 지나가고. 천안에서 혼자 살며 관세 법인에 근무할 때, 또 지방에서 할게 딱히 없어 음악 학원을 다녀볼까 하다가 예정보다 일찍 천안 생활을 접고 서울로 이직하게 되어 이 또한 어렵게 되었다. 두 번의 기회를 놓치고 나니 이젠 음악을 더 이상 배워볼 생각은 하기 힘들어진 것 같다.
조카(동생네 아들)는 동생을 닮아서 피아노도 잘 치고 바이올린도 잘 연주하던데 이 책을 읽은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 아들도 음악에 관심을 가지지는 않을까 해서 읽은 것도 있다. 사실 음악은 별로 생각을 안해봤는데 임윤찬 피아니스트 국제 콩쿠르 우승 이후로 이런저런 말도 안되는 생각들이...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면 클래식 각 분야 12명의 삶의 철학과 방향을 조명하는 이야기인데, 역시나 한 분, 한 분이 깊은 삶의 철학을 가지고 있고, 또 세상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티스트들의 약력, 학력, 수상 내역들을 보면 정말 어마어마한 분들이 많았는데 엄청난 훈련과 노력의 시간이 있었기에 이런 결과가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각각의 아티스트 들의 인터뷰 중 기억에 남는 부분들도 많았는데 윤의중 지휘자 님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지휘자 윤의중의 아버지도 대한민국 합창 지휘계 거장인 윤학원 님이었기에 윤의중의 삶은 좋기도 했지만 부담도 많이 되었다고 한다. 칭찬에 비교적 인색했던 엄격한 집안이었지만 또 그렇기에 지금의 윤의중이 있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국립합창단의 단장을 맡고 있는데 클래식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도 인상 깊은 대답을 했다. 정말 잘하고 싶다고. 그리고 더 발전하고 싶고, 바뀌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며 준비하고 열심히 할 뿐이라고. 그런 지휘자의 태도를 보면 단원들도 같이 동참하고 닮아가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정말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을 했다. 난 음악을 잘 모르지만 이 분의 대답에 깊이 감동했다. 나 역시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더 노력해야겠다.

첼리스트 양성원 님의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20세기 거장인 야노스 슈타커의 밑에서 공부를 했는데, 야노스 슈타커처럼 존재감이 강한 분들에게 배우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그분의 연주 스타일을 닮아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간혹 레슨을 받을 때 "서는 나처럼 하지 말고, 네 길을 가야 한다."라고 강조하셨다고 한다. 오롯이 본인만의 소리를 찾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일 것이다.
스스로 제 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집중해 주었기에 이런 부분을 유의하며 연중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부분들을 읽으며 결국 음악이라는 것도 다른 활동들과 크게 다르지 않고 역시 사람이 하는 일이구나. 본인만의 색깔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그리고 그 위에 자신만의 색깔을 입히도록 서서히 칠해 가는 것. 이렇게 한 사람의 인생과 색깔이 완성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지막으로 작곡가 최우정 님의 인터뷰도 생각해 볼 만한 구석이 많았다. '음악의 영감' 같은 것을 별로 믿지 않는다고. 다만 사는 것 자체가 영감의 원천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남한테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보다 본인에게 아주 큰 의미를 지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부분 역시 중요했다. 자기 자신에게 의미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고 한들 금방 잊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었다. 어떤가? 글 쓰는 것하고 크게 다를 것도 없지 않은가? 글쓰기의 염감 같은건 따로 없고, 일상에서 글 쓰는 소재를 찾는다는 많은 작가들의 이야기와 유사한 점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음악, 스스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부분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예술에 대해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궁금증 중의 하나는 무언가를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아티스트라고 할 때, 이들은 문학이나 음악, 미술을 통해 본인이 가지고 있던 감정을 밖으로 표출하는 능력, 즉 아웃풋이 뛰어난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이들도 무엇인가를 지속적으로 흡수하고 배우면서 스스로 소화해 낸 작품들이 있을 텐데 이것들을 받아들이는 능력, 인풋도 뛰어난 사람들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아무래도 인정을 해야 할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조금 그런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고, 이 책에서 소개하는 명사들의 이야기를 곱씹어 봐도 같은 작품을 다른 사람들보다 더 깊이 있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책에 직접 그런 표현이 나와 있지는 않다).
다소 낯설지만 클래식이라는 분야에 대해 오랜만에 공부해 볼 수 있는 괜찮은 기회였다.
당장 클래식 책을 읽었으니 연말에 공연을 보러 가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지만, 최근에 답답한 일들도 있었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음악을 통해 안정을 찾곤 했는데 주로 듣는 장르는 시티팝이었다. 조금씩 클래식에 관심을 갖고 클래식 음악이 주는 아름다움을 느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정말로 기회가 되면 가족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가는 것도 고민을 해봐야겠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