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속 경제경영 또는 자기계발에 관한 책들만 읽다가 이번에는 조금 더 편하고 느슨한 느낌의 에세이가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 책이 눈에 들어왔나 보다. 이 책은 분당에서 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장님으로 편의점을 운영하면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이야기로 기록했다.
편의점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쩐지 내 일이 아닌데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매우 친한 동생도 편의점 업계에서 일을 하고 있고 서울에서 슈퍼바이저로 한동안 일하다 지금은 서울 본사에서 일하고 있다. 슈퍼바이저로 근무할 때 평가가 좋았기 때문에 열심히 뛰어다니며 겪은 일들을 내게도 알려 주는데 무척 흥미로웠다. 나 역시 군대를 제대하고 지금의 회사에 입사하기 전 취업할 곳을 알아 보았는데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취업이 힘들 때 였음에도 불구하고 편의점 업계에서는 서류가 합격했으니 면접 보러 오라고 해서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해병대 장교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영업/관리에 두각을 나타낼 거라고 생각했는가 보다.
저자인 박규옥 님은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국어 논술을 가르치다 중국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그동안 남편분은 한국에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박규옥 님은 중문학 석사를 거쳐 문예학 박사 학위까지 마치고 귀국한다. 회사를 운영하며 컴퓨터를 들여다 보는 일이 바코드 찍는 일보다 체면치레는 될지 몰라도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니라는데 생각이 미쳐서 하던 일을 과감하게 접었다는 표현이 재밌다. 분당도 잘 아는 동네이다 보니 책을 조금만 읽다 보면 정확히 어디에 있는 편의점을 운영하고 계신건지 금방 찾을 수 있는데 뭔가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지는 재미있는 아주머니 같은 느낌일것 같다.
책은 크개 5개의 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아무래도 자유로이 써내려간 수필 느낌의 형식이다 보니 각 장의 목차나 구성에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닌것 같다. 에세이에 있어 목차와 구성이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그리고 결론부터 미리 던지자면 이 책은 매우 재미있다. 역시 논술을 가르치고 박사까지 마친 분이셔서 그런지 문장이 상당히 깔끔하다. 뭐가 됐든 책을 계속 써내려 가시는게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rologue 첫 페이지에 쓴 문장부터 심상치 않다.
"인문학은 전공한 40~50대는 치킨집, 피자집, 편의점 말고는 할 게 없다는, 시대의 대세를 거스르지 못하고 편의점을 하게 됐다."
사람들에게 담백하게 장사를 시작했다고 알리지 못하고 시대가 본인을 자영업으로 등 떠민것 처럼 썼다고 하는데 이건 뭐 틀린말도 아니지 않은가. 주변에 자영업자는 정말 많아졌고 그 중에서도 편의점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내 주변에도 몇명씩 있고 또 편의점업을 하는 회사의 직원으로 근무하는 친구들도 많다. 사람냄새 풍기는 장사꾼이 세상의 축소판인 편의점에 대해 쓴글에 세상 모든 주제가 다 담겨 있다.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내 주변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라는 느낌으로 가볍게 읽다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싶거나 타인의 생활을 통해 활력소를 얻고자 하는 분들께 강력히 추천한다.

인생의 전환점이 될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나는 그다지 심사숙고하지 않는다. 단순한 생각으로 짧게 고민한 뒤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그래 놓고 오래 버틴다. [16p]
그런데 이런 내가 싫지 않다. 쓰는 언어가 단순해지는 만큼 사람들과의 단순한 교류가 좋아지는 것을 보니 나는 진정한 '편의점 인간'이 되고 있는지 모른다. [74p]
편의점 계산대에 서 있으면 세상은 생각보다 밝고 맑고 아름답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그런 걸 깨닫게 해주는 손님들을 만나는 게 편의점 점주의 일상 즐거움 중 하나다. [98p]
단순히 장사꾼과 손님 이상의 관계를 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이런 손님들을 만나게 된 후부터다. 우리 부부는 가게에서 만나는 사람은 그저 손님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장사 시작한 지 7년여만에, 헤어지면서 아쉬워하는 손님들을 보며 장사도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이어나가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중이다.[110p]
'펀미팅 진행 순서'라는 다소 어려운 제목의 근무자 친절 대응 가이드 앞에서 오늘도 나는 생각한다. 나는 그냥 싸가지 없는 점주로 남으리 [119p]
출근하는 시간에 라디오를 틀어놓고 운전을 하다 보면 같은 시그널이 울리는 시간에 늘 같은 신호등에 걸려 서 있는 것을 발견할 때가 있다. 인식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놀라울 만큼 패턴대로 움직인다. 편의점에 드나드는 손님들 상황도 비슷하다. 현금 인출기에서 돈 세는 소리가 나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손님이 있기도 하고, 커피 머신 자동 세척 기능이 작동을 하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님도 있다. [206p]
그러나 아동 학대 신고를 도와주는 것과 노인을 돕는 것돠는 문제가 다르다. 학대 받는 아동들은 신고를 통해 다급한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줄 수 있지만 노인 문제는 보통 외로움에서 오기 때문에 벗어나게 해줄 수가 없다. 눈을 감기 전까지 노동에서 소외도지 않는 시골 노인들의 말년이 더 행복한 것은 아닌지, 오피스텔 노인들을 보며 건강한 노년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하게 된다.
* 이 책은 몽스북으로부터 무상으로 제공받았으며 직접 읽고 느낀 점에 대해 솔직하게 작성한 서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