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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한 책 읽기 ㅣ 아우름 9
장석주 지음 / 샘터사 / 2015년 12월
평점 :

조사 대상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략 대한민국 성인 평균독서량은 10권 안팎인 것 같습니다. 어렸을 적엔 취미가 독서라고 하면 별 특징 없는 취미였던 것 같은데, 요즘엔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독서가 특별한 일이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절대 다독가도 아니고 장서가도 아니지만 스스로 애서가라고는 불러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간혹 책에 관학 책을 읽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품절된 책이지만 『서가에 꽂힌 책(지호)』을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소중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 『장서의 괴로움(정은문고)』이나 『젠틀 매드니스(뜨인돌)』를 보면 병적으로 책을 모으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실소가 나오기도 합니다.
일부 괴짜도 있긴 하지만 어찌되었건 책이 삶에 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장석주 시인의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는 그 이로움을 더욱 많이 깨달을 수 있게 하는 책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장서가인 장석주 시인의 삶이 곧 그 증거이기도 합니다. 장석주 시인은 약 3만권(으로 추정되는)이나 되는 책을 소장하고 있고, 1년에 구입하는 책이 약 1천권에 매년 출판사에서 시인에게 보내는 책도 5백 권이나 된다고 하니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눈이 번쩍 뜨일만하죠. 부담스럽지 않은 분량(약 150페이지)의 책이지만 평생 책과 함께 해 온 대가의 철학을 느끼기엔 충분합니다.

장석주 시인은 사람들이 책과 멀어지게 된 근본적인 이유로 책 읽기가 살아가는 데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깊어지게 된 것을 지적합니다. 책을 읽는 것은 “거인들의 어깨 위에 앉아서” 세상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음에도 말이죠. 아울러 책 읽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그동안 읽은 것들이 개인의 우주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누구도 우주 밖으로 나가 살 수 없으니 운신의 폭을 넓히려면 우주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야겠죠. 책 제목에서 말하듯 우주의 경계를 확장하는데 필요한 것이 곧 책 읽기입니다.
아주 좋은 이야기지만 곧바로 고개를 끄덕일 정도는 아닙니다. 우리나라 성인 평균 독서량에 비하면 저도 책을 많이 읽는 편이지만, 장석주 시인의 책 예찬을 100% 공감하기엔 아직 내공이 한참 부족하니까요. 어떤 뜻인지 이해는 하지만 가슴으로 느끼려면 더 많은 책을 읽고 곱씹을 필요가 있습니다. 책 속에 “책을 사는 것은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서라도 책 읽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도 필요합니다.
물론 한 가지 정답만 있는 건 아니겠죠. 장석주 시인 또한 “나는 가장 좋은 독서법이란 따로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독서법이 있어요. 그러니 다른 사람의 독서법에 연연해 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저 자기만의 속도, 자기만의 리듬에 따라 읽어 나가면 됩니다”라고 전합니다. 다만 아직 독서법이 정립되지 않는 분들이라면 어느 정도는 매뉴얼에 의거하는 게 도움이 될 겁니다. 물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장석주 시인은 <3장 책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책을 ‘거인의 어깨’와 ‘우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 중 ‘기억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읽어라’라는 부분이 특히 인상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을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로 인해 책 읽기는 즐겁게 느껴지지 않고 문장을 따라가기에 바쁩니다. 하지만 장석주 시인은 일부러라도 읽은 것을 잊어버리려 한다면서, 책 안에 담긴 정보와 지식을 기억할 게 아니라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며 저자와는 다른 사유를 해보라고 권합니다. 책 읽기는 일방 소통이 아니라 쌍방향 소통이라는 점은 요즘처럼 인문학 서적이 범람하는 시기에 보다 염두에 둬야 할 지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와 함께 지루하거나 새로운 깨우침이 없어도 모든 책을 끝까지 읽는 것은 일종의 강박적 습관이라는 부분도 많이 공감됩니다. 물론 초반에 지루하다고 습관적으로 책을 덮어버리는 것도 바람직하진 않지만, 단지 읽은 책의 숫자에서 뿌듯함을 느끼며 억지로 읽는 것보다는 같은 책을 여러 번 읽으며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거나 발견하지 못했던 사실을 깨우쳐 가는 게 훨씬 큰 보람으로 연결될 겁니다. 장석주 시인이 두 꼭지를 할애해서 반복적으로 읽기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입니다.

참 좋은 문장이 있어 전체를 옮겨 봅니다.
책을 읽을 때 그 안의 지식과 정보를
기억할 게 아니라 저자의 사유를 따라가며
저자와는 또 다른 나만의 사유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사유하는 힘이 생기는 겁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 굳이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남는 게 있어요.
책 읽기는 지식이 저자에게서 독자로 옮겨 가는 일방 소통이 아니고
쌍방향 소통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p. 75)
장석주 시인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돈을 주고 책을 사는 거고, 그렇게 산 책은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읽게 되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제 책장엔 장석주 시인의 『불면의 등불이 너를 인도한다』가 꽂혀 있는데 이제 그만 모셔두고 ‘언젠가’를 ‘지금’으로 바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