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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아름다운 거래 탐구생활 - 착한 사회를 위한 공정무역 이야기 ㅣ 착한 사회를 위한 탐구생활 시리즈
한수정 지음, 송하완 그림 / 파란자전거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제 판단 착오였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공정무역 이야기니 적당한 수준에서 공정무역의 개념과 필요성을 이야기할 거라는 예상은 책을 펼침과 동시에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커피는 공정무역 영역의 대표적인 상품 중 하나입니다. 저는 커피를 무척 즐기는데다 공정무역 커피 사업을 하는 NGO 대표와도 예전부터 인연이 있어 꽤 빠른 시기에 공정무역 커피를 접했고 점차 소비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2015년에도 참 많은 사건이 있었는데 그 중 4월에 벌어진 네팔의 지진 소식 또한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네팔 공정무역커피를 더 자주 이용하고 있기도 하죠.
마침 이 책은 네팔커피농부들과 공정무역 사업을 펼치는 단체의 담당자가 쓴 책이기도 합니다. 얇지만 내용 구성과 흐름이 빼어나 주대상층인 청소년만이 아니라 공정무역이란 말을 들어보긴 했지만 아주 얕은 수준으로 알고 있는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도 아주 좋은 책입니다.

단순히 공정무역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전에 칭기즈칸, 십자군전쟁, 르네상스 시대,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발견까지 역사적 흐름을 두루 살피고, 아프리카 사람들을 대상으로 자행한 노예사냥, 산업혁명과 제국주의를 아우르며 공정하지 않은 경제문제를 통해 공정무역의 필요성을 전달합니다. 공정무역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단순히 이론으로 끝나지 않고, 실제 공정무역의 현장에서 활동하며 체득한 경험이 더해지면서 저자의 내공까지 느낄 수 있습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공정무역이 단순히 우리보다 잘 못사는 사람을 돕는다는 의미로 끝나는 것이 아닌 인류 모두를 위한 바른 길이라는 것을 깨닫지 않을까 싶습니다. 원조가 응급조치라면 궁극적으로 자립과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공정무역은 치료를 넘어 면역력을 높여주는 셈이랄까요?
세계공정무역기구(WFTO)와 페어트레이드인터내셔널(FI)는 공정무역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고 합니다.
"공정무역은 대화와 투명성, 존중을 바탕으로 공평하고 정의로운 국제무역의 동반자가 될 것을 약속합니다. 특히 경제 발전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된 저개발 국가의 생산자와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거래 조건을 제공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 지속 가능한 발전에 이바지합니다.“

저자는 공정무역의 네 가지 원칙으로 대화, 투명성, 존중, 지속가능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네 가지 원칙이 비단 공정무역에만 필요한 원칙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나라의 기업 환경에서도, 흔히 갑질로 불리는 무분별한 행동을 없애는데도 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자의 현장 경험이 많이 담겨있는 점도 책이 술술 읽히는 이유 중 하나인데요, 저자의 에피소드 중 2012년 네팔 출장이 참 인상적입니다. 저자는 짧은 출장기간에 계약을 마무리해야 했지만, 시간에 쫓기는 저자의 마음과 달리 마을주민들은 환영 행사를 열고 집으로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처음의 우려와 달리 계약은 아주 쉽게 이루어졌는데요, 주민들을 가까이에서 대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농민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서로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두뇌싸움을 해야 하는 일반 계약과 달리 서로를 존중하는 계약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읽은 이어령교수의 『지의 최전선』이라는 책에 인상 깊은 문장이 있습니다.
“관심, 관찰 그리고 관계. 인문학을 문사철이라고 하지만 모든 지적 프로세스는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종교든 정치든, 바로 그 세 가지야.”
저자의 경험이야말로 관심, 관찰, 관계의 프로세스가 잘 진행된 사례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정무역이 대한 작은 관심이 좋은 관계를 넘어 인문학적 통찰까지 연결될 수도 있는 거겠죠.
책을 덮은 지금 우분투(Ubuntu)라는 단어가 떠오릅니다. 우분투는 아프리카어로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라는 뜻입니다. 협동보다는 경쟁이 우선인 시대, 조금 느리더라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를 공정무역의 원칙에서, 그리고 노예사냥의 피해를 입은 아프리카에서 배웁니다. 오늘 제가 마시는 공정무역 커피 한 잔이 선한 나비효과로 되돌아오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