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탐독 - 나무 박사가 사랑한 우리 나무 이야기
박상진 지음 / 샘터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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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 삿포로에 있는 마루야마공원으로 가는 길에 흥미로운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 시멘트로 포장된 길 한가운데 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었는데요, 보통 나무를 잘라 내거나 파내고 길을 내기 마련인데 나무와 공존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사람보다 그 나무가 오래 전부터 그 땅을 먼저 지키고 있던 게 사실이구요.

 

아낌없이 주는 나무덕분인지 나무하면 따뜻하고 친근한 느낌, 우리를 지켜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저는 출퇴근길에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는데 길가에 심어진 나무들 덕분에 날마다 잘 조성된 산책로를 걷는 느낌을 받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도 하구요. 제가 나무를 보는 경우는 출근길 아파트 단지 심어진 나무와 가로수 정도가 전부지만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마음은 풍성해집니다.

 


책을 펼치고 머리말을 읽는 순간 아하~’하는 감탄과 함께 저자 소개를 봤습니다. 역시나... 이 책의 저자인 박상진 교수는 제가 한참 전에 읽었던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는 나무에 담겨진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을 접할 수 있는 책이라면, 나무 탐독은 오랜 기간 나무와 함께하며 만들어온 경험과 추억, 나무에 대한 애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산문집입니다.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다보니 한 눈에 어떤 나무인지 알아볼 수 있는 나무 종류가 몇 가지에 불과합니다. 이런 점에서 저자가 북악산 탐방코스에 있는 나무 소개 간판을 만든 이야기가 참 인상적입니다.

 

간단하지만 재미있고 유익한 문화가 들어 있는 내용으로 소개하고 싶었다. 사실 지금까지 문화유적지에서 만나는 나무 소개 간판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무 이름 옆에다 과명(科名)과 학명(學名)을 적고 잎 생김새와 꽃 색깔, 열매 모양 등의 전문용어를 섞어놓는다. 일반인들이 학명을 비롯한 전문 정보를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나뭇잎의 생김새야 지금 보고 있는 그대로이고 식물학적인 내용이 더 궁금하면 인터넷이나 수목도감으로 찾아보면 된다.”

 


나무에 대한 설명 뿐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재나 유적지에 대한 설명도 훨씬 친근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강하게 드는데요, 이 책에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도 이와 같습니다. 나무에 대한 학술적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면 진작 책을 덮었겠지만, 사진자료, 옛이야기, 역사적 사건과 어우러진 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책장을 술술 넘기게 만듭니다.

 

나무가 주는 삶의 혜안 또한 얻을 수 있습니다.

등나무는 싹을 틔우면서부터 신세 질 나무를 찾아 허락도 없이 덩굴로 몸체를 휘감고, 해가 갈수록 다른 나무를 옥죄어 결국엔 나무줄기를 말라 죽인다고 합니다. 칡도 만만치 않은데요, 칡은 숲의 가장자리에서 나무줄기를 타고 순식간에 꼭대기로 올라가 나무가 햇빛을 받을 수 없게 넓적한 잎을 펼쳐 결국 햇빛 부족으로 죽게 만든다고 합니다. ‘갈등(葛藤)’이라는 단어가 칡을 뜻하는 갈(, 칡 갈)과 등(, 등나무 등)으로 이루어졌다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요, 칡과 등나무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한 방편일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우리의 사회만큼은 칡과 등나무 보다는 여러 나무와 풀이 조화를 이룬 숲의 모습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제 우리는 숲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숲은 돌보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있으면서 인간에게 혜택만 준다는 인식은 잘못됐다. 인간과 서로 주고받으면서 공존해야 하는 필수 불가결의 숲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나무수염(팡고른 숲의 엔트 지도자)과 엔트들이 사루만의 본거지인 아이센가드를 공격하는 장면입니다. 사루만은 숲을 무참히 파괴해 나무수염을 분노하게 했죠. 위에 적어드린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나무와 숲을 우리가 이용하는 자원으로만 여기고 아낌없이 받기만 한다면 결국엔 나무들이 아낌없이 어떤 것을 줄지 알 수 없습니다.

 

주말에라도 근처 공원에서 나무가 심어진 산책로 걷기를 즐기는 분들이라면 그 시간이 조금은 더 즐거워질 지식을 전달해 줄 책입니다. 평소에 자연을 가까이 두시는 분들께도 더할 나위 없는 책일테구요.

 


한 곳에 자리 잡으면 이동할 수 없는 나무는 얼핏 수동적인 생명으로 여기지지만 생존을 위해 환경에 적응하며 인간에 비해 훨씬 긴 세월을 견디는 모습 등에서는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집니다. 저자는 나무를 알현한다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왜 나무를 그런 존재로 여기는지도 이해가 갑니다. 작년에 읽었던 식물의 인문학이라는 책과 더불어 자연을 대하는 마음을 가다듬게 하기에 충분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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