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유혹의 기술 -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유혹했을까
오정호 지음, EBS MEDIA 기획 / 메디치미디어 / 2015년 8월
평점 :
품절



마케팅 영역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 지인이 소위 강추한다며 보내준 책이 있습니다. ‘PR의 아버지라 불리는 에드워드 버네이스가 쓴 <프로파간다>라는 책으로 대중에 대한 선전 전략이 담겨 있습니다. 이 책을 다 마무리하지 못한 시점에서 더욱 흥미를 끄는 다큐멘터리와 책이 나왔는데요, 각각 EBS 다큐프라임 <한국인의 집단심리 - 우리 We><대중 유혹의 기술>이라는 책입니다. <대중유혹의 기술>은 다큐멘터리 중 1, 2부에 해당하는 내용을 엮은 책으로 <프로파간다>와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자인 오정호 EBS PD는 머리말에서 흔히 서점에서 보게 되는 설득의 심리학도 아니요, 홍보 전문가들의 생생한 노하우가 들어 있는 실용서도 아니다. 다만 이 책은 어떤 기술에 대한 개론서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기술은 대중을 설득하는 기술이기도 하고, 대중을 기만하는 기술이기도 한데요, 저는 여기에 설득당하거나 기만당하지 않기 위한 기술도 하나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을 유혹하는 기술은 크게 일곱 가지로 나뉘어 소개됩니다.

 

1. 볼거리가 최고다(spectacle)

2. 입소문을 퍼뜨려라(viral)

3. 그들의 귀에 드라마를 집어넣어라(drama)

4. 공포와 분노가 더 빠르다(fear and anger)

5. 대중의 아이콘을 만들어라(icon)

6. 대중은 진짜를 봐도 믿지 않을 것이다(fabrication)

7. 대중의 무의식을 발견하라(subconsciousness)

 

각각의 단어만 보면 마케터들이 사용하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이럴마케팅은 이미 일반적이고, 의약품이나 보험, 교육 영역에서는 공포마케팅을 자주 활용합니다. 제품이나 홍보에 이야기를 입히는 것도 중요하고, 고객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니즈를 충족시키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대중을 설득하는 맥락으로 보면 왜 제 지인이 <프로파간다>를 추천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명확한 자료에 근거한 설득을 위한 기술이라면 문제될 건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대중을 기만하는 기술로써 사용될 때입니다.

 

에드워즈 버네이즈는 히틀러로부터 PR 자문 요청을 받고 거절했으나, 나치의 선전 지휘자인 요제프 괴벨스가 버네이즈의 책을 참고해 독일 국민을 선동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나치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선전활동가들이 거짓 보고서를 만들었고, 걸프전 때도 홍보대행사가 만들어낸 유언비어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

 

심리학 서적에 방관자효과를 설명할 때 자주 등장하는 제노비스 사건(38명의 주민이 살인사건을 목격했음에도, 아무도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사건)’<뉴욕타임즈>에서 아무런 근거 없이 보도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한 사건도 있습니다. 2005년 뉴올리언즈에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휘몰아쳤을 당시에는 시장과 경찰청장이 날조된 거짓말을 해 복구에 힘써야 할 시기에 오히려 흑인에 대한 혐오 감정이 격화된 사례도 있습니다.

 


이미지와 영상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게 사실인지 정교하게 조작된 것인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같은 사건 속 같은 인물에 대한 사진이라도 어느 순간에 찍느냐에 따라 멋진 사진이 되기도 하고 소위 굴욕사진이 되기도 합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의 발달로 근거 없는 소문이나 사실관계가 뒤바뀐 내용이 순식간에 확산되기도 합니다. 이러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선동을 돕는 경우까지 생길 수 있다는 게 더 무섭습니다.

 

저자는 우리들이 만나 좋은 대중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믿으며, 우리는 좋게 만들어질 수 있다(we can be made to be good)고 강조합니다. 선전이나 선동, 프로파간다, PR, 홍보, 커뮤니케이션, 설득의 기술도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천차만별일 겁니다. 그러하기에 더욱 대중 유혹의 기술을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다양한 사례를 기반으로 한 설명과 이해를 돕는 사진 자료가 많이 포함되어 있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저자가 말 한대로 개론서인 만큼 더 심도 있는 내용을 알기 위해선 독자 스스로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사례도 많이 담겨 있다는 것 또한 이 책이 주는 장점입니다. 포토샵이 만들어지기 전 이미 링컨과 스탈린 등이 사진을 조작했다는 것 등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됐고, 정부나 기업, 언론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례를 접하며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재미있게도 저는 <대중 유혹의 기술>이라는 책에 유혹되어 책을 펼쳐보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유혹에 당한 게 제게 충분히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에드워즈 버네이즈를 만나러 갔던 뉴욕시립대 교수는 버네이즈의 서재를 본 후 그것은 방대한 책을 모아놓은 것이었는데 수천 권은 되어 보였다. ... 그것들은 단순히 천박한 광고업자의 책장이 아니라, 한 지식인의 무기고였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知彼知己(지피지기) 百戰不殆(백전불태)‘라 했는데, 각종 선전기술에 둘러싸인 이 시대에도 필요한 교훈이 아닌가 싶습니다. 무언가를 믿기보다 우선 의심부터 해야 할 것 같은 이 시대가 참 안타깝습니다만, 기만당하거나 쉽게 유혹당하지 않기 위한 출발점으로 이 책에게는 유혹을 당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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