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
샤론 모알렘 지음, 정경 옮김 / 김영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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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수준은 아니지만 제가 지금껏 봐 온 영화 중 많은 분들께 추천하는 영화 중 하나가 <가타카>라는 영화입니다. 애단 호크와 우마 서먼, 주드 로가 출연하는 영화로 유전자 분석·교정을 통해 맞춤형 아기를 태어나게 할 수 있는 미래 사회가 배경입니다. 그 영화 속에서 애단 호크의 운명은 심장 질환과 범죄자의 가능성을 지니고, 31살에 사망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좌절한 부모는 시험관 수정을 통해 완벽한 유전인자를 가진 그의 동생을 출산하게 되죠. 1997년에 나온 영화니 부담 없이 말씀 드리자면 에단 호크는 완벽한 유전인자를 지닌 동생은 물론이고 암울하던 자신의 운명마저 극복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에 읽게 된 <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를 읽는 내내 떠오른 인물이 영화 <가타카> 속 에단 호크입니다.


멘델이 그의 콩들에서 볼 수 없었던 것은 유전자가 우리에게 주는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유전자에게 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질병과 인간 유전자의 묘한 관계를 다룬 <아파야 산다>의 저자이기도 한 샤론 모알렘이 이번에는 유전자는 주어진 운명이 아니다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이끌고 왔습니다. 흥미를 느꼈건 아니건 학창시절에 멘델의 유전법칙을 배웠을 겁니다. 멘델의 유전법칙에 의하면 우리가 잉태되는 순간 우리의 유전자는 결정됩니다. 저자는 우리 삶이 유전자에 의해 조형된다는 건 인정하지만, 우리의 DNA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우리의 DNA는 바뀌고 있고, 이를 통해 우리는 유전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거죠.



책의 첫인상은 자칫 생물학, 의학 분야의 복잡한 용어로 가득한 딱딱한 책이라 생각될 수도 있지만,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이해할만한 교양서적입니다. 유전적 특성이 한 세대 내에서 변할 수 있고 심지어 다음 세대까지 전해지는가를 연구하는 후성유전학’, 우리의 행동이 유전자에 끊임없이 영향을 끼치고 있어 유전자가 발현되는 방법을 바꾸고 우리의 몸이 우리의 유전자를 이용한다는 유전적 발현’. 이렇게 두 가지 개념을 머릿속에 새겨두시면 길을 잃지 않고 유전자의 새로운 세계로 다다갈 수 있을 겁니다.


저자는 우리가 배워온 것만큼 유전자가 엄격하고 고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늘 변화하는 삶의 요구에 적응할 수 없었을 테고, 양육이 본성을 능가할 수 있으며 정말 능가하기도 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벌과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결과와 스페인의 다이어트 캠프, 911테러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 실제 의사로 활동하며 접한 다양한 유전병 사례를 제시하며 유전자 발현을 바꾸는 후성유전학을 설명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멘델이 유전법칙을 발견할 당시의 뒷이야기도 읽는 재미를 더했습니다.



완벽한 유전적 유산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오랜 미사용, 노화, 건강치 못한 식습관, 호르몬 변화 등의 원인으로 우리 안에 숨겨진 구조를 형성하는 정교한 균형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101p)


저자는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은 어떤 유형으로든 유전적인 결과가 뒤따른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보자며 음식(Chapter 5. 유전자 잘 먹이기), 약품(Chapter 6. 유전자가 하는 일과 예방의 역설), 건강보조제(Chapter 7. 편 가르기)등에서 우리 생활과 유전자와의 관계를 연결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별로 지니고 있는 유전자가 다른 만큼 그 유전적 구성에 맞지 않는 상황도 초래될 수 있다는 거죠. 세상에는 6천여 개가 넘는 희귀 질병들이 있고 유전병의 목록은 계속 길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유전적 발현에 따른 후성유전학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 또한 무시할 수 없기에 유전학은 더욱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책을 읽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마치 관상을 보듯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유전적 상태를 찾는 저자의 병적(?)인 일상은 역설적으로 측은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최소한 생활의 불편은 느끼거나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할 유전적 결함이 없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 감사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후성유전학에서 가장 급성장하고 있으며 가장 흥미진진한 분야는 유전력(유전 가능성)으로 어떻게 삶의 조건에서 비롯된 유전자 발현의 변화들이 다름 세대나 그 이후 모든 세대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후성유전학 뿐만 아니라 유전자에 대한 연구가 유토피아를 위한 방향으로 갈지 결국 디스토피아를 불러올지 모르지만 분명 이 분야의 연구와 산업 규모가 점점 증가할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유전자 해킹하기(Chapter 9)’의 내용을 유념해서 읽으면 도움이 될 겁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점은 우리의 행동에 따라 유전자는 분명 변할 수 있다는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저자의 메시지를 잘 반영해 원제목인 Inheritance를 번역했다고 생각합니다. 조사 하나가 차이날 뿐이지만 <유전자, 당신을 결정한다><유전자, 당신이 결정한다>가 주는 메시지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마 유전적으로 아무런 결함이 없는 사람은 없겠죠. 그리고 설령 다른 사람보다 물려받은 유전자가 약간 뛰어나다고 해서 인생 전체도 우수하리라는 법은 없습니다. 제가 영화 <가타카>를 보며 받은 느낌 그대로 유전자가 우리의 출발선을 정할 수는 있지만, 결승선을 정하는 건 결국 우리 자신이니까요.


결국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물려받은 유전자에 달렸다기보다, 하루하루 스스로 슈퍼히어로가 되기로 선택하는 데 달린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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