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없는 나라 -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이광재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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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분명 동학농민혁명에 대해 배웠지만 녹두장군 전봉준, 조병갑, 사발통문, 우금치 전투 등 산발적인 내용만 기억할 뿐입니다. 특히 조병갑은 기말고사 주관식 문제의 정답이었는데 지금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동학농민혁명이 아니라 동학농민운동으로 불렸죠. 이 책을 읽으며 몇가지 정보를 찾아보니 2004년에야 국가에서 혁명으로 인정했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프랑스 대혁명에 비할 수 있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일임에도 그동안 동학농민혁명에 너무 무관심했다는 반성이 듭니다.


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인 <나라 없는 나라>는 동학농민혁명이 시작되는 때부터 전봉준 장군이 체포될 때까지를 다룬 소설입니다. 작가는 전봉준 평전을 저술해 2012년에 출간했을 정도로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운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심사평에서 특히 그 당시의 박물지나 지도를 모두 뒤진 듯 당시 산천의 풍경이나 장소에 대한 능수능란한 묘사로 동학농민혁명 시기의 실감을 한껏 고조시키는 대목도 이 소설의 득의의 영역이다라고 평했을 정도로 교과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몰입감에 저절로 페이지가 넘어 갑니다.



이야기는 대원군과 전봉준 장군의 만남으로 시작합니다. 대원군과 전봉준 장군의 긴밀한 관계가 조금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사실 동학농민혁명이 단순히 조병갑으로 대표되는 탐관오리에 대항한 전쟁이 아니라 청나라와 일본에 얽힌 국가를 제대로 세우기 위한 전쟁이었습니다.


- 뜻을 모은 지 한 이십 년 되었나요?

회한에 젖은 얼굴로 김덕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 벌써 그리되었지.


그간 얼마나 오랜 기간 탐관오리에 수탈이 있었는지, 불안한 국제정세로 인한 나라의 불안정이 민중들을 얼마나 견디기 힘들게 했는지, 동학농민혁명이 얼마나 치밀하게 준비됐는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동학농민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패하고 전봉준 장군마저 잡힌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남은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그 안타까운 결말에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사실 제가 ...’하는 작은 한숨을 쉬며 마음이 가장 아팠던 대목은 오히려 앞부분에 등장하는데요, 전봉준 장군의 딸인 갑례가 전봉준 장군과 그를 따르는 을개에게 도장을 건내는 부분입니다.


기어드는 답변 끝에 갑계가 손에 쥔 물건을 머뭇머뭇 내밀었다. 회양목에 들기름을 먹인 도장으로 끝에 뚫린 구멍에는 붉은 수술이 달려 있었다. 도장의 반반한 면에는 ()’이라 새겨져 있었다.

...

-옛다, 너도 가져라

동곡리에 이르러 갑례는 파란 수술이 달린 도장을 내밀었다. 도장을 받아들며 무심결인 듯 손을 움켜쥐자 온기로 다스워진 도장만 남긴 채 고사리 같은 것이 쑥 빠져나갔다. 파란 술이 달린 도장에는 ()’이라 새겨져 있었다.

...

식은 고구마를 삼키며 동곡리를 빠져나와 들길을 걷던 을개는 그제야 도장이 시신을 찾을 때 쓸 물건임을 알아차렸다.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민중들은 나라의 관리들보다 오히려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작년, 2014이 동학동민혁명 120주년의 해였습니다. 책 마지막 부분 대화는 이렇습니다.


- 선생님, 저 재를 넘으면 무엇이 있습니까요?

- 몰라서 묻는 게냐? 우리는 이미 재를 넘었느니라. 게서 보고 겪은 모든 것이 재 너머에 있던 것들이다.

- 그럼 이제 끝난 것입니까?

- 아니다. 재는 또 있다.

- 그럼 그건 어쩝니까요?

- 그냥 두어도 좋다. 뒷날의 사람들이 다시 넘을 것이다. 우린 우리의 재를 넘었을 뿐. 길이 멀다. 가자꾸나.


120년 동안 우리는 어떤 재를 넘어 왔을까요? 동학농민혁명 국가기념일 제정은 지자체와 동학 관련 단체마다 의견이 분분해 2004년부터 장기 표류중입니다. 각자 자신들에게 의미 있는 날을 기념일로 하고자 하기 때문이죠.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사료와 연구가 부족한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추진이 이슈가 되면서 우리의 역사에 대해 평소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시점에서 접한 120년 전 민중의 이야기가 역사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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