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두고 읽는 서양철학사
오가와 히토시 지음, 황소연 옮김, 김인곤 감수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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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 외에도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인생관, 세계관, 신조 따위를 이르는 말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거창하건 소박하건 각자 가지고 있는 철학이 있을테고, 이 단어가 가진 뜻 그대로 우리 인생과 무척 연관된 것임에도 철학이라고 하면 모호하고 재미없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게 사실입니다.


개인적으로 몇 년 전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은 후 철학을 조금 더 깊게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심만 그러할 뿐 막상 철학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하니 마땅한 방법도 적절한 책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요.


시간이 흐르고 흘러 이번에 펼쳐보게 된 책이 <곁에 두고 읽는 서양철학사>입니다. 이 책이 가진 장점은 철학자 개개인의 사상과 함께 자연스럽게 서양철학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소크라테스를 필두로 데카르트, 칸트, 니체, 푸코, 마이클 센델까지 3천 년 간의 서양철학, 50인의 서양철학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한정된 분량에 많은 철학자를 등장시키다보니 깊이는 덜할 수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겠죠. 핵심적인 내용을 접하신 후 관심 있는 시대나 철학자에 대해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지식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질문으로 가득한 책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50인의 철학자가 등장하는 이 책은 철학자별로 두 가지의 핵심적인 질문을 통해 철학자 각자의 주요 개념이 소개됩니다. 여기에 더해 저자 또한 머리말에서 왜 서양철학을 배우고 익혀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철학이라는 학문이 고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 자체가 철학이 보편적인 내용과 지식을 갖추고 때문인데, 제대로 철학하기 위해서는 비판적, 근원적 사고가 필요합니다. 비판적, 즉 의심한다는 것은 철학에 있어서는 앎을 추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앎이 필요한 분야는 달라지고 있지만 어느 시대건 그 시대 사람들이 추구하는 앎에 대한 해법을 제시하기 위해 철학은 노력해 왔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시 첫 번째 주자는 소크라테스입니다. 물론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탈레스, 피타고라스와 같은 철학자도 있었지만, 소크라테스에 이르러 이성을 통한 사유가 확립되며 철학의 문이 본격적으로 열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이 바로 무지의 지질문입니다. 무지의 지란 겸허하게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인데, 이를 인정하고 더 알고자 노력하면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진리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질문을 통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는 거죠.


저는 이 책에 질문이 가득한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과연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많은 철학자들의 수많은 질문 속에서 어쩌면 진리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을지도 모르죠.



제게 철학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래도 조금은 더 흥미롭게 책을 대할 수 있었는데요, 우선 철학자들의 사상이 묘하게 연결되는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물론 모든 학문이 과거의 발견을 토대로 발전하는 건 마찬가지겠죠. 위에서 말씀드린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는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인 몽테뉴와 연결됩니다. 몽테뉴는 누구보다 지성과 학식을 겸비했던 사람이지만, 무지와 어리석음을 깨닫고 늘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으며 진정한 앎을 추구했습니다.


미적분학으로 유명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라는 개념은 현대 네트워크 사회와 비슷한 점을 발견할 수 있고, 리바이어던으로 잘 알려진 홉스의 사상은 로크나 루소가 주창한 사회 계약설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으며 근대 입헌주의 국가의 기틀을 닦기도 했습니다. 철학이 우리 삶과 맞물리는 학문임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책을 재미있게 읽기 위한 두 번째 포인트는 독자 스스로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철학자를 찾아보는 겁니다. 미처 몰랐던 철학자의 사상에서 자신의 생각과 방향이 같은 면을 찾아보는 것도 좋구요. 저 개인적으로는 예전부터 프랜시스 베이컨, 존 로크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베르그송, 듀이 등 다른 철학자의 생각에도 많이 공감했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철학자의 사상을 배우는 것도 큰 장점으로 다가온 책입니다. 그리고 세계-인간-이성-나의 존재-정치철학까지 시대별로 달라지는 질문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질문 속에는 그 시대와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담겨 있으니까요.


저는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 저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습니다. 소크라테스 파트의 두 번째 내용인 '질문은 왜 중요한가?'가 제겐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 이후의 철학자들이 이전의 사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질문을 던졌기에 오늘날까지 철학이 발전한 겁니다. 비즈니스 영역에서도 질문은 무척 중요한데요. 5why 기법도 질문을 통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는 기법이 있고, 유대인들의 교육법인 하브루타(havruta)의 핵심도 질문입니다. 철학을 뜻하는 필로소피(philosophy)'는 그리스어로 지혜를 뜻하는 소피아(sopia)사랑한다를 의미하는 필로(philo)가 합쳐진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했다고 하는데요, 지혜를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야말로 끝없는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가 철학을 재미없게 여긴 이유는 지나치게 지식으로만 접근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저자는 철학은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철학 개념은 현대인의 고민과도 연결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인지한다면 더 이상 철학이 지루한 학문으로 여겨지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우리가 제대로 아는 것은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인간은 늘 앎을 갈구하고 지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바로 이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앎을 향한 노력을 멈추는 순간 이미 인간의 의미를 상실한 존재가 될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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