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그 자체 - 40억년 전 어느 날의 우연
프랜시스 크릭 지음, 김명남 옮김, 이인식 해제 / 김영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프랜시스 크릭은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으로 노벨상을 수상한 유명한 과학자입니다. 하지만 저에겐 DNA의 이중나선 발견에 결정적 단서가 된 X선 분석 자료를 연구한 여성 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을 배신한 과학자로도 기억되는 사람입니다. (참고: 로잘린드 프랭클린과 DNA, 양문, 2004)


아무튼 프랜시스 크릭이라는 한 과학자의 진실이 무엇이건 제 관심을 끄는 책이 출간되었는데요, 지구 생명의 시작에 관한 흥미로운 이론을 다룬 <생명 그 자체(Life Itself)>라는 책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화론과 창조론은 대립하고 있고, 그 궁극적인 의문은 결국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의 문제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책은 그 명칭도 생소한 정향 범종설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정향 범종설이란 간략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단계를 거쳐 생명이 탄생했다는 이론입니다.


1. 고도로 발달한 외계 생명체가 DNA를 담은 일종의 씨앗인 미생물을 지구로 보냈고,

2. 착륙한 로켓에서 빠져나온 미생물이 물을 만나 다양한 형태로 번식하고

3. 미생물이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의 생명체가 되었다


프랜시스 크릭은 2004년에 사망했고, 이 책도 1981년에 쓰인 책이니 30년도 더 지난 시점에서 번역된 셈인데요, 아마 정향 범종설이라는 이론은 오늘날에도 논란을 일으킬만한 이론이라 생각됩니다. 발표 당시엔 말할 것도 없었겠죠.



무엇보다 외계 생명체라는 단어가 눈에 띕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는 외계인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물론 제가 미드 엑스파일(The X-Files)을 즐겨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이 광활한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이 지구 하나뿐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프랜시스 크릭은 육지와 바다가 존재하고, 중심별로부터 꾸준히 복사를 받으며, 적당한 대기가 있어 표면에 생명 탄생에 적합한 유기물들이 다수 함유된 걸쭉한 원시 수프가 존재하는 행성은 우리 은하 내에도 제법 흔할 거라고 예상합니다.


생명의 시작,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제 호기심을 충족시켜 줄 거라 기대하고 책을 펼쳤지만 사실 제겐 지극히 어려운 책입니다. 물론 평소 생물학이나 지구과학에 많은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라면 훨씬 이해가 빠를 겁니다. 15개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9장까지는 우리의 생명이 우주의 어디에서 생겨났을지 그리고 생명 탄생이 얼마나 드문 사건이었을지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위해 잘 알려진 빅뱅, 태양계에 대한 이론부터 세포의 복제와 돌연변이, DNARNA, 유기화학의 원소 등 과학 전반에 걸친 설명이 이어집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기엔 제 지적인 능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생명이 탄생하고 진화하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정도로 받아들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꽤나 많은 인내심과 함께 읽어온 9장이 끝나면 10장부터는 원시수프에서 인간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 외계생명체가 로켓을 만들어 미생물을 다른 행성에 보내는 과정에 대한 상상, 일반적으로 알려진 생명 탄생에 대한 이론과의 비교 등이 기술됩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의 역사를 보통 약40억으로 보는데요, 프랜시스 크릭은 우리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사실을 아래와 같이 나열합니다.

주어진 시간이 대단히 길었다는 것

지구의 표면에는 다양한 미세 환경이 있었다는 것

다양한 화학적 가능성들이 많이 주어졌다는 것

그토록 오래전에 발생했거나 발생하지 않았던 사건을 정확하게 파헤치기에는 우리의 지식과 상상력이 너무 미약하다는 것

그 시기에 대한 우리의 발상을 확인해볼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


사실 현재까지 알려진 생명 탄생에 대한 이론은 모두 하나의 가능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0억년 전의 사건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요. 그리고 프랜시스 크릭은 우리의 생명이 우주의 다른 곳에서 생겨났다는 발상을 하나의 가능성으로 더합니다.



프랜시스 크릭 스스로도 정향 범종설에 대한 비판을 인정하고, 과학 이론으로서 결함을 또한 인정합니다. 프랜시스 크릭의 아내조차 정향 범종설이 진정한 이론이라기보다 과학소설처럼 보인다고 할 정도니까요. 프랜시스 크릭은 이것이 과학 이론으로서 유효하기는 하되 이론으로서는 미숙하다고 하면서도, 성급한 부정적 예측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도 생명의 기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긴 힘들겠지만,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하기엔 또 뭔가 그럴싸한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니까요.


설령 과학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해도 충분히 의미 부여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이라 불리는 몇가지 사례를 살펴볼까요? 프랑스의 SF 작가 쥘 베른이 해저 2만리에서 등장시킨 잠수함 노틸러스호는 미 해군의 첫 번째 핵잠수함 노틸러스의 모형이 됐습니다. 1911년에 나온 휴고 건즈백의 SF 소설 랄프124C41+’에 등장한 쌍방향 TV, 광섬유, 화상전화, 자기를 이용한 녹음기 등은 이미 현실화 되었습니다. 영국의 아서 클라크는 1951<우주로의 서곡>이라는 책에서 달에 보내는 유인우주선에 대한 계획과 세부적인 과정을 묘사한 바 있는데, 결국 인류는 1969년에 달에 발자국을 남기는 데 성공합니다.



우리가 상상만 해 온 많은 것들이 현실이 되고 있고, 이제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나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는 개인로켓 산업까지 발전시키고 있습니다. 언젠가 일론 머스크의 화성 이주 계획이 성공할 수도 있고,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토성 근처에 거대한 우주정거장이 건설될지도 모르는 일이죠.


코스모스의 저자인 칼 세이건은 이 책에 대해 도발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황홀한 책이다!”라고 평했다고 합니다. 제가 학창시절 과학시간에 조금 더 열심히 공부했다면 황홀까지는 아닐지라도 조금 더 놀라운 느낌을 많이 받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평소 생명의 기원에 대해 조금이라도 흥미를 가지고 계셨던 분들께는 충분히 도전 해봄직 한, 그리고 분명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올 책이라 생각합니다.


40억년 전 어느 날의 우연은 진정 어떻게 시작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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