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 맥주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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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소설은 종종 읽어왔지만 모리사와 아키오는 처음 접한 작가입니다. 하지만 저만 잘 몰랐을 뿐 꽤 많은 고정 팬을 확보한 작가인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엔 청춘이라는 단어가 과거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긴 하지만,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처럼 청춘이 주는 특유의 기운이 있기 마련입니다. 책 날개에 소개된 작가의 다른 소설인 <푸른 하늘 맥주>와 이번에 제가 읽은 책인 <붉은 노을 맥주> 모두 표지 청춘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립니다.


빠르게 펼쳐지는 갖가지 사건과 이야기를 읽다보면 책을 본다기보다 청춘영화를 한 편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미래를 고민하기는커녕 자유롭게 여행하고 취할 정도로 맥주를 마시는 에피소드들은 이거 뭐 이런 한량이 다 있어라는 생각을 떠올리게도 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과거가 담긴 에세이입니다. 누가 뭐라고 하건 과거에 여행을 통해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왔기에 현재의 모리사와 아키오가 완성된 거겠죠.


<모리사와 아키오>


저도 오래된 친구들과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다보면 당연히 옛날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힘들었던 이야기보다는 늘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주된 안주거리가 되죠. 누구건 과거가 힘들지 않았겠냐마는 또 그만큼 청춘에 어울리는 추억도 많고 그 다양한 경험이 오늘날의 저를 만든거라 생각합니다. 모리사와 아키오 또한 이 책에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어려운 경험이 있었겠죠. 단지 정말 붉은 노을 맥주에 어울리는 청춘을 펼쳐낸 거라 생각합니다.


재미있게 책을 읽는 중에 제 마음을 콕 찌르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A군과의 에피소드인데요, 조금만 발췌해서 옮겨보겠습니다.


A: “모리사와씨, 내일은 어디로 가나요?”

모리사와: “아무데도 안 가. 여기서 느긋하게 쉴거야. 마음이 동하면 지도 펼치고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강을 찾을지도 모르고

A: “, 왜 앞으로 나아가지 않나요?”

모리사와: “앞이라니?”

A: “목적지요, 어디로 향하는 거예요?”

...

내가 좋아하는 가네코 미스즈 시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모두 다르고 모두 좋다.


이 대화 이후 A군은 모리사와 아키오에게 조언을 이어갑니다.


솔직히 모리사와 씨처럼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여행한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생각하면서 살지 않으면 온전한 어른이 되지 못해요. 이대로라면 절대 건실한 인생을 살아갈 수 없을 거예요.”


저는 오히려 A군의 인생이 어떻게 됐을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건 문제지만 작가의 여행이 아무 생각 없이 진행된 건 아니겠죠. 오히려 정답만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여행마저도 정답을 추구하려는 자세, 그리고 자신의 기준에만 근거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자세가 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너무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건 아니겠죠? 같은 책을 읽더라도 다양한 해석을 하는 게 당연한거고,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뭔가 의미를 찾아내건 아니면 그냥 재미를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읽건, 결국엔 붉은 노을을 향해 두 손을 번쩍 들고 있는 책 표지 이미지처럼 상쾌한 기분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책입니다. 특히 더위에 지치는 여름날, 이문세의 붉은 노을을 틀어놓고 맥주를 마시며 읽는다면 비록 방에 앉아 책을 읽더라도 여행지에서 작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책 표지에 작가의 경험을 압축한 문장이 있습니다.


여행의 목적은 그날의 쾌락이야!


자기계발서도 좋고, 인문학서도 좋습니다만 가끔은 지금의 즐거움을 위한 책 한 권 펼쳐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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