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측 죄인
시즈쿠이 슈스케 지음, 김은모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2010년에 출간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있습니다. 언론에서도 많이 추천한 책이고 오랜기간 베스트셀러 자리에 머문 만큼 많은 분들이 읽어보셨을 겁니다. 다만 책을 다 읽고 나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깔끔하게 정리되기는커녕 각자 가지고 있던 정의(正義)의 정의(定義)’에 대한 기준이 애매해졌을 겁니다. 최소한 저는 그랬습니다.


작년에 읽었던 <제노사이드>에 이어 오랜만에 읽은 일본 소설입니다. 일본 '문예춘추 미스터리 베스트 10''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 동시 선정되었다고 하니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아주 흥미로운 책 일거라 생각됩니다. 물론 저도 570페이지가 넘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도로 읽은 책입니다.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 검찰 측 죄인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핵심적으로 제기되는 주제가 바로 정의입니다.


책은 사법연수원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검찰 교관으로 참여한 베테랑 검사 모가미는 연수생 오키노를 보며 뛰어난 검찰로 성장할거라 기대합니다. 그 예측 그대로 5년 뒤, 검찰이 된 오키노는 연수생 시절부터 존경해오던 모가미와 함께 70대 노부부 살해 사건에 배속되어 함께 수사를 맡게 됩니다.



며칠 후, 오키노의 보고서를 검토하던 모가미는 사건의 용의자 목록에서 대학 시절 자신이 귀여워하던 기숙사 관리인의 딸 유키 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됐던 마쓰쿠라의 이름을 발견하고 충격에 빠집니다. 그 사건은 결국 범인을 잡지 못한 채 마무리 되었고, 공소시효마저 끝나버렸기 때문입니다. 범인이 처벌받지 못하는 부조리를 참을 수 없던 모가미는 결국 23년 전 사건의 죄를 묻기 위해 마쓰쿠라를 노부부 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몰아가고, 급기야 법이 정한 경계를 넘어섭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모가미와 오키노의 갈등, 즉 검찰 측 죄인인 마쓰쿠라를 범인으로 만들려는 모가미와 범인은 마쓰쿠라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오키노의 갈등이 빠르게 페이지를 넘기게 만듭니다.


제가 위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를 거론한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는 없으니 책 내용을 많이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모가미 입장에서는 23년 전 사건의 범인인 마쓰쿠라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부조리합니다. 모가미에게 이건 정의가 아니죠. 하지만 오키노 입장에서는 아무리 마쓰쿠라가 23년 전 사건의 범인이라고 해도 현재의 법을 어기면서까지 다른 사건의 범인으로 몰아 처벌하는 건 정의가 아닙니다.



무엇이 정의일까요? 이야기 자체로도 흥미로운 소설이지만 책을 읽는 내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모가미 보다는 오키노 입장에서 책을 읽어 갔습니다. 우선 두 주인공의 직업이 검찰인 만큼 법을 정말 법대로 집행할 의무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무리 모가미가 23년 전 사건에 대한 분노가 크다고 해도, 상당히 냉정하게 느껴졌던 캐릭터가 정말 검찰로서의 선을 한참 넘어서는 행동까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또 마지막페이지를 읽는 순간엔 정의라고 생각하고 한 행동이 정의롭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아이러니도 느끼게 됩니다.


모가미에게는 그게 진정 정의였던 것 같습니다. 모가미는 연수생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들은 손에 법률이란 검을 들고 있어. 법치국가에서는 최강의 무기지. 악인을 베어 넘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검사 일의 묘미라고.”


사실 이 책이 더 흥미로웠던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슈가 됐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25년입니다. 최근에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 1소위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이후에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을 가져봐야 할 것 같고, 한편으론 이 책의 출간시기가 절묘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작가가 소설을 쓰기 전에 작중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많은 조사와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의 작가인 시즈쿠이 슈스케 역시 현직 변호사, 전직 검사 등 법조계 관계자를 인터뷰하고 다양한 문헌을 참고해 사실성을 높였다고 합니다.


다만 소설로서 아쉬웠던 점을 꼽자면, 저는 모가미와 오키노가 수사 과정에서 검찰 대 검찰로서 직접적인 강한 갈등과 대립이 있을거라 예상했는데, 예상보다는 약하지 않았나 싶기는 합니다. 아마 선배와 후배 서열이 강한 조직이기도 하고, 오키노도 자신의 주장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기엔 경력과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겠죠. 이것도 현실의 반영이라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정의는 무엇인가요? <검찰 측 죄인>을 재미있게 읽으시고, 정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신다면 책을 사는데 쓴 비용과 책을 읽는 데 쓴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