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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 -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그리고 석유
홍익희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5년 6월
평점 :

서점에 가면 역사ㆍ문화에 관련된 책이 있는 곳에 꼭 들르곤 합니다. 특히 한 가지 소재를 가지고 역사의 흐름을 이야기하는 교양세계사 분야의 책은 마치 옛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재미도 있고 지식도 얻을 수 있어 즐겨 찾게 됩니다.
이 책은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까지 총 다섯 가지 상품의 역사를 통해 문명의 발달과정, 경제, 인류의 삶을 두루 살핍니다. 설탕, 커피 등 한 가지 아이템으로 역사와 문화 전파과정을 다루는 책에 비해 깊이는 조금 덜할 수 있지만 반대로 다양한 소재를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소금과 모피를 다룬 부분에서는 우리나라 역사와 관련된 내용까지 정리되어 있어 외국 저자의 책에서는 접하기 힘든 내용도 담겨 있다는 점도 만족스럽습니다.

요즘엔 사회적으로 워낙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 저염식 요리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지만 과도한 나트륨 섭취가 문제일 뿐 소금은 생존에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저자가 가장 먼저 소개하는 상품도 소금입니다.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가 모두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건 상식으로도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농사를 위해 물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긴데요, 4대 발상지가 모두 주변에 소금이 나는 강 하류에서 발원했다는 공통점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수메르문명 또한 야생 밀과 소금을 바탕으로 융성했고, 이후에도 많은 인류가 소금 거래를 통해 시장을 형성하고 도시를 만들며 발전했습니다. 특히 페니키아인들은 소금을 교역하며 원양항해까지 발달시켰다고 하니 먼 옛날부터 소금이 인류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금속의 세계사>라는 책을 읽으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국가간 금속 교역이 이루어진 걸 알고 많이 놀랐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소금에 대해서도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로마 또한 유럽 최초의 인공 해안염전을 만들었고 소금은 그 화려한 제국이 번성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봉급을 뜻하는 샐러리, 봉급생활자를 뜻하는 샐러리맨도 로마 초기에 급료를 소금(살라리움)으로 지불했던 것에서 유래했으니 소금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셈이죠. 소금은 예로부터 변함없는 우정ㆍ성실ㆍ맹세의 상징으로 여겨졌다고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소금의 맹세’도 여기서 유래한 것이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에도 유다 앞에 소금 그릇이 엎어진 채로 그려져 있다는 것도 책을 읽으며 알게 된 흥미로움 내용입니다.
바닷물에서 천일염을 얻기 위해서는 갯벌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나라 서해의 갯벌이 세계 5대 갯벌 중 하나이자 아시아에서 유일한 대형 갯벌이라고 합니다. 이런 천혜의 자연환경이 부디 개발이나 환경 파괴에 대한 이슈 없이 오래 보존되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상품은 모피입니다. 사실 모피는 글로벌 동물보호단체인 페타(PETA)나 국내 동물보호단체인 카라의 모피 반대 운동 등으로 꾸준히 이슈가 되는 상품이기도 합니다. 캠페인에 직접 참여해본 적은 없지만 저도 물론 반대하기도 하구요. 현재의 이런 분위기를 떠나서 모피는 러시아의 발전에 기여하기도 하고, 아메리카 서부 개척에도 큰 영향을 끼친 상품입니다. 1625년에 서인도회사가 맨해튼에 비버 모피 수집을 위해 가죽거래교역소를 설치했고, 이는 이듬해 서인도회사 총독이 인디언에게 맨해튼을 사버리는 역사적 사건까지 연결됩니다. 영국 국왕 찰스 1세는 상류사회 사람들은 반드시 비버 모피로 만든 모자를 써야 한다는 포고령을 내린 적도 있다는데, 당시에 얼마나 많은 비버들이 희생됐을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섯 번째로 소개되는 상품인 석유는 가장 최근에 개발된 상품이자 많은 국제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원인 중 하나는 독일의 안정적 석유 공급을 저지하기 위해서이고,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이 소련을 침공한 목적도 코카서스 지방의 유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중동지역 전쟁에도 석유가 얽혀 있습니다. 이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한 여러 나라의 머리싸움은 끝없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상품(商品)은 당연히 이윤 추구가 목적이긴 하지만 석유 외에도 보석, 향신료 모두 지나친 욕심 때문에 전쟁, 식민지 등 인류에게 해가 되는 행위가 함께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상품 이야기는 사실 끝이 없다. 이 책에 언급된 다섯 가지 상품 이외에도 중요한 상품이 많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듯 우리 주변의 다른 상품들도 분명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당연히 인류의 역사와 연관시켜도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이면에는 인간의 욕심으로 인한 전쟁과 분쟁, 환경 파괴와 같은 여러 가지 씁쓸한 이야기도 많겠죠.
책을 읽다보면 유대인과 관련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만큼 유대인의 상업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저자가 <유대인 이야기>라는 책도 출간한 바 있는 만큼 유대인 역사에 전문적 지식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유대인 이야기>에도 관심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연관된 책으로 이어가는 게 독서의 매력이기도 하죠.

많은 분들이 후추로 대표되는 향신료가 세계사에 미친 영향은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향신료 외에도 소금, 보석, 향신료, 석유를 세계사와 연관해 생각해 볼 수 있어 책을 읽는 내내 흥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시험을 잘 보기 위해 읽는 책이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시길 바랍니다. 다섯 가지 상품 이야기가 31가지 꼭지로 나뉘어 있으니 연재되는 칼럼을 읽듯 출퇴근시간에 지하철에서 읽기에도 좋습니다.
다만 내용을 더 풍성하게 하기 위해 첨부한 그림이나 사진에 조금 더 신경 썼으면 좋아겠다 싶은 부분도 있습니다. 소금바다 옆에 생긴 인류 최초의 도시 ‘예리코’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첨부한 지도(21페이지)는 왜 위성사진을 썼는지, 그것도 위치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주변 지명은 전혀 넣지 않은 채 생소한 예리코 지역만 지도에 표기했는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38페이지 훈족 그림과 116페이지에 첨부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장교와 웃는 소녀>라는 그림은 마치 복사한 사본은 다시 복사한 것처럼 색이 어둡게 나왔습니다. 사소한 부분일수도 있지만 조금 더 신경을 써서 출간했다면 책에 가득 담긴 풍성한 내용이 더욱 빛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