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강산 3 박정배의 음식강산 3
박정배 지음 / 한길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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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채널을 돌리다보면 어디에선가 음식과 관련한 화면이 나올 정도로 음식 프로그램이 인기입니다. 요리법이나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부터 요리대결 프로그램까지 이제 음식은 예능프로그램의 소재로도 쓰입니다. 사실 음식만큼 남녀노소 불문하고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아이템이 있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고 있고, 단순히 생존과 결부된 음식 섭취가 아니라 이제는 삶의 질과 관련된 측면에서 음식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워낙 많은 프로그램에서 맛집으로 소개하는 음식점이 많아진데다 블로거맛집까지 더해져 말 그대로 맛집의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큰 기대를 가지고 방문했다가 실망하고 오는 경우도 생깁니다. 사람마다 음식에 대한 취향이 다른 점도 있겠지만 지나치게 일시적으로 유행하는 음식이 소개되거나 면밀한 검토 없이 소개되는 이유도 있을거라 생각되는데요, 그런 점에서 <음식강산 3 : 고기 굽는 화롯가에 이야기꽃이 핀다>라는 책은 많이 다른 느낌을 줍니다.


저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가끔 맛집프로그램을 보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반응과 평가가 거슬립니다. 맛이 좋은 건 이해가 가는데 입 한가득 음식을 넣은 채 양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소위 쌍따봉), 최고라고 외치는 모습이 영 자연스럽지 않고 보기에 불편합니다. 요리를 소개하는 글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 책 속에 담긴 음식점들 대부분은 해당 음식을 개발했거나, 원조의 전통을 이어받아 대를 이어 맛과 원칙을 유지하는 곳들입니다. 사실 음식점 외관만 보면, 정보가 있는 상태에서 알고 찾아가지 않는 이상 그냥 스쳐 지나갈만한 허름한 음식점도 많이 있습니다.



예부터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습니다. 저자의 글이 좋은 이유 중 하나가 과하지 않다는 겁니다. 책을 읽으며 가봐야겠다 싶은 식당리스트는 점점 길어졌지만, 그건 결코 미사여구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책 뒷표지에 적힌 요리연구가이자 칼럼리스트인 박찬일의 평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유행처럼 가벼운 글들이 더 사랑받는 세상에서 박정배의 글은 본질을 흐리는 기교 대신 육중한 팩트 한 줄을 더 쓰려고 든다.”


이 책은 해산물을 소재로 쓰인 <음식강산 1>과 국수를 소재로 한 <음식강산 2>에 이어 육고기를 소재로 한 책입니다. 아마 1권과 2권 보다 더욱 미식가들을 자극하는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목차만 살펴보더라도 제주의 육고기, 육회, 소불고기, 쇠갈비, 설렁탕, 곰탕, 순대, 족발, 부대찌개, 돼지국밥, 감자탕, 치킨과 통닭, 삼계탕, 마포의 고기문화까지 (삼겹살은 저자가 미처 다루지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푸짐하다 못해 넘쳐나는 느낌입니다.


1권과 2권이 2013년에 출간됐으니 새로운 책이 나오기까지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는데요, 그동안 맛있는 고기집을 많이 돌아다녔으니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다른 테이블과 달리 때론 혼자 고기를 구워 먹어야 했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맛을 평가하고 다른 음식점과 오묘한 차이를 찾으며 글을 쓰는 것도 참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듭니다.



김홍도도 고기를 구워먹는 그림을 그린 걸 아시나요?

행려풍속도 후원유연이라는 병풍 첩을 보면, 숯불이 가득한 난로 위에 불판을 놓고 7명의 사람이 고기를 구워먹는 그림이 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기는 입맛을 자극하는 음식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전통을 가진 음식점의 육고기 요리를 담았더라도 이 책에 단순히 음식 소개만 담겼다면 만족도가 떨어졌을 겁니다. <음식강산>은 여느 음식 책과 같이 전국의 식객에게 꼭 가봐야 할 음식점 리스트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지만, 그 음식이 어디서 시작되서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게 됐는지, 그 음식과 얽힌 사회적 사건이나 변화상은 무엇인지까지 알려주는 역할까지 합니다.


그래서 위에서 보여드린 김홍도의 그림 외에도 옛 문헌, 신문기사, 음식과 관련된 연구자료, 그리고 음식에 얽힌 저자의 추억까지 동원해서 책을 급하게 읽어 체하지 않게, 천천히 소화시키며 읽을 수 있게 구성되었습니다. 인용되는 심문기사를 보면 그리 옛날도 아닌데 지금 쓰이는 단어나 표현과 많이 달라 읽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쇠고기 육회 먹는 법을 소개한 1931523일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직설적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잘 와 닿는 표현이 많습니다. 한편으론 2100년 쯤 2015년 신문기사를 본 사람들의 반응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것을 넘우(너무) 과하게 먹으면 쇠똥내가 나기는 하나 고소한 맛으로는 내장 중에 제일입니다.”

천엽은 여러 번 정히 써서야 똥내가 업서집니다. 만일 것허물이 밀려 버서지는 것(밀려 벗어지는 것)은 상한 것으로 횟감으로는 더욱 부적당합니다. 천엽을 잘게 썬 후에 헌겁(헝겊)으로 싸고 단단이 짜서 그대로 먹거나 기름과 소곰과 호초가루에 주물러 먹거나 합니다.”


1971718일 선데이서울에 실린 글은 그 당시 마포나루 분위기를 상상하게 합니다.


짠물에 시달리던 어부 장사꾼들이 비릿한 비위를 기름기가 텁텁한 양지머리탕으로 풀로 나서 한 그긋에 15, 즉 쌀 반말 값을 선뜻 내놓고 가던 시절이었다.”



특정 음식이 특정 지역에서 융성하게 된 사회적 배경도 함께 설명되어 있습니다.

경상도에 불고기골목이 많은 이유는 1960년대 말에 본격화된 경부고속도로나 산업도시 건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포천 이동갈비는 미군부대에서 버린 갈비를 주워 포를 떠서 먹으면서 시작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음식에 담긴 슬픈 역사의 흔적도 많이 소개되는데요, 평양에서 갈비가 유행한 이유는 일제강점기 군인들의 병식(병식)에 있어 육식이 가장 중요한 식재료였기 때문이라는 것, 1일본에 돼지고기를 많이 수출하던 1970년대에 돼지머리와 다리, 내장과 피, 돼지껍데기, 뼈 등 돼지 부산물을 일본이 수입하지 않아 이를 이용한 요리가 융성했다는 점 등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요리의 이면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음식의 언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스탠퍼드대학교에서 7만 명 이상이 수강한 강의 내용을 옮긴 책인데요, 음식에서 인류의 역사와 세계의 문화, 사회, 심리, 언어까지 두루 살피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상대적으로 스케일은 작지만 이 책도 한국판 음식의 언어라 해도 좋을 만큼 음식과 연관된 많은 것을 담고 있습니다. 곰탕과 설렁탕의 어원, 불고기, 주물럭 등 음식의 명칭에 대한 뒷이야기까지 접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무엇보다 이 책이 마음에 드는 점은 최근에 뜨고 있는 음식점이 아닌 오랜 기간 맛을 지켜온 음식점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시대가 흐르고 새로운 세대가 등장하고, 각 세대가 지닌 생각이 달라지다보니 세대 간의 갈등도 생겨나지만, 이 음식점들은 최소한 맛에 있어서는 세대를 통합하고 있는 셈입니다.


저자가 자동차로 이동하기보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처음엔 차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가, 어쩌면 술을 곁들이기 좋아하기 때문에 일부러 차를 안가지고 다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잠시 웃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을 대표하는, 즉 서울에서 각지로 전파된 음식은 없다고 알고 있었는데 설렁탕은 서울 음식이라는 것 또한 새로 알게 된 상식입니다. 지금은 이전했지만, 예전 인사동에서 일할 때 매일 지나치던 이문설농탕 건물을 사진으로나마 보니 반가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모일 회)음식을 먹으려고 그릇 곁으로 모여드는 장면을 묘사한 문자라고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릇 곁으로 모여들어 고기를 드시며 會食(회식)을 즐기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고기를 즐기는 분들께는 특히 소장 가치가 충분한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음식강산 시리즈가 이 책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육고기에 이어 또 어떤 음식강산이 펼쳐질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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