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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 자기 홍보의 시대, 과시적 성공 문화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
데이비드 즈와이그 지음, 박슬라 옮김 / 민음인 / 2015년 2월
평점 :
최근 EBS 인문학 특강에 방청을 간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바른마음」이라는 책을 출간한 미국의 조너선 하이트 교수의 강의였는데요, 영어실력이 짧다보니 동시통역기에 의지해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솔직히 한쪽 귀에는 영어가 들리고, 한쪽 귀에는 한글이 들리다보니 약간 정신없기도 했지만 훌륭한 강연 못지않게 감탄한 부분은 동시통역자들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전문적인 내용도 포함된 강의 내용, 한글과 품사 배치도 다른 언어를 듣고 바로 한글로 표현하고, 더구나 다음 말이 시작되기 전에 통역을 해야 하는 힘든 일. 그래서 수많은 연구 조사에 따르면 동시통역은 인간의 정신이 감당할 수 있는 가장 독특하고도 고된 인지 활동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결코 얼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신들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뒤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유지되고 돌아가는 일이 참 많습니다. <인비저블>이라는 책에도 동시통역자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책을 읽다보니 문득 생각난 경험입니다.
무한경쟁 사회입니다. 누구나 주목받길 원합니다. 그게 성공하는 길이라 생각되기도 하죠. 하다못해 페이스북에선 좋아요를, 인스타그램에선 하트를, 트위터에서는 리트윗을 바랍니다. 주목 받을 땐 좋지만 반대 경우엔 스트레스가 쌓입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게 문제죠.
우리는 왜 인정과 칭찬을 갈망하며,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요?
저자는 우리는 자존감을 충족하는 데 다른 사람들의 인정에 의존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심지어 칭찬 중독증이라는 현상이 존재한다는 견해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대중매체들도 개인 브랜드에 대해 강조하며 그것이 실제보다 더 중요하고 필수적인 것처럼 느껴지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하는 SNS 속에서도 우리는 스스로를 브랜드화 합니다.
이와 반대로 인비저블은 '외부의 찬사나 보상에 별 관심이 없으나 자신의 직업 영역에서 고도의 전문성으로 막중한 책임을 지며 일을 통해 깊은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 즉 뒤에서 조용히 책무를 다하는 분야별 최고의 전문가들을 말합니다. 저자는 시설물 구조 설계사, 조향사, 디자이너, 건물 구조 공학자, 마취 전문의, 동시 통역사, 영화 촬영 감독, 악기와 음향장비 테크니션, 피아노 조율사 등 다양한 직업군의 인비저블을 직접 만나 그들이 일을 대하는 모습에서 인비저블이 지닌 특성을 탐구해 나갑니다. (알랭 드 보통의「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을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외재적’ 동기라 불리는 보상 제도나 타인의 의견 같은 외적 요소가 오히려 작업 수행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한다고 모두가 인비저블은 아닙니다. 저자가 말하는 인비저블은 단순히 평범하고 대접받지 못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매우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 공통적으로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 치밀성
● 책임감

그런데 이런 세 가지 특성 중에 치밀성과 책임감은 인비저블이 아니더라도 전문성을 확보한 사람들에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성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첫 번째 특성인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에 대해 더 집중적으로 살펴 봤습니다.
경제경영서의 베스트셀러 저자인 짐 콜린스는 타인에게 연연하지 않는 인비저블의 특성이 가장 높은 단계의 리더십 개념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겸허한 성격과 직업적으로는 강인한 의지라는 다소 모순된 특성이 결합된 상태라는 거죠. 그렇다면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는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요?
인비저블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주는 사람"의 태도는 리더십은 물론 개인의 성취감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데요, 남들을 돕는 것은 대단히 욕구충족적인 행위이며, 보상이나 인정과 같은 외적 요인에 의한 행위는 성취감이 덜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기브 앤 테이크」라는 책을 쓴 애덤 그랜트는 높은 성과를 성취하는 데 있어 협력과 너그러움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저자가 책을 쓰며 만난 인비저블은 공통적으로 '나'보다 '우리'라는 단어를 더 자주 사용했다는 점도 흥미를 끌었습니다. 이와 함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일원으로서 겸손함과 겸허함을 유지하는 것도 핵심적인 특성입니다.
이에 더해「몰입」의 저자인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말하는 몰입에 이르는 요인 중 ‘고도의 집중력’과 ‘숙달’이 있는데요, 이는 저자가 만난 인비저블이 갖춘 기본 요인이기도 합니다. 인비저블은 타고난 재능도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익히고 통달해야 하는데, 이럴 때 몰입에 도달하는 거죠.
저자는 인비저블의 세가지 특성(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치밀성, 책임감)에 더해 한가기 기질을 강조합니다. 바로 왕성한 호기심입니다. 인비저블은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싶어하고, 그럴 필요가 없어도 더 열심히 일하고 더 깊이 탐구합니다. 그것이 그것이 그들이 지금 이 자리에 와 있는 비결임을 강조합니다.「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에 나오는 ‘질문의 크기가 내 삶의 크기를 결정한다’는 문장이 다시 한번 생각나기도 했는데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호기심과 질문의 힘은 강한 것 같습니다.
법칙만 줄줄이 설명하는 자기계발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책입니다. 각각의 직업을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느낌을 주는 책이기도 했구요. 제게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 부분은 저자가 만나본 인비저블이 자신의 일을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할 때 신명나고 활기가 넘치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제가 직접 마주보고 대화하는 사람이 아님에도 글만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일을 즐기고 있고 성취감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무한경쟁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은 생존을 위해서라도 자신을 알릴 필요도 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인비저블은 먼나라 얘기라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그럼 나는 내가 하는 일의 전문성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하는 반성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모두 전문가가 되어야 하거나 그러지 못할 바에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요즘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뭔가를 약간 잘하게 될 때, 그리고 그 결과가 적당히 만족스러울 때 거기서 중단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이 책은 진정한 행복에 대한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행복한 사람들은 남들과 비교를 덜 하고, 내적 기준에 따라 만족감을 얻는다고 하니까요. 이것이 제가 책에서 얻은 가장 큰 교훈입니다.
"자존심을 해방시켜라. 남들에게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걱정도 내던져라. 당신이 할 일은 당신의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제시하는 인비저블 체크리스트를 공유합니다. 여러분도 인비저블을 꿈꾸시나요?
□ 드러내기보다 조용한 영웅의 역할을 하고 싶다.
□ 업무를 잘 하는 정도를 넘어 대가, 장인 수준의 탁월함을 지향한다.
□ 보상이나 외부의 인정보다는 일 자체의 가치나 과정을 중시한다.
□ 꼼꼼하고 정교한 성격이며, 일에서도 디테일에 집중한다.
□ 기꺼이 막중한 책임을 지며, 그것을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