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멸종 -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ㅣ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년의 비밀> 1
김시준.김현우,박재용 외 지음 / Mid(엠아이디)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소설 속에서 ‘어린왕자’에게 깨달음을 주는 사막여우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입니다. 최근 '사이언스(Science)' 저널에 실린 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지구에 살고 있는 척추동물 중 322종이 1500년부터 점차 사라졌고 남아있는 종들도 평균적으로 그 숫자가 25%가량 줄어들었다. 모든 척추동물의 3분의 1이 멸종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떤 한 종의 생물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멸종이라고 하는데요, 지구상에 등장했던 종의 99% 이상이 이미 멸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멸종 중에서도 특히 규모가 커서 전 생명 역역에서 70% 이상의 종이 사라진 사건을 대멸종이라 하는데, 지구의 역사 속에서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데본기, 페름기,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백악기에 일어난 다섯 번의 멸종 사건을 5대 멸종이라 부릅니다. 이 중 페름기 대멸종 때는 모든 종의 95%가 멸종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대멸종은 살아남은 종을 진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대멸종은 생태계를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파괴시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멸종이 없었다면 인류의 운명도 많이 달라졌을 겁니다. 고생대의 대멸종은 어류라는 척추동물을 바다의 제왕으로 만들어주었고, 백악기의 대멸종은 공룡이 지배하던 세상을 마무리 시키고, 신생대 빙하기들은 유인원에서 인간으로 진화하는 역할을 하게 한 소규모 멸종을 만들어 냈습니다.

대멸종이라고 하면 으레 소행성 충돌에 따른 공룡의 대멸종만을 떠올리곤 했는데, 책을 읽으며 대멸종의 다양한 원인, 생명 진화의 과정, 부가적인 상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EBS 다큐프라임 <생명, 40억 년의 비밀> 중 5부 ‘모든 것의 끝 혹은 시작, 멸종’편을 기초로 했다고 하는데요, 다시보기가 가능한 분은 병행해서 보시면 이해가 더 쉬울거라 생각됩니다. 200페이지 남짓 되는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 상 생소한 용어가 꽤 많이 등장하는데, 용어에 대한 정확한 이해보다 이야기 전체 흐름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고 읽는 게 좋습니다.
대멸종은 천문학적인 원인과 지구 내부 구조와 관련된 원인, 지구 냉각화, 지구 온난화 등 다양한 이유로 발생할 수 있는데, 한때 지구상의 모든 멸종을 외계 천체와의 충돌로 몰아가려던 경향도 있었지만 연구 결과 가장 중요한 원인은 아니라고 하네요.

멸종의 원인 중에는 화산 폭발도 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요, 노르웨이의 화가 뭉크의 그림 <절규>는 1883년에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 폭발을 담은 그림이라고 합니다. 화산 당시 폭발음은 지구 반대편인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들렸다고 하는데, 그림 배경에 보이는 하늘이 붉게 물든 것은 크라카타우 화산의 화산재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합니다.
74,000년 전에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토바 화산 폭발로 화산재가 햇빛을 가려 수십 년 동안 겨울이 지속되었고, 그 결과 빙하기가 왔다고 합니다. 이런 수퍼 화산이 다시 폭발할 경우 화산재에 의한 핵겨울과 화산 가스에 의한 온난화가 이어져 멸종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몇년 전에는 독도 인근에 매장된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메탄 하이드레이트도 상황에 따라 대멸종을 불러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바다 온도가 상승하면 메탄 하이드레이트의 구조가 깨져 메탄이 공기 중으로 올라가 온실 효과를 만들고, 대기 중의 산소 농도를 낮추게 됩니다. 이로 인해 바다의 산소 농도 또한 줄어들게 되고 바다생물이 산소 부족으로 죽게 되면, 죽은 생물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산소가 대규모로 소비되는 끝없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점은 지금까지 있었던 5번의 대멸종에 이어 6번째 대멸종이 벌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겁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6번째 대멸종의 방아쇠를 인류가 당기고 있다는 사실인데요, 오존층 파괴, 열대 우림 파괴, 기름유출이나 쓰레기 투기로 인한 바다 오염, 화석 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 온난화 등 인간이 가속화하는 멸종의 원인은 너무도 다양합니다.
부끄러운 사실이 하나 더 있는데요, 해양수산부가 2월에 공개한 ‘기업별 해양폐기물 배출 현황’에 따르면 2014년에 358개 기업이 동해와 서해에 총 49만1472㎥의 폐기물을 버렸다고 합니다. 이에 더해 우리나라는 2013년까지 OECD 국가 중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는 유일한 나라였다고 하네요.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 지구환경시계가 소개됐습니다. 환경재단(Korea Green Foundation)과 일본 환경단체인 아사히그라스 재단(The Ashahi Glass Foundation)이 환경 전문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매년 공동으로 발표하는데요, 0~3시까지는 '좋음', 3~5시는 '보통', 6~9시는 '나쁨', 9~12시는 '위험'을 나타냅니다. 지구 환경위기시각은 1992년 처음 도입될 당시 7시 49분이었는데, 2014년에는 위험한 상태인 9시 27분에 이르렀습니다. 시작부터 나쁜 상태로 출발해 불과 20여 년만에 위험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대멸종이라고 하면 동식물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까지의 대멸종 사건은 짧게는 수십만 년에서 길게는 천만 년에 이르는 ‘과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등장한 게 약 400만 년 전이니 어쩌면 지금 그 과정을 거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점점 빨라지고 있죠.
몇 십 년 안에 인류가 사라지진 않을 테고, 아주 먼 훗날 6번째 대멸종이 온다 해도 인류는 살아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살아남은 종이 진화를 거듭해 인간이 없는 새로운 지구 생태계가 만들어 질수도 있죠. 그런데 최소한 인간이 대멸종의 원인을 제공하는 불상사는 없었으면 합니다.
위에 첨부한 이미지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우리가 선택할 길은 무엇인가, 인간만을 위한 지구인가? 더불어 함께 사는 지구인가?
지구에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살고 있는 우리가 조금이나마 지구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구요.
※ 덧붙이는 글
이 책을 읽고 찾아보니 <여섯 번째 대멸종/처음북스>이라는 책도 출간되어 있네요. 이 책과 함께 2007년에 출간된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코리아>이라는 책도 함께 읽으면 더욱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