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심청 - 사랑으로 죽다
방민호 지음 / 다산책방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 중 심청전에 대해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어린 시절부터 효의 상징으로 심청을 접했을 뿐이지 심청전을 제대로 알고 있다고 하기엔 어딘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이번 <연인 심청>을 읽으면서도 제가 알고 있던 심청전과 많이 다르다는 걸 느꼈습니다.

 

심청전에 경판본과 완판본이 따로 있다는 걸 알고 있나요?

경판본에서 심청은 오직 심학규, 즉 심봉사에게 효를 다하다가 인당수로 뛰어들고 되살아난 이후에도 오직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노력합니다. 경판본 저자는 작품 전체에 지효(至孝)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유교적 엄숙성과 숙명론적 운명관에 집중합니다.

이에 반해 완판본에는 무릉촌 장승상 부인, 뺑덕어미, 귀덕어미, 무릉촌 태수, 방아 찧는 아낙네들, 황봉사, 안씨 맹인 등의 인물들이 더 등장해 더 많은 사건을 담아 냅니다.

 

경판본과 완판본의 가장 큰 차이는 심봉사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경판본의 심봉사는 유교적 이념에 충실한 인물인데 반해, 완판본의 심봉사는 훨씬 세속적이고 현실주의적인 인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완판본에서 심봉사는 심청의 인당수 투신 이전에 지녔던 위엄은 사라지고, 태수 앞에서 허풍과 억지를 부리는 못난이며, 방아 찧는 여인네와 음담(淫談)을 즐기는 비속한 인물로 등장합니다.

 

이와 달리 심청은 경판본이나 완판본이나 성격이 크게 다르지 않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워낙 어렸을 때 읽어서 그렇겠지만 제가 지금껏 알고 있던 심청전은 심청, 심봉사, 뺑덕어멈만으로도 구성되는 이야기였는데, <연인 심청>에는 완판본에 등장하는 인물 외에도 윤상이라는 인물을 더해 아버지를 향한 심청의 사랑과 윤상을 향한 심청의 사랑을 대비시켜 현대소설의 느낌까지 가미합니다.

 

아득한 옛날 하늘에 옥황상제가 계셨고 바다에는 용왕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선녀와 선관도 있었습니다. 심청은 옥황상제의 궁궐 자미원에서 옥황상제의 탕약을 다리던 선녀 유리였습니다. 선관 유형을 사랑하게 된 유리는 옥황상제의 탕약을 몰래 조금 빼내 유형에게 갖다 줍니다. 하지만 이를 시샘하던 다른 선녀가 이 사실을 판관에게 고하고 둘은 인간세상에서 남녀로 사랑할 수 없는, 오직 아비와 딸로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판결을 받습니다. 유형은 평생 얻어먹으며 살아가야 하고, 유리는 평생을 받들어 바치며 살아가야 합니다. 추위와 굶주림이 있는 곳으로, 그곳에서 선한 일을 지극히 행해야만 중한 죄를 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유리와 유형으로부터 시작된 천상의 사랑과 인간세상에서 시작된 심청과 윤상의 지상의 사랑이 묘한 긴장감으로 소설을 이끕니다. 작가는 누군가의 연인이자 딸이며, 사랑과 삶과 운명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연인 심청을 구상하기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도 <연인 심청>입니다.

 

위에 경판본과 완판본에서 심봉사의 성격이 많이 다르게 나온다고 말씀드렸는데, <연인 심청>에서도 제 눈길을 끈 것은 심청보다는 오히려 심봉사입니다. 저자인 방민호교수와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보면 사실 주인공은 심청이지만 부각시키려 한 인물은 심봉사다... 현대인의 욕망의 화신으로 심봉사를 형상화했다는 부분이 나옵니다. 제도 책을 읽는 내내 심봉사에 대한 분노와 이른바 찌질함을 가득 느꼈습니다.

 

심봉사는 유형으로 지낸 전생에도 운영이라는 선녀를 지상으로 유배 보낸 전력이 있습니다. 지상에서도 하루 종일 서책을 만지작거리는 일을 할 뿐인데 식탐은 강해 심청을 고생시킵니다. 심청의 효에 감동해 뱃사람들이 공양미 삼백 석에 백 석을 보태주지만 심청이 인당수로 떠난 이후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노름에 빠집니다. 그러다 애랑이라는 기생에 빠져 절에도 약조한 쌀 삼백 석 대신 백오십 석만 바치기로 합니다. 그러다 결국 남은 재산마저 뺑덕어멈에게 다 빼앗기고 말죠.

 

어느 서책에서인가 심봉사는 이 혼돈이라는 괴물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본 적도 있다. 그에 따르면 혼돈이란 놈은 머리는 있지만 눈과 코와 입과 귀가 없었다. 또 어디에선가는 눈은 있지만 보지 못하고, 귀도 있지만 듣지 못한다고도 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심봉사는 마치 자기 자신이 혼돈 같은 괴물이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생긴다.”

 

하지만 이 부분이 비단 심봉사만의 얘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대에도 혼돈 같은 괴물이 곳곳에 있는 게 아닌가...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이렇게 몰입해서 읽을 줄 몰랐습니다. 결론을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윤상이라는 새로운 인물의 등장,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 구어체 문장, 거기에 순우리말 단어가 담긴 아름다운 문장들로 금세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그리고 특히 제 마음에 콕 박히는 부분이 있었는데요, 약간 길수도 있지만 전문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리면 세상은 어떤 이들이 이끌어가나? 사랑하는 사람의 순수함을 이렇게 저렇게 이용해서 제 목적을 달성해가는 무정한 사람들인가? 속고 속고 또 속을지라도 사랑하는 그 돛대 같은 마을 하나만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인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래서 겉에 보이는 대로, 사랑을 희롱하고 이용하는 이들이 세상을 만들어가는 줄 안다. 이 험한 세상을 그나마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실은 사랑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초능력자들인 것을, 그네들의 진정한 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다.“

 

덧붙이는 글 : 다산북스에서 연인 심청독서감상문대회를 진행중입니다. 저는 엄두도 못 내지만, 필력이 좋은 분들은 도전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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