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나쓰카와 소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한동안 손에서 책을 놓고 지냈었다. 손에서 한 번 책이 떨어지니 다시 집어 드는 데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내가 책을 다시 집어 들게 된 건 1년 정도 지난 것 같다. 지난 1년 동안 내가 다시 많은 책들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책을 읽다 보니 그동안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도 많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책으로 하여금 다시 '읽는다'라는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요 몇 달 간 나의 독서량은 급격하게 많아졌고, 이렇게 책을 읽다 보니 이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져다주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던 중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를 읽게 되었다.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낸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린타로는 할아버지의 오래된 서점을 정리하게 된다. 할아버지의 나쓰키 서점은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지만 셰익스피어, 헤밍웨이, 니체 등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오래된 서적들을 가지고 있던 곳이었다. 어느 날, 책을 정리하고 있던 린타로에게 말하는 고양이 '얼룩'이 찾아온다. 얼룩은 린타로를 '2대'라고 부르며, 자신을 도와 책들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린타로는 얼룩의 등장에 놀라면서, 그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하며 총 4개의 미궁을 탐험하게 된다. 4개의 미궁을 탐험하면서 린타로는 4가지 방식으로 각각 책을 대하는 자세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책을 읽는다고 꼭 기분이 좋아지거나 가슴이 두근거리지는 않아. 때로는 한 줄 한 줄을 음미하면서 똑같은 문장을 몇 번이나 읽거나 머리를 껴안으면서 천천히 나아가기도 하지.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시야가 탁 펼쳐지는 거란다. 기나긴 등산길을 다 올라가면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것처럼 말이야. (p.124)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에는 각각 책을 대하는 다른 방식을 가진 4명의 사람들을 등장한다. 가장 먼저 책을 읽는 '양'에 집중한 사람이 등장한다. 5만 권 이상의 책을 읽은 그는 더 많은 책들을 읽기 위해 하루를 쪼개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다 읽은 책들을 쇼케이스에 넣어 보관하는데, 린타로는 그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턱대고 책을 많이 읽는다고 눈에 보이는 세계가 넓어지는 건 아니란다. 아무리 지식을 많이 채워도 네가 네 머리로 생각하고 네 발로 걷지 않으면 모든 건 공허한 가짜에 불과해. (p.65)

  어렸을 때, 나는 책을 많이 읽는 것에만 집중했다. '독서왕'이 되면 좋은 상품을 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최대한 내가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던 책들만 골랐던 것 같다. 그래도 책에서 올바른 문장들을 알게 되고, 알지 못했던 지식도 얻게 되었지만 결코 그 책이 내 책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책 제목과 작가만 정확히 알고, 내용은 가물가물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내가 다시 책을 집어 들면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책이 가진 내용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의미를 다시 곱씹었을 때, 나는 책의 내용을 거의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 그 과정이 내 발로 걷는 과정이었으리라.

  다음으로 등장했던 사람은 속독 과정을 넘어서 책을 빨리 읽을 수 있기 위한 방법을 연구하는 사람이었다. 책을 빨리, 많이 읽을 수 있는 방법으로 그는 줄거리를 최대한 요약하는 과정을 선택했고 매일같이 책을 오려 이야기를 단축시키는 데 집중했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거의 안 읽는다고 하더군.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네. 너무 바빠서 한가하게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뿐이지. 바쁜 일상생활에서 책을 쏟을 시간은 한정돼 있어. 그런데 읽고 싶은 책은 한두 권이 아니야. 다들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어 하네. 『파우스트』만이 아니라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도 읽고 싶어 하고 『분노의 포도』도 읽고 싶어 하지. 그들의 바람을 이뤄주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 (p.117)

  가끔 너무 많은 책에 파묻혀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누군가 요약해 준 줄거리만 읽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진다. 시간 단축을 위해서, 줄거리만 알아도 될 것 같아서. 그럴 때마다 나는 속독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다 읽었다는 뿌듯함은 남지만, 정확히 이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 파악을 못할 때도 종종 있다. 결국, 다시 책을 천천히 읽게 되고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좋은 문장이나 의미 등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 읽었을 때 드는 그 상쾌함이란. 시간이 촉박하다고 해서 오히려 좋은 책을 놓칠 뻔한 실수를 다시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서점에 들어서면, 나는 내가 무슨 책을 사야 할지 미궁 속으로 빠지는 느낌이 든다. 항상 그 고민 속에 빠져 있던 나는 결국, 베스트셀러 코너로 향하고 그곳에서 가장 인기 있는 책을 몇 권 골라온다. 그리고 그 책들을 읽다 보면, 실망감을 감출 수 없는 경우가 자주 생기기도 한다. 세 번째로 등장하는 인물은 베스트셀러만을 고집하는 사람이다.

  그래요. 우리 출판사는 뭔가를 전하기 위해 책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세상이 원하는 책'을 만들고 있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나 후세에 전해야 할 철학, 잔혹한 진실이나 난해한 진리 같은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세상은 그런 걸 원하지 않아요. 출판사에 필요한 건 '세상에 무엇을 전하느냐'가 아닙니다. '세상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이죠. (p.185)

  때로는 그런 책들을 만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체 이 책이 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지 모르겠는 책. 그리고 이 책으로 하여금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책. (가끔은 얻는 게 전혀 없는 책들도 많이 만나게 되는 것 같다.)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만 가도 다양한 책들이 놓여 있는데, 책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코 그 책들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른 건 표지와 제목, 저자뿐인. '세상에 무엇을 전할지'라는 고민은 출판사뿐만 아니라 많은 독자들도 고민해봐야 될 문제다. 결국엔 독자들의 선호도에 따라서 책이 만들어지고 세상에 내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한 답이 등장한다. 사람들에게 읽힌 책은 스스로 사람이 되어 자신이 가지는 힘에 대해 생각한다. 책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고유의 성격과 외모를 가지고 있고 자신이 가진 가치관에 따라 행동한다. 책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는 과정을 집중해서 보다 보면, 우리는 그들의 감정 상태에 공감하고 그들에게서 우리들의 모습을 찾아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을 배우게 된다.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거기에 있다.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삶. 우리는 책을 통해서 그것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 약한 자를 괴롭히면 안 된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런 건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하지만 요즘은 점점 당연하지 않게 되고 있어요. 당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왜 그래야 하지?'라고 묻는 사람들도 있죠. 왜 남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요. 그런 사람에게 설명하기는 쉽지 않아요. 이건 논리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책을 읽으면 알 수 있어요. 논리로 말하기보다 훨씬 소중한 것,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죠. (p.262)
 
  내가 책을 읽는 이유도 그것이 아닐까. 책 속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현실에서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나를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책을 집어 든다. 오늘은 또 어떤 매력적인 인물을 만나고, 그들로 하여금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하면서. 그리고 나는 다른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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