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4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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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카다는 아직 사십 대잖나. 월급은 많이 받으면서 마음 편하게 혼자 살지. 이걸 우아하다고 하지 그럼 뭐라고 하나." _p.77

  오카다 다다시는 아내와 이혼을 하고 오래된 단독 주택으로 이사하게 된다. 오랜 세월에 휘고 뒤틀렸을 손잡이와 옛날식 판유리가 끼워진 창, 특유의 간장과 된장, 장아찌가 뒤섞인, 습기 있는 냄새가 풍기며 할머니 고양이 후미가 반겨주는 오래된 집. "웰컴 투 킹덤 오브 소로." 소노다 씨는 집에 발을 들인 다다시에게 그런 인사를 건넸다.
  퇴근 이후 단독 주택을 자신의 취향대로 꾸며가고, 고양이 후미의 먹이를 챙겨주고, 집에서 원하는 요리를 해 먹는 일상을 살게 된 다다시는 우아한 삶을 살게 되었다. 어느 저녁, 오랜만에 방문한 국숫집에서 자신의 옛 연인 가나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사는 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곳에 가나가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가나와 좋은 관계를 다시 형성할 즈음, 가나의 아버지가 부정맥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게 된다. 다다시는 아버지를 간호해야 되는 가나의 곁에서 도움을 주게 된다.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은 청춘의 격정이 지나간 자리에 선 중년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장성한 아들은 MBA를 공부하겠다며 미국으로 건너갔고, 아내와는 이혼한 뒤 오래된 단독 주택에서 살아가는 마흔여덟의 다다시의 청춘이 지나간 지는 오래다.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맞은 오래된 단독 주택, 그 중심에 놓여 있는 벽난로는 마치 다다시의 삶처럼 느껴진다.
  
  이 집에 군림하는 왕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하물며 라디오도 아니고, 벽난로일 터였다. 불을 피우면 저절로 시선이 모이는 위치에 무게 있게 자리하고 있다. 오랜 세월 불을 잊은 벽난로는 지금은 차갑게 식어 커다란 입을 벌린 채 죽은 것 같은 상태다. 그래도 불이 뻘겋게 타오르면 되살아날 것이다. 그럴 터……였다. _p.179 

  다다시에게도 뜨겁게 불을 태우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 열기에 의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많이 흐른 벽난로는 적절하게 마른 장작을 사용했음에도 연기를 내뿜는다. 예전처럼 장작을 빠르게 태울 수 없다. 빨래가 더러워졌느니 냄새나느니 이웃에서 당장 항의가 들어올 수 있어 낮에는 때지도 못한다. 나로 하여금 타인에게 피해가 될 수 있어 자꾸만 수그러진다. 그래서 그 벽난로는 청춘을 다한 뒤, 삶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타인에게 피해가 될까 걱정이 되는 삶. 누군가 불을 붙여줘도 확실하게 불이 뻘겋게 타오를지 확신할 수 없는 삶.
  그래서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가 가나에게 벽난로에 불을 붙여주는 기술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여유를 즐기며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한 다다시는 자신의 인생에 가나의 재등장으로 인해 유한한 삶의 끝에 타인이 있는 삶을 그려낸다. 가나가 불붙인 벽난로는 연기를 내뿜지 않고 활활 잘 타올라 집 안을 따스히 만들어준다. 그로 인해 다다시는 우아한 삶을 살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오래된 단독주택의 주인인 소노다 씨의 삶은 또 다르게 다가온다. 슬픔의 왕국의 여왕 폐하는 우리가 생각하는 '노인'의 모습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칠십 대 후반의 소노다 씨는 유창한 영어는 물론, 아들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매우 빠르게 환경에 적응하고 메일까지 쓸 줄 안다. 그녀의 벽난로는 여전히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보인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이 굉장히 의연해 보인다.

  수명이 다했을지도 몰라요. 오카다 씨가 걱정해주는 건 고맙지만, 수컷 꽁무니를 쫓거나 쫓기거나 할 나이는 아닐 테니까 제 나름대로 죽을 때가 된 걸 깨달았다 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부디 마음 쓰지 마시길. 혹시 쓸쓸하다면 있는 힘껏 쓸쓸함을 느껴주세요. 그럼 어디서 훌쩍 나타날지도 몰라요. 진짜로요. (생략) 모처럼 벽난로를 고쳐주셨으니까 독거노인(이라고 한다죠? 기왕이면 동거 노인이 나으려나)으로서 불을 어떻게 다룰지 잘 생각해보렵니다. _p.233

  청춘의 격정이 지나가고 유한한 삶의 끝이 보이기 시작할 때. 우리의 삶이 우아한지 어떤지는 아무도 모른다.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모습이 우아해 보일 수도 있고, 삶의 끝을 따뜻하게 빛내주는 타인이 있는 모습이 우아해 보일 수도 있다. 글쎄, 아직은 청춘의 격정을 겪고 있는 내가 어떻게 그 감정을 모두 다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의 청춘의 격정이 다 지나간 뒤에,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을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때야 나는 이 모든 감정들을 다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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