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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오늘의 나로 충분합니다
백두리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2월
평점 :
어느새 나는 24살이 되었다. 2018년의 3월도 절반 이상이 지났다. 시간이 정말 빠르게 지나간다는 것을 내 나이의 숫자가 높아질 때마다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숫자가 높아질수록 나의 조급함도 배가 된다. 숫자가 1씩 증가할 때마다 그만큼 나는 달라져야 하는데, 여전히 나는 똑같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는 게으르고, 내 선택에 대한 후회도 많이 하고, 남들보다 잘하는 일도 그리 많지 않다. 슬프게도 달라진 것이라곤,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선택지는 점점 반비례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이보다도 슬픈 일이 더 있을까!)
20살이 되었을 때, 나는 내가 어른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면서 매우 좋아했다. 그러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밤늦게 귀가하거나 청소년 시절보다 긴 방학을 맞이하였을 때는 제외하고는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게 정녕 어른의 세계란 말인가.' 라면서 30살에는 완벽한 어른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오늘의 나로 충분합니다》는 백두리 작가가 느낀 어른의 세계를 보여준다. 누구도 혼내지 않는, 알아서 해야 하는 나이가 되어버린 어른의 세계는 묵직하게 느껴진다. 어른의 세계가 묵직하게 느껴지는 데에는 바로 '책임'이라는 무게가 한 몫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는 '책임'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알지 못했지만, 머리가 커질수록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건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어른의 세계는 재미도 없다. 익숙한 건 한없이 편하고 낯선 것은 끝없이 귀찮기 때문에 지루하기만 하다. 그래서 완벽한 어른은 없는 것같다.
언제부터 호기심을 잃었을까?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게 오히려 해가 될 때가 있어서? 삶을 사는 데 별 도움이 안 돼서? 어차피 세상만사를 다 알 수는 없으니까? 돈 버는 일이랑 상관없어서? 무엇인가를 알아내는게 귀찮아서?
다 귀찮아!
피곤하고 귀찮아서인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유력하게 들었다. 궁금함을 갖지 않으면 굳이 고민할 필요도 생각할 이유도 없다. 매일 똑같이 반복해오던 일상을 지속하면 된다.
호기심도 궁금함도 흥미도 없이 귀찮음만 가득해진 어른들의 세상은 살기에 편할지 몰라도, 확실히 재미는 없다.
_p.47 '안 궁금해' 中
어른이 반드시 완벽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니까 오늘의 나로 충분합니다》에서는 여전히 서툰 어른들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프로듀스 101>을 보고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덕질을 하거나 어려운 연애를 재치있게 표현하는 백두리 작가의 생각들은 서툰 어른들에게 공감되고 '서툴지만 괜찮아!'라는 위로의 손길을 건네기도 한다. 책 속 그의 일러스트를 보면서 피식 웃을 수 있던 것이 바로 그 이유가 아닐까 싶다.
다른 것들을 시도해볼 때, 원래의 삶의 방향에서 벗어나 볼 때, 다른 계획에 손을 뻗을 때. 그 시도가 정답이 아닐 지라도 그것에서 분명히 자극을 받고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된다. 몇몇은 여전히 나를 철없게 10대 문화에 빠져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자극은 나를 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 건 확실하다. _p.148 '덕질과 성찰' 中
주인공의 사랑이 이루어지며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리는 작품에서 그 사랑 때문에 아프고 힘들어하는 조연은 언제나 무대 뒤에 숨죽이고 있다. 조연에게 그 작품은 새드엔딩일 뿐이다. 언젠가부터 조연의 마음에 더 신경이 쓰인다. 빛은, 내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보니까. 무대 뒤, 그늘 아래, 달의 뒷면에 마음이 더 간다. _p.213 '뒷면'
솔직하게 말해서 지구의 종말이 일어나거나 내가 갑자기 로또에 당첨돼 부자가 되거나 내 인생을 다이내믹하게 바꿀 수 있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어른이 되어가는 나의 길은 지금과 여전할 것 같다. 여전히 서툰 것 투성이겠지만, 그것에 슬퍼하지는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툰 것을 서툰대로 받아 들이는 자세도 나쁘지 않은 것 같으니까. (물론, 너무 심하게 자기보호적인 생각으로 받아 들이면 나는 발전이란 것이 없는 사람이 되겠지.) 그래서 나는 굳이 완벽한 어른의 세계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른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완벽한 법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니까 오늘의 나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