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9
기예르모 델 토로 외 지음, 조영학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뱀파이어에 대해 상상한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햇빛이 드리워지지 않는 검은 암막 커텐을 친 방에 놓인 관 속에서 긴 검은 망토를 두르고 창백한 얼굴과 뾰족한 송곳니를 내세우고 있는 모습이 가장 먼저 연상될 것이다. 조금 더 시대를 거슬러 올라오자면, 소설 ≪트와일라잇≫의 뱀파이어 에드워드처럼 백옥같다 못해 창백한 피부와 미남형 얼굴을 가진 섹시한 이미지를 연상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동안 영화나 소설 속에서 본 뱀파이어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아 있는 무언가로 그려지고 있던 셈이다.

  ≪스트레인≫은 뉴욕 JFK 공항에 여객기 한 대가 불시착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관제탑과 착륙에 대해 통신하던 중, 돌연 여객기와의 통신이 끊기게 된다. 모든 창문의 햇빛 가리개가 내려져 있었고,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듯이 비행기 주변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질병관리센터에서 일하는 에프는 급히 공항으로 달려 갔고 비행기 안을 수색하기 시작한다. 비행기 안 승객들은 4명의 생존자만을 제외하고 모두가 마치 잠든 것처럼 죽어 있었다. 에프는 시체들에게서 사후 경직이 일어나지 않은 것을 알아차리고, 그들의 죽음이 석연치 않음을 느낀다. 에프와 그의 팀들은 사망자들과 4명의 생존자들로부터 알 수 없는 전염병이 퍼졌을 것이라고 짐작하며 사건의 진실에 대해 샅샅이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 빌어먹을 개기일식인지 엄폐인지가 빨리 끝나, 다시는 이런 기분을 겪지 않아도 된다고 확신하고 싶었다. 그녀는 색안경을 통해, 암흑의 승리를 거두고 의기양양해하는 살인마 달을 올려다 보았다. 문득 다시는 해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었다. _p.128

 

 

 

 

  영화감독이자 ≪스트레인≫의 저자인 기예르모 델 토로는 뱀파이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동안의 뱀파이어들은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아 있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면, 기예르모 델 토로가 만든 뱀파이어들은 마치 어떤 전염병에 의해서 감염된 것마냥 행동한다. 일정 순간이 지나 뱀파이어로서의 각성 상태가 되면, 그들은 의식도 없이 본능에만 충실하여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어 보이는 고전의 뱀파이어들과는 달리, 아무 생각도 없이 심장 소리에 반응하는 모습은 마치 '좀비'를 떠올리게 한다. ≪스트레인 1≫에서는 뱀파이어가 목덜미를 물어 흡혈하는 장면이 아닌, 목과 같은 곳에서 거머리가 등장하기 때문에, 우리가 알던 뱀파이어와는 전혀 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2권에서 마스터 뱀파이어가 등장한다면, 판이 뒤집힐 수도 있을 것 같다.
  한 편, 기예르모 델 토로는 ≪스트레인≫을 통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아픔인 9.11테러를 형상화한다. 뱀파이어의 습격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도시 전역이 마비 되는 과정은 마치 9.11테러 당시의 비극을 그려내는 것처럼 느껴진다. 
  
  내일이면 저들은 각자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게다가 신나게 떠벌릴 얘깃거리까지 생기지 않았는가.
  열두 살짜리 우리 조카애가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어……
  열두 살짜리 내 사촌이 그 비행기에 타고 있었거든……
  우리 옆집 열두 살짜리 여자애가 그 비행기에 탔더라고……
 _p.246

 

 

 

  ≪스트레인≫을 읽는 내내, 뛰어난 묘사력이 굉장히 눈에 띄었다. 기예르모 델 토로가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어서일까, ≪스트레인≫을 읽으면서 마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미국에서 2014년에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좀비물'을 괜찮게 보는지라, 아마 소설을 다 읽은 뒤 기회가 된다면 드라마까지 보지 않을까 싶다.) 장을 넘길 때마다 스릴감 있고 속도감 있는 문체들로 하여금 금방 읽을 수 있었던 소설이었다. 특이하게도 8 챕터로 크게 구성되어 있고, 각 챕터에서도 공간별로 내용을 전개하는 것이 눈에 띄었는데 마치 시나리오를 읽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2권이 되면 진짜 뱀파이어가 등장할 것 같은데, 우리가 평소에 알던 뱀파이어와는 얼마나 이미지가 매치될지 궁금하다. 기회가 된다면, 델 토로의 뱀파이어 3부작을 다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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