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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색기계 - 신이 검을 하사한 자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1월
평점 :
로봇의 등장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 배경은 언제일까? 대부분 지금보다 가깝거나 먼 미래를 그릴 때라고 대답할 것이다. 많은 문학 작품들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와 어울리는 대표적인 판타지적 요소는 타임 머신이다. 그러니까, 로봇처럼 상상의 산물처럼 느껴지는 소재는 왠지 모르게 과거와는 동 떨어진 느낌을 자아낸다. 고려나 조선시대처럼 활을 타며 말을 쏘는 시대에 로봇이 등장한다고 상상해보면 배경과 소재 사이에서 알 수 없는 괴리감이 느껴진다.
그러나 ≪금색기계≫에서는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와 시기상 비슷한 일본의 에도 시대(1603~1867)를 배경으로 하며, 금색 철갑을 두른 로봇이 등장한다. 제67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수상작인 ≪금색기계≫를 읽다보면 독특한 설정때문인지 추리와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SF 판타지 소설쪽에 어울림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 소설의 장르를 따지기 전부터 이 소설은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금색 기계≫는 1547~1747년, 200년 동안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유곽을 관리하던 구마고로는 유녀가 되겠다며 찾아온 하루카를 만나게 된다. 상대방의 살의를 느낄 수 있는 능력인 '심안'을 가지고 있던 구마고로는 하루카의 본심을 알아차리고, 하루카는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구마고로에게 털어놓는다. 유민의 딸로 태어난 하루카는 부모를 잃고 신도라는 의사의 손에서 길러지게 된다. 자신의 두 손으로 사슴을 죽이면서 하루카는 자신이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을 가졌음을 알게 된다.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질병으로 고통스러워하는 노인들에게 영원한 안락을 선사한다.
한편, 떠돌던 로닌에 의해서 자신이 신도의 친딸이 아님을 알게 된 하루카는 집을 떠나게 된다. 자신들에게도 안락을 달라던 노인들을 피해 산 속으로 도망친 하루카는 그 곳에서 '신'처럼 보이는 금색님을 만나게 된다.
≪금색 기계≫는 하루카가 구마고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내는 바깥 이야기와 '금색님'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안 이야기로 액자식 구성을 띈다. '금색님'이라는 로봇을 전지전능한 신으로 바라보는 등장인물들의 관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첨예하게 이어져 있다. 금색님과 얽혀 있는 인물들의 행적들을 풀다보면 서로가 서로의 인과관계가 됨을 알 수 있다.
에도시대에 금색 철갑을 두른 로봇이 등장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이유는 쓰네카와 고타로 작가가 '금색님'을 매우 따뜻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로봇이 가진 이미지들을 대충 조합해보면, 이성적이고 차가운 이미지지만, ≪금색 기계≫의 로봇은 달빛을 받으며 살아가며 자신의 사람에겐 한없이 따뜻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따뜻한 로봇의 이미지이기 때문에,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될 수 있는 에도 시대 배경과도 잘 어울리는 것이다.
"저는, 살아 있습니까?"
빛이 말했다.
"살아 있어요."
"다행이군요."
_p.370
≪금색 기계≫를 통해 처음으로 시대 배경이 현대가 아닌 소설을 읽었다. 낯선 시대 배경이기에 이해하는 데 어려울 것 같았지만 옮김이의 설명이 잘 되어 있기에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읽는 내내 그 시대에서 표현할 수 있는 '무사' 문화가 녹아져 있어서 좋았다. 영화에서 흔히 보던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책의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소설임에도 굉장히 빠르게 읽히는 소설이기에, 페이지터너 수식어를 붙여도 아깝지 않을 소설이었다. ≪금색 기계≫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땐 제목에서 느껴지는 딱딱함도, 소재와 시대 배경의 괴리에서 오는 의아함도 남지 않는다. 그저 달빛을 받은 따뜻한 마음만이 남는다.
적도 한편도, 언젠가는 한데 어울려, 의좋게 지내며,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