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의 눈물 대한민국 스토리DNA 16
전상국 지음 / 새움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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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은 그 나라의 문화, 정서를 담아낸다. 그래서 나는 한국 문학보다는 외국 문학을 더 선호한다. 한국 문학 속에는 한국의 현실이 지독히도 슬프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에 외국 문학에 비해 더 쉽게 공감할 수 있지만 한 편으로는 씁쓸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외면할래야 외면할 수 없는 그 씁쓸함이 참 싫다.
  대한민국 스토리 DNA의 16번째 책인 전상국 작가의 <우상의 눈물>은 올해로 등단 54년을 맞은 그가 직접 고른 9편의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전상국 작가는 인간 내면의 숨겨진 선과 악의 문제를 직시하여 작품을 쓰는데, 그렇기에 선정된 9편의 작품들은 하나하나 뚜렷한 개성을 선보여준다. 특히 1960년대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전상국 작가의 작품들에는 대한민국의 아픔과 상처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전상국 작가의 대표작인 <우상의 눈물>은 1980년대 소설로, 절대 '악'에 대해서 그리고 있다. 
유급생인 기표는 자신의 무리 재수파와 함께 반 아이들을 지배하며 지내왔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임시 반장이었던 유대의 추천으로 반장이 된 형우는 기표를 도와주겠다는 명목으로 그의 커닝을 돕는다. 하지만 기표가 이를 고발하고, 형우는 기표와 재수파들에게 맞아 입원을 하게 된다. 그 사이 형우는 학우를 지키는 영웅으로 추대 받고 있었다. 
  퇴원한 형우는 기표를 위한 모금 활동을 시작하고 유대는 커닝을 주도했던 형우의 행동이 담임 선생님에 의한 지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의 가정 문제가 반 아이들에게 알려진 기표는 여동생에게 편지를 남긴 뒤 자취를 감춘다.

  나는 속으로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무서웠다. 어른들의 음흉스러움. 알면서도 모른 체 시치미를 뗀 그 저의는 무엇인가. _p.73

  육십육 명이 탄 배는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단 한 사람의 낙오자나 이탈자가 없어야 한다. 우리들의 항해를 방해하는 자, 배의 순탄한 진로를 헛갈리게 하는 놈은 용서받지 못한다. 유대의 눈으로 비춰진 기표는 반 아이들을 억압하는 '악'으로 보였다. 그리고 기표를 누를 수 있는 형우는 '선'으로 보였다. 그러나 소설이 후반부로 흐를수록 기표의 '악'의 경계는 모호해진다. 가해자였던 그가 피해자가 되면서 유대는 그제서야 절대 '악'이 누군지 알게 된다.
  전상국 소설은 '교실'이라는 한정적 공간을 통해 1980년대 우리가 처해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데올로기가 미화되면서 '진짜' 권력을 가진 인물은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에 대해 <우상의 눈물>을 통해 보여주고 있었다.

 

 

 

 

무섭다. 나는 무서워서 살 수가 없다.

 

  전상국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발자취는 참으로 무섭다. 폭력으로 무감각해진 발자취들. <아베의 가족>, <맥>, <동행>에서는 6.25 전쟁을 직접 겪은 인물들을 내세워 전쟁의 비극을 낱낱이 보여주며 그로 인한 상처와 아픔에 대해 이야기한다.

  난 그 광 속을 잊을 수가 없었던 거요. 그 광 속에서 이틀 동안이나 이빨 사이에 박힌 장갑 실오라길 빼내려구 내가 얼마나 애를 썼는지 아슈? 침이 묻은 손은 자꾸 얼어들구, 실이 끼인 잇몸의 살이 떨어져 피까지 나왔지만 난 그 장갑 실오라긴 아무래도 뺄 수가 없었던 거요. 예, 늘 그 생각을 한 거죠. 난 그 육실하게 춥구 캄캄한 광 속에선 실오라길 죽어두 빼낼 수가 없었다, 이겁네다. _<동행>中

  그리고 <침묵의 눈>, <투석>을 통해 1970년~80년대의 어두운 현실을 그려낸다. 전상국 작가는 보았음에도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그 시대의 아픔들과 그 아픔을 딛고 꿈틀거리는 무언가를 드러내려고 노력한다.

  도대체 그럴 자격이 없는, 가장 독선적인 사람이 민주화란 갑옷을 입고 큰 목소릴 냈다. 목소리 큰 사람에 질질 끌려다니는 이들도 많았다. 학자답지 않은 야심을 품고 정치꾼 같은 교활성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어른이 없었다. 잘못을 따져 꾸짖고 때로는 너그러이 가슴에 안은 그런 큰바위얼굴이 없었다. _<투석> 中

  무속신앙을 믿는 인물을 통해 잘못된 신앙이나 신념 체계가 빚어낼 수 있는 비극을 그려내고 있는 <우리들의 날개>, 관습적인 연애 및 결혼과 그것으로 인한 구속감, 당당히 말할 수 없는 여성들을 그려내고 있는 <플라나리아>와 <전야>를 통해 드러난 대한민국의 발자취는 읽는 내내 씁쓸함을 안겨준다.

 

 

 

  씁쓸하기 때문에 계속 곱씹는다. 왜, 우리는 이런 씁쓸한 현실을 계속 살 수 밖에 없는가?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조금씩 변화를 취한다. 한국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에 있다고 본다. 그동안 우리가 지나왔던 씁쓸한 발자취를 다시 되돌아보고, 더는 반복하지 않는 것. 싫음에도 계속 읽어야 한다. 읽어야 생각이 변하고 바로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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