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나폴리 4부작 4
엘레나 페란테 지음, 김지우 옮김 / 한길사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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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우리 우정이 끝났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페란테 열병을 일으킨 나폴리 4부작의 막이 내렸다. <나의 눈부신 친구>,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 그리고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2000페이지가 넘는 긴 서사는 끝이 났다. 엘레나 페란테는 <나의 눈부신 친구>를 시작으로 레누와 릴라라는 인물을 독자들에게 소개해주었고, 독자들은 그들의 유년기부터 노년기까지 일생을 옆에서 지켜보았다. 어느 날, 릴라가 사라지고 젠나로의 전화를 받은 레누는 릴라가 어떤 친구였으며, 그녀가 왜 떠났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기 위해 그녀에 대한 기억을 꺼낸다.

  릴라는 절대로 나폴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여행의 참 맛에 눈뜬 이후부터 나는 릴라의 이러한 폐쇄성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p.103)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의 마지막은 레누가 평생을 사랑해 온 니노와 연인이 되는 것이었다. 연인이 된 레누는 니노와의 사랑을 위해 피에트로와 이혼하기로 결심한다. 니노와의 연애로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레누는 릴라를 다시 만나게 되고, 니노가 릴라에게 다시 마음을 빼앗길까봐 불안감을 느낀다. 레누는 릴라와의 관계를 끊어내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의 곁에 나타나는 릴라에게 신경이 쓰인다. 그러던 중, 레누는 피에트로와 이혼한 자신과는 달리 니노는 엘레오노라와의 관계를 끊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된다.
  피에트로와 이혼하고 자신의 거처를 찾지 못한 레누는 나폴리에 니노가 마련한 집으로 들어간다. 때마침 릴라와 레누는 임신을 하게 되고, 그들은 출산 준비를 함께하며 다시금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 한 편, 피에트로와 이혼한 사실에 레누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그녀의 어머니는 병에 걸리게 되고 결국 레누는 어머니를 여의게 된다. 임마를 낳은 레누는 자신의 집에 들어온 가정부와 니노와의 부적절한 관계를 알게 되고 그를 떠나 릴라의 윗집으로 이사하게 된다. 
  자신의 고향에 대한 소설을 쓴 레누는 작가로서 큰 전성기를 맞았고 한 잡지사에서 요청해 온 인터뷰 사진을 릴라의 딸 티나와 함께 찍게 된다. 얼마 후, 릴라는 자신의 딸 티나를 잃어버린다. 티나를 잃어버린 릴라의 감정은 매우 불안정했고 릴라의 주변 사람들은 아슬아슬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레누는 릴라의 불안정한 감정을 바라보다 결국, 나폴리를 떠난다.

 

  릴라는 나를 속였던 것이다. 우리의 우정이 시작된 그 순간부터 나를 제멋대로 자기가 가고 싶은 곳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평생 '내' 육체와 '내' 존재를 빌려 자신의 구원을 이야기한 것이다.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반세기 이상이 걸려 토리노까지 온 그 두 인형은 릴라가 잘 지내고 있으며 나를 사랑하고 이제 드디어 틀을 깨고 세계 일주를 할 생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지난날 릴라의 세계만큼 작아진 세계를 여행하며 새로운 진실에 따라 젊은 시절 다른 사람들 때문에 또는 자기 자신 때문에 누리지 못했던 삶을 살아가면서 늙어갈 것을 의미하는 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p.663) 

  그동안 나폴리 4부작을 읽으면서, 나는 릴라에게 종속되어 있는 듯한 레누의 모습이 싫었다. 유년 시절부터 릴라는 레누에게 친절하게 대하기도 하면서, 레누에게 특별하게 드러내는 이유 없이 그녀에게 적대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래서 작가로 발돋움하면서 릴라에게서 조금은 멀어졌던 레누의 모습을 응원하기도 했던 것 같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에서는 릴라가 레누의 이름을 빌려 자신의 마을을 점령하고 있던 솔라라 형제를 고발하는 듯한 글을 내놓는다. 레누와 함께 쓴 글이긴 하지만, 레누는 그 글을 공개하기를 거부했지만 릴라는 독단적으로 진행한다.
  나폴리 4부작이 철저히 '레누의 시점'으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릴라의 속마음을 깊게 파고들긴 어렵다. 그래서 그들의 우정이 끝났을 때, 레누가 릴라에 대해 판단했던 것이 어쩌면 독자들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마지막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도 다시 한 번 질문하게 되었다. 정말로 레누는 릴라에게 종속되어 있던 것일까? 릴라가 나폴리 사람들을 조종했던 것처럼 레누도 그 사람들 중 하나에 그치지 못했던 걸까?

 

  그저 니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원래 나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이 아니었던 건가. 나 자신을 기만한 것인가. 그동안 보잘것없는 책 두권으로 모든 여성에게 지금까지 자기 자신에게조차 말하지 못했던 것을 고백할 수 있게 도와주는 조력자 역할을 연기했지만 실은 나야말로 독자들은 기만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게 편리하기 때문에 그런 말을 믿었을 뿐 실은 나도 보수적인 내 동년배 여성들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닐까. 말만 번지르르하게 했지 나야말로 나나 내 딸들의 욕구보다 사내의 욕구를 더 중요하게 여길 정도로 철저하게 남성에 의해 주조된 여성이 아닐까.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 p.151)

  레누와 릴라와의 관계는 여전히 아슬아슬해 보였지만, 레누와 니노의 관계는 명확했다. 자신의 첫사랑이며 평생을 바쳐 사랑했던 니노와 연인이 된 레누는 행복해 보였지만 그 행복도 잠시였다. 니노와 연인이 된 후, 레누는 니노의 본모습들을 알게 된다. 그의 주변은 항상 여자들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한 존재들이라는 것을. 나디아와의 연인 관계였던 것도, 엘레오노라와 결혼했던 것도, 그리고 자신과 연애를 했던 것도. 상대방이 끊지 않는 이상, 그 관계를 유지해두는 니노를 보며 아마 그가 진정 사랑했던 건 릴라만이 아니었을까, 하고 레누는 추측해본다.
  이전의 책보다 니노에 대한 인물에 대해 더 자세하게 알 수 있었던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였다. 읽는 내내 나는 레누에게 계속 '당장 헤어져!'라고 소리쳤다. 레누의 첫사랑이라고는 하지만, 니노는 정말 최악이었다. 아마 그 모습때문인지 니노와의 관계를 완전히 끝내버리는 레누의 모습에서 환호성을 지를 수 밖에 없던 것 같다. 릴라 다음으로 레누의 일부분이나 다름 없었던 니노와의 관계에서 벗어나는 레누의 모습을 보며 뿌듯했다. 그녀가 말한대로 '자유롭고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이 다시금 드러나는 느낌이었으니.

 

 

  릴라가 늘 레누를 "라파엘라 체룰로의 눈부신 친구 엘레나 그레코"라고 불렀던 것처럼, 나폴리 4부작을 읽어오면서 릴라와 레누는 나에게 눈부신 친구들이 되었다. 나는 그들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며 성장하길 바랐고 오로지 그녀들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기를 바랐다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를 끝으로, 나는 더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다. 그들이 각자의 길을 떠난 것에 대해 시원하면서도 섭섭하고 또, 원래 그들은 그래야 됐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마 그들은 앞으로 더 행복할 것이다. 안녕, 나의 눈부신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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