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 다음, 작가의 발견 7인의 작가전
정명섭 지음 / 답(도서출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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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내 가족이 입원해 있는 병원이 붕괴한다는 사전 통보를 받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멀쩡히 가족들이 입원한 병원이 붕괴된다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과연, 나는 붕괴된 병원 속에서 가족들을 구할 수 있을까?
  2017년의 마지막 밤을 함께 보낸 <붕괴>. 2017년을 그대로 보내기 싫어 잠들기 전 잠깐 집어든 <붕괴>였는데,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손에 땀을 쥐고 보았다. 빠른 전개로 손에서 쉽게 놓을 수 없는 책이었다.


세화병원 이사장 차재경입니다.
존경하는 가족 여러분께 머리를 조아리고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8월 19일 오후 4시경 세화병원은 붕괴됩니다.
이는 <엑토컬쳐>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책임을 저 차재경과 실험에 동의한 여러분이 져야 할 짐이라 여깁니다. 이에 입원 환자 및 의료진은 8월 18일 자정을 기점으로 퇴원과 휴가 조치를 내릴 예정입니다.
가족 여러분께서는 8월 19일 오후 4시까지 세화병원 후문에 있는 가구점 근처에 모여 계셨다가 붕괴 직후 구조대를 조직해 들어갈 예정입니다.      (<붕괴> p.27)

  세화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가족들은 어느 날 병원이 붕괴된다는 통보를 받게 된다. 예고장에는 병원이 붕괴된 뒤, 모여서 가족을 구하러 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각자 다양한 이유로 입원한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이사장 차재경의 지시에 따라 무기를 들고 지하병동으로 가게 된다. 사실 미리 통보를 받은 가족들의 환자들은 세화병원에서 진행하는 '엑토컬쳐'라는 실험에 참여하고 있었고, 실험에 착오가 생겨 중단하게 되었던 것이었다
  아들 휘와 아내가 병원에 있던 나정현은 붕괴된 세화병원을 급하게 찾았고, 사람들을 만나 지하병동으로 내려가게 된다. 총 7층으로 되어 있는 지하병동을 내려가면서 이사장 차재경이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층, 한 층 내려 가면서 '엑토컬쳐' 실험의 진실을 마주친 그들은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붕괴>는 오랜만에 읽은 미스터리 판타지 소설이었다. '엑토컬쳐'라는 실험 자체가 영혼을 다루는 실험이었고 실험의 결과로 염력, 초능력 등을 다루는 생명체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과 맞서 싸우면서 가족들을 구하러 가는 그들의 앞에는 세화병원이 가지고 있던 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당신들, 모두 괴물들처럼 보여."
  "어차피 당신도 괴물로 변한 가족과 만나야 합니다."

  <붕괴>는 균열, 붕괴, 잠입, 전투, 탈출, 진실이라는 총 6장의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세화병원이 붕괴되기 1년 전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세화병원의 사전통보를 받은 사람들의 가족들이 왜 병원에 입원했는지에 대한 언급이 이루어진다. 사전통보를 받은 사람들 중 '나정현'이라는 인물은 독자들과 같은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는 세화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엑토컬쳐'라는 실험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알지 못하며 그 곳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다른 인물들보다도 '나정현'이라는 인물에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지하 병동 7층까지 가기 위해 한 층, 한 층 내려가는 그들의 앞에 놓인 진실들은 사방에서 그들을 옥죄어 온다. 크게 보면 田자의 형태를 한 지하 병동의 중심으로 내려가는 그들은 내려갈수록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그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한다. 두려움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극심한 공포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 공포 속에서 사람들이 숨겨온 속마음들이 들어나게 된다.

 

  <붕괴>를 읽는 내내 영화 <레지던트 이블>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무언가 숨어 있을 것만 같은 실험실을 돌아다니며 해독제를 찾으며 다니던 장면은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무엇이 숨어 있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그 지하 병동을 돌아다니는 그들의 모습과 겹쳐서 느껴졌다. 정명섭 작가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지하병동 7층을 탐색하는 시간을 굉장히 빠른 호흡으로 그려낸다. 그 빠른 호흡을 따라가다보니 어느새 심장은 쫄깃해진다.
  또한, 정명섭 작가는 그가 만들어낸 '엑토컬쳐' 실험의 결과물들에 대해서 자세한 묘사를 통해서 전달한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상태의 독자였지만, 그의 묘사만으로도 충분히 그 결과물들을 상상할 수 있고 등장인물들이 그들을 마주칠 때마다 나도 그 속의 인물이 되어 긴장감을 느끼기도 했다. 조금의 공포감도 함께.

 

  살짝 아쉬웠던 점이라면, 무너진 건물 속의 진실에 대해 큰 기대를 했었다. 그러던 중 영혼, 염력 등의 판타지적 요소가 등장하게 되어 조금은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소설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 소재들은 공포감을 더해주었고, 소설의 결말을 풀어주는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붕괴>로 인해서 2017년의 밤을 굉장히 짜릿하게 보낸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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