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이우일 지음 / 비채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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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쁜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홀연히 떠나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살던 곳을 떠나 새로운 곳에 잠시 머문다는 건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하나의 로망으로 자리잡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도 그런 로망이 있다. 얼마 전, 가을의 제주도의 풍경을 담은 영상을 보고 더도 말고 딱 한 달만 저 곳에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 걱정 없이, 좋아하는 책들을 잔뜩 쌓아 놓고,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느끼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나를 상상했다.

  나는 퐅랜이 좋다. 이곳의 삶도 다른 도시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나는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있다. 결코 사사롭다고 할 수 없는,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만한 것들이다. 그런 것들이 특별히 이 도시, 퐅랜이라서 더욱 좋거나 소중한지는 모르겠다. 그냥 어쩌다보니 이 도시에 나는 서 있다.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은 오랜 서울살이를 뒤로 한 채 포틀랜드에서 이 년동안 거주한 저자 이우일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실 '포틀랜드(a.k.a. 퐅랜)'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북유럽이나 영국의 한 도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실 포틀랜드는 미국 오리건 주에 위치한 작은 도시였다. 저자 이우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퐅랜'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저자 이우일이 들려주는 퐅랜은 매우 다양한 매력을 지닌 도시이다.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지 않고 돌아다니고 수염, 타투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뚜렷한 취향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이다. 유명 인사들이 몰래 다녀가도 모를 이 도시에는 개성 있는 책방들과 빈티지 가게들이 퐅랜만의 정감을 대표하고 있다. 비가 오지 않는 5월~10월에는 화려한 불꽃놀이며, 다양한 재즈 공연 등 여러 축제들이 퐅랜을 활기차고 유쾌한 공간으로 꾸며주고 있었다.

 

 

 

 나는 작고 아담한 이 도시가 좋다.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크기가 안정감을 준다. 퐅랜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작은 도시이고, 그래서 살아보니 정이 간다. 나와 도시를 조화시킬 수 있다는 느낌이다.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에서 저자 이우일은 퐅랜에서의 일상들을 담은 일러스트들과 함께 특유의 담담하면서 재치있는 문장으로 퐅랜을 소개해준다. 마치 일기장을 보는 듯한 세세한 묘사들은 실제 내가 퐅랜에 머물고 있다는 느낌을 자아낸다. 이우일 작가가 말해주는 대로의 퐅랜이 내 머릿 속에 자연스레 그려진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전혀 다른 퐅랜만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도시 어디에서든 '땡스!(Thanks!)'를 외친다는 것이었다. 버스를 타고 있던 퐅랜 사람들은 앞문이나 뒷문으로 내리던 간에 '땡스!'라고 외치고, 신호등을 건너면서 자신을 위해 멈춰 준 운전자를 향해 싱긋 웃으며 '땡스!'를 외친다고 한다. 사소함에도 고마움을 느끼며, 퐅랜 사람들만의 정감을 보여주는 것 같아 기분 좋게 느껴졌다.

 

 

 

  <퐅랜,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과 같은 기분 좋은 여행 산문집을 오랜만에 만나게 되어 좋았다. 사진 대신에 작가 특유의 감성을 담은 일러스트들이 텍스트 사이사이에 놓여 있던 것도 매력적이었다. 책을 읽기 전까지 전혀 알지 못했던 포틀랜드에 대해서 완벽하게는 아니더라도 그 곳의 따뜻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책을 덮고 나서 굳이 퐅랜이 아니어도 어디든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이왕이면 그 곳에서 오래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지고 있다. 그 곳이 어디든, 여행의 따뜻한 감성을 느끼고 싶다.


모든 것엔 끝이 있다.
끝이 있으니 우린 즐기며 살 수 있다.
무엇을 하든 어디로 가든 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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