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투 더 워터
폴라 호킨스 지음, 이영아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가끔 깊은 물 속을 들여다보면 무서움을 느낄 때가 있다. 한없이 깊어져가 바닥이 어딘지도 짐작할 수 없는 그 곳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소름이 돋기도 한다. 함부로 가늠할 수도 없는 깊은 물 속에, 잔잔한 줄만 알았던 수면 아래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어 있다면 어두운 물 속의 공포는 더 심해질 것이다. 물이 주는 차가운 냉기 속에 숨어 있는 비밀은 무엇일까.

 

 겨울에 창백하게 얼어붙은 강물, 시커멓고 삭막한 절벽, 여름의 반짝거리는 강물, 푸르른 오아시스, 위에 먹구름이 끼어 있는 칙칙한 잿빛 강물……. 이 이미지들이 흐려지면서 하나가 되어 내 눈을 공격해 오자 머리가 어찔해졌다. 마치 내가 그 곳에 있는 것 같았다. 절벽 꼭대기에 서서 강물을 내려다보는 듯 그 끔찍한 전율, 망각의 유혹이 느껴졌다. (p. 23)

 

  언니 넬 애벗의 죽음으로 줄스(줄리아 애벗)은 어렸을 적 살던 벡퍼드로 돌아온다. 벡퍼드는 여성들의 자살 명소로 유명한 드라우닝 풀('익사의 웅덩이')가 있는 곳이었다. 수백 년동안 리비 시턴, 메리 마시, 앤 워드, 지니 토머스, 로런 슬레이터, 케이티 휘태커 등 많은 여성들이 벡퍼드의 웅덩이에서 죽었고 넬은 그 곳의 비밀을 파헤치고 있었다. 넬의 죽음이 웅덩이와 관련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며 사건을 파헤치던 중, 넬 이전에 발생한 케이티의 죽음과 로런의 죽음과의 연관성을 밝혀내게 되었다.
  한편, 벡퍼드의 웅덩이에 좋지 않은 추억을 가지고 있던 줄스는 언니인 넬이 자살했다고 생각하며, 넬이 죽기 전 자신에게 연락했다는 사실을 무시하려고 한다. 그러나 넬이 자살이 아닌 타살을 당했다는 경찰들의 수사 결과를 듣고, 언니에 대한 생각을 곱씹기 시작한다. 이 마을의 웅덩이에는 과연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일까. 그리고 줄스는 왜 언니를 계속해서 피했던 걸까.

 

 

 

 

 

 

 

 

 

  <인 투 더 워터>를 읽으면서 굉장히 많은 집중력이 필요했는데, 열 명이 넘는 화자들이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줄스, 리나, 션, 에린, 조시는 '나'로 등장하며 1인칭 화자로서 서술을 진행하는 반면, 니키, 마크, 헬런, 루이즈, 패트릭의 경우에는 '그'와 '그녀'로 등장하여 3인칭 화자로서 서술이 진행된다.그럼에도 그들은 주요 사건인 케이티와 넬의 죽음을 함께 바라보며 다른 시각을 내비친다. 두 개의 사건, 아니면 그 이상의 사건들을 함께 겪은 그들의 심리를 따라 가다보면 결국 엇물리는 부분이 생기게 된다.
  
  폴라 호킨스는 1인칭, 3인칭을 번갈아 사용하며 열 명이 넘는 화자들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한다. '그','그녀'라고 지칭되는 인물임에도 그나 그녀의 심리는 1인칭 화자들 못지 않게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소설 제목이 <인 투 더 워터> 임을 감안한다면, 그들의 심리는 모두 수면 아래에 잠겨 있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잔잔한 수면 아래, 그들은 모두 추악한 비밀을 숨기고 있었다.
   케이티와 넬, 그리고 더 나아가 로런의 죽음을 열 명의 화자 중 경찰인 에린과 션이 풀어내는데 여기서 독자들은 마치 그들의 동료 경찰인냥 범인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된다. 폴라 호킨스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열 명의 화자들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의심을 놓칠 수 없도록 만든다. 

 

 

  한 편, 넬은 죽기 전 줄스에게 전화를 건다. 그러나 줄스는 넬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 이전에 그랬듯이 그 때도 여전히. 하지만 넬이 죽은 후, 벡퍼드로 다시 돌아온 줄스는 넬이 쓴 드라우닝 풀에 대해 읽게 되면서 서로의 기억이 잘못 되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면서 폴라 호킨스는 1993년 열 세살의 줄스와 2015년 성인이 된 줄스의 이야기를 번갈아 가면서 들려준다. 오로지 줄스의 입장에서 바라본 넬을 묘사하기 때문에 독자들은 쉽게 그들이 어떤 계기로 멀어졌는지 알기 어렵다. 잊고 지내고 싶었던 그 기억에 대한 오해와 왜곡이 사건의 발달이 됐음을 깨달은 줄스는 넬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1993년과 2015년을 넘나드는 교차 서술은 <인 투 더 워터>의 또 다른 묘미로 다가온다.

 

 

 

  이곳은 수백 년 동안 리비 시턴, 메리 마시, 앤 워드, 지니 토머스, 로런 슬레이터, 케이티 휘태커, 그리고 이름도 얼굴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왜, 어쩌다가 그렇게 됐는지, 그리고 그들의 삶과 죽음이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런 의문을 던지기보다는 입막음하고 침묵시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나는 침묵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나의 인생과 벡퍼드의 웅덩이에 대한 이 비망록을 익사가 아닌 수영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그것이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p.57)

  벡퍼드의 드라우닝 풀에서 죽은 희생자들은 대부분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15세기 마녀사냥부터 시작하여 불륜을 저질렀다면 벌을 받아야 하는 쪽은 여성이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까지. 작은 마을에 숨겨진 위선과 성적 욕망들은 여성들을 극한의 상황까지 몰아갔다. 또 다른 여성들의오해를 불러 일으켰고, 억눌렸던 증오와 욕망들을 폭발시켰다. '사랑'이라는 수면 아래에 숨겨졌던 추악함.
  과연, 벡퍼드의 드라우닝 풀에서의 죽음은 끝이 날까. 마지막 책장을 놓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인물의 반전 행적에 대해 놀라게 되는 <인 투 더 워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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