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2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의 사랑은 야만적이고 낯설어 두렵기까지 했다

 

 

  실제 그 공간에 있었던 듯한 느낌을 주는 자세하고 세밀한 묘사력에 놀랐던 <나의 투쟁 1>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자신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나의 투쟁 2>는 자신의 세 아이들과 아내 린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나의 투쟁 1>에서도 그는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에 대한 서술을 주로 했는데, <나의 투쟁 2>에서도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로부터 하여금 자신의 기억들을 불러 오고 있었다. 아버지, 윙베 형, 삼촌 등 다양한 가족 관계에서 이제는 자신의 세 아이들, 아내 린다, 그리고 친구 게이르 등으로 그 관계는 축소되었다. 아버지에 대해 떠올리던 아들은 어느새 자라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인간은 같은 조건으로 평등하게 태어나지만 성장하면서 접하는 외부적 환경 때문에 저마다 다른 인성을 형성한다고 하는 말은 진실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진실은 이와 정반대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인성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외부적 환경에 따라 서로 비슷비슷하게 또는 평등하게 변해간다. (p.34)

 

 

  바니아, 헤이디, 욘의 아버지가 된 칼 오베는 자신의 아이들을 돌보며 아내 린다와 함께 살아간다. 세 아이와 함께 하는 그 곳은 전쟁터와 다름 없다. 린다와 번갈아 가며 육아를 하지만 두 사람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세 아이들을 돌보기엔 너무 힘들다. 부정할 수는 없지만 세 아이들은 모두 그와 닮고 또 닮았다. '집'이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닮아갈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느낌을 싫어하지 않는다.
  <나의 투쟁 2> 를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보자면, 바니아와 헤이디에 대한 그의 생각과 아내 린다와의 연애이야기이다. 소설의 전반부는 주로 자신의 딸들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칼 오베는 지옥 같은 육아에 가끔은 아이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만, 굉장히 자상한 아버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바니아와 헤이디에 대해 서술한 부분들을 읽다보면, 그는 그 어느 아빠보다 자신의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했고 파악했다. 그리고 그 두 아이들의 성격에 맞게 맞춤 육아를 한다. 물론, 자신의 자유 시간이 필요해 아내 린다에게 혼자 육아를 부담할 때도 있지만 그 누구 못지 않게 육아를 도와주는 남편이다.

 

 

 

 

그리고 린다를 만났으며 태양은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다른 적절한 표현은 생각해낼 수가 없다. 태양은 내 삶 속에서 다시 떠올랐다는 말 외엔. 그것은 처음엔 지평선을 비추어 내리는 희미한 빛에 불과했다. 그 빛은 마치 이곳을 바라봐야 한다고 내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뒤를 잇는 강렬한 빛 한 줄기.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빛을 받아 더욱 선명해졌고 더욱 가벼워졌으며 더욱 생동감을 얻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내겐 기쁨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어느새 태양은 내 삶의 하늘 한가운데로 떠올라 이글거리며 타들어가고 있었다. (p.276)

 

  <나의 투쟁 2>의 후반부는 아내 린다와의 연애 이야기로 채워진다. 토니에와의 8년 간의 결혼 생활을 마무리 지은 후 스웨덴으로 온 칼 오베는 아내 린다를 만나게 된다. 그녀와의 연애가 처음부터 평탄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녀와 사랑하면서 일상적인 것들을 보내게 된 그는 큰 행복감을 맛본다. 그녀와 함께 보냈던 일상에 대한 서술들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영화 <어바웃타임>의 주인공들이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간지러운 장면들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들도 연인이긴 연인이었다. 제3자인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 문제들로 싸우기도 하며, 언제 싸웠다는 듯 서로를 찾기도 했다. 그들의 사랑도 그렇게 특별한 것은 없었다. 어느 연인들처럼 지내던 그들은 결국 서로의 아이를 갖고 싶다는 말로 결혼 생활을 시작한다.

 


 

 

 

  <나의 투쟁 1>에서도 자주 언급되었듯이 그의 직업은 '작가'이다. 그에 따라 그는 글을 쓰는 일, 작품을 쓰는 일, 그리고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한다. 글이 쓰여지지 않을 때마다 글 쓰는 일에 대해 여러 고민한 그의 흔적은 <나의 투쟁 2>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
 <나의 투쟁 2>는 <나의 투쟁 1>보다 읽어 내려가는 데에 크게 어려움이 없었다. '큰 사건 없이 잔잔한 자전 소설'이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박혀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나의 투쟁 2>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큰 사건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의 일상이 마치 내 일상인듯 평온하기만 하다. 칼 오베의 <나의 투쟁>은 그게 매력이지 않나 싶다.
  그의 기억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소설이 끝나있는 마법이 이루어진다. 특별한 사건이 있어 흥미진진한 것도 아닌다. 그러나 괜히 그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너는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보는 일에 대해서도 스무 장씩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니까. 그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그 글을 읽고 싶게 만들고 심지어는 눈물까지 흘리도록 만들 수 있잖아. 그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도대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해?(p.197)"  어쩌면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보는 일에 대해서 스무 장씩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칼 오베 한 명 뿐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그의 기억들을 읽는 일이 즐거워진다. 그의 묘사들이 머릿속에 재밌는 그림들을 그려주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