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쉬왕의 딸
카렌 디온느 지음, 심연희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작년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고 나서 관심이 생겨 읽었던 책이 있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되어 더 호기심을 자극하였던 엠마 도노휴의 <룸>이었다. 5살짜리 잭의 시선에서 쓰여진 이 책은 7년 전 납치된 잭의 엄마가 잭이 5살이 되는 해에 탈출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탈출 계획을 세우고 잭과 함께 그 악몽같은 좁은 방에서 벗어난 그들의 이야기는 금새 읽어버릴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카렌 디온느의 <마쉬왕의 딸>은 엠마 도노휴의 <룸>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을 보이는 책이다. 유괴범에게 납치된 뒤 수차례의 강간을 당하고 태어난 아이들의 시선으로 내용이 전개되는 것은 공통되나 두 아이들의 성별이 다르다는 것과 <룸>은 탈출 직후의 이야기까지만 다루고 있지만, <마쉬왕의 딸>은 탈출 직후, 성년이 된 이후의 모습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다. <룸>은 <룸>대로, <마쉬왕의 딸>은 <마쉬왕의 딸>대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제이콥 홀브룩이 교도소를 탈출했다. 마쉬왕[Marsh king, 늪을 다스리는 왕]이, 나의 아버지가.
그리고 애초에 그를 감옥에 보낸 사람이 바로 나였다. (p.24)

   남편, 두 딸과 살고 있는 헬레나는 어느 날, 죄수가 교도관 2명을 죽이고 탈출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탈출한 죄수가 자신의 아버지란 사실을 인지하고 자신의 가족이 위험에 처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를 쫓아 막을 사람은 자신뿐이라는 사실도. 아버지가 교도소에 끌려간 이유는 아동 유괴, 강간 및 살인 죄목때문이었다. 
  사실 헬레나의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납치당한 뒤 14년동안 두려움에 떨면서 살아야했다. 늪지대의 오두막에 살고 있던 그들의 존재는 바깥 사람들에게 쉽게 노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발견되었을 때, 많은 언론들은 헬레나와 헬레나의 어머니가 어려운 생활을 해왔을 것이라고 추측했지만, 헬레나의 유년 시절은 아버지와의 추억으로 가득했다. 아버지에 대한 비밀을 알기 전까지만 해도.

그런 차림을 하고 있으면 언젠가 아버지를 꼭 닮은 남자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나는 아버지의 버릇과 말투, 걸음걸이를 그대로 따라했다. 아버지를 숭배했던 건 아니었지만, 그것과 비슷하기는 했다. 그때 나는 참으로 부끄럼도 없이 절대적이면서도 극도로 아버지를 사랑했었다.(p.105)

  <마쉬왕의 딸>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면서 전개된다. 늪지대에서 아버지에게 사냥을 배우며 보냈던 유년시절에 대한 회상과 탈옥한 아버지를 추격하는 헬레나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여기서 주목해야될 점은 과거와 현재, 아버지에 대한 헬레나의 생각의 차이이다.
  유년 시절, 헬레나는 아버지에게 사냥의 기술들을 배우면서 그를 동경하고 사랑한다. 자신의 생일날, 아버지에게 받은 칼은 그녀의 보물이 될 정도로, 아버지의 존재는 그녀에게 매우 소중했고 그녀가 존재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탈옥 후 자신의 가족을 위협하는 아버지의 존재는 어렸을 적 그녀가 가졌던 감정과는 정반대였다. 그를 원망하면서 서둘러 그를 잡아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고자 한다.

 

 

  <마쉬왕의 딸>이 더욱 재밌는 점은 안데르센의 동명의 동화 <마쉬왕의 딸>을 차용하여 창작된 소설이라는 점이다. 이집트 공주가 늪을 다스리는 마쉬왕에게 잡혀가는 안데르센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동화 속의 주인공들은 헬레나와 그녀의 가족들과 매우 닮아 있었다. 늪지대에 살고 있는 마쉬왕은 헬레나의 아버지 제이콥 홀브룩을, 이집트 공주는 헬레나의 어머니를, 그리고 마쉬왕의 딸 헬가는 헬레나를 가르킨다.
  이 동화에서 헬가는 낮과 밤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과연 어느 것이 그녀의 진짜 모습인지는 동화 후반부가 되어서야 알게 된다. 아름답지만 괴팍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낮의 모습인지, 온순한 성격과 슬픈 눈을 가지고 있는 흉측한 개구리인 밤의 모습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이는 아버지에 대한 헬레나의 생각과 비슷하게 느껴진다. 헬레나는 아버지를 그대로 닮은 헬가의 낮의 모습인지, 바이킹 부인을 생각하고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는 밤의 모습인지에 대해. 결국, 그녀는 밤의 헬가겠지만.

 

 

 

 

  간결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마쉬왕의 딸>은 스릴러 소설답게 빠른 호흡을 자랑한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긴장감이 넘치는데, 특히 헬레나가 탈옥한 아버지의 뒤를 추격하는 장면에서는 함께 그의 뒤를 쫓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빠른 속도감이 느껴진다. '사냥', '사냥꾼'이라는 소재가 더욱 이 소설의 호흡을 빠르게 만드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빠른 호흡으로 순식간에 읽을 수 있는 심리 스릴러 소설을 찾고 있다면, 주저없이 <마쉬왕의 딸>을 추천한다. '잔인한 사이코패스와 무력한 여성 피해자'라는 클리셰를 벗어나 새로운 여성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는 <마쉬왕의 딸>의 매력에 다른 독자들도 빠져들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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