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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 - 대한민국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 12인이 말하는 내 힙합의 모든 것
김봉현 지음 / 김영사 / 201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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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액~ 수액~ 고로쇠 수액~
2011년, 방구석에서 MBC 무한도전을 보고 있던 나는 열심히 고로쇠 수액을 찾던 박명수의 모습을 보고 깔깔 거리며 웃었다. 힙합에서 자신의 멋, 자신의 스타일, 더 나아가 자기 만족과 자아도취, 자유로움, 가벼움 등을 뜻하는 말로 사용되는 '스웩(Swag)'에서 비롯된 유머였다. 아마 이 즈음부터 힙합에서 사용되는 용어들이 TV나 신문 등 대중 매체를 타고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힙합도 대중 문화의 하나로 자리잡기 시작하지 않았나 싶다.
2013년, 우연히 보게 된 <쇼미더머니> 시즌2를 시청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지루한 고3 생활을 즐기고 있던 나에게 <쇼미더머니>는 굉장히 신선한 프로그램으로 다가왔다. 여전히 공중파의 위력이 강하던 때였기에, 그렇게 삐- 소리가 많이 나는 프로그램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쇼미더머니>를 접하기 전부터 랩이 들어간 노래들을 좋아했었지만, <쇼미더머니> 속 삐-처리의 향연은 새로운 힙합의 세계를 열어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다음 날부터 "네 귀에 때려 박아 줄게!" 라는 유행어를 남긴 래퍼 매드클라운의 노래는 내 MP3 리스트를 장악했다. 그러나 이 거친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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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ㄴ업! 너와 나의 연결고리!
갈수록 높아지는 수위에 항상 논란이 끊이지 않던 <쇼미더머니>였다. 힙합을 대중들에게 알렸던 프로그램이었고, 함께 높아지는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늘 새로운 수위를 마련했어야 했다. 래퍼들은 경쟁을 통해서 서바이벌 단계를 거쳤고, 그러다보니 상대방에 대한 디스와 욕설이 난무하는 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방송이 끝난 뒤에는 그들의 수위에 대한 기사들이 올라오면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의 음악은 음원 차트를 점령하기도 했다.
<쇼미더머니>부터 <언프리티랩스타>,<고등래퍼>까지 다양한 힙합 프로그램들은 많은 대중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고, 방송이 끝난 뒤 SNS는 항상 그들의 이야기로 가득 찼다. 그러다보니 "이게 진정한 힙합이야!", "너희들이 힙합을 알아?","이건 진짜 힙합이 아닌데."라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진짜와 가짜를 논하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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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를 저도 알죠. <쇼미더머니>나 <고등래퍼>나 100퍼센트 힙합은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이 말을 하고 싶어요. 그걸 따지기 전에 이미 한국이 힙합이 아니라고요. 당신이 원하는 힙합이 이루어지려면 시간이 걸릴 거고, 그런 거 일일이 다 따지면 언더그라운드에서 우리 공연할 때 교복 입고 오는 그 고등학생들부터 먼저 쫓아내야 한다고요. 그 친구들부터가 이미 힙합 정서를 가지고 공연을 보러 오는 게 아니잖아요. 어떤 창의적이고 멋있는 오빠 언니들이 공연하는게 좋아서 오는 거지, 그 중에는 라임이 뭔지 모르는 사람도 아마 많을 거에요. (p.243 스윙스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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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에서는 12명의 힙합 아티스트(도끼, 더콰이엇, 빈지노, 팔로알토, 제리케이, 스윙스, 허클베리피, 산이, 딥플로우, JJK, 타이거 JK, MC메타)들의 인터뷰를 통해 힙합에 대해 알려준다. 물론, 12명의 힙합 아티스트들이 가지고 있는 힙합에 대한 생각은 모두 다르다. "오, 그래! 이게 힙합이지!" 하면서 책을 읽다가도, 다른 아티스트가 가진 힙합에 대한 생각을 읽고는 "아, 그래~ 이것도 힙합이지!" 하게 되는 상황이 12번이나 반복된다. 날 보고 있는 아버지도 정답을 내려주기에 어려운 상황이다.
작가 김봉현은 힙합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벗겨내고 힙합 고유의 멋과 매력을 알리는 작업, 힙합이 지닌 긍정적인 태도와 역동적인 에너지를 대중과 연결하는 작업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고 나면 다양한 12명의 힙합 아티스트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힙합을 사랑하고 있고, 힙합을 한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런데 힙합은 유독 내 얘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했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힙합의 장점은 본인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한다는 데 있으니까. (p.61 더콰이엇 인터뷰 중)
저는 항상 자기객관화를 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내가 쓴 가사에 내가 떳떳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가사를 써놓고 나를 거기에 끼워 맞추면 자기가 만들어놓은 네모 칸에 자기를 가두는 거니까 그러지 않으려고 평소에 자기객관화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p.157 팔로알토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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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엔 사이 좋게 나눠내, N분의 1로!
힙합의 팬들이 화성에서 왔다면, 다른 사람들은 금성에서 왔다. 화성에서 온 사람들에게 힙합이란 가장 혁신적인 음악이자 새로운 삶의 방식이다. 또 삶을 구원한 존재이자 존중받아 마땅한 고도의 예술이다. 그러나 금성에서 온 사람들에게 힙합이란 다른 장르에 비해 열등한 음악이자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음악이다. 또 세속적이고 물질만능적이며 올바르지 못한 음악이다. (p.7)
아마 이 책의 마지막 인터뷰까지 읽고 난다면, 금성인들은 힙합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나마 풀지 않을까 싶다. 금성인이었던 나 역시 어둡고 거칠어 보이던 이 문화가 재밌고 역동적으로 느껴졌으니 말이다. 힙합에 대해 오해하던 금성인도, 힙합을 좋아하고 즐겨왔던 화성인들도 <밀리언달러 힙합의 탄생>을 읽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생각보다 힙합의 세계는 넓고 다양하니까. "힙합: 음악, 문화, 삶의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