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투쟁 1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지음, 손화수 옮김 / 한길사 / 2016년 1월
평점 :
품절


 

 

 

심장의 삶은 단순하기 그지없다. 힘이 다할 때까지 움직이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다 멈추어버리면 되니까. 심장의 이러한 규칙적인 움직임이 언제가 저절로 멎게 되는 날이 오면, 온몸의 피는 신체의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내려 덩어리를 이룬다.

  오랜만에 인상적인 소설의 첫 문장을 만났다. 담담하게 말하는 듯하면서도, 적절한 비유가 섞인 이 첫 문장은 죽음을 바라보는 작가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누군가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소설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냉담하게 바라보며 시작하는 소설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자신이 겪는 그 상황에 대해서, 마치 그 상황의 밖에 있는 누군가가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서술하는 것이 매력적인 <나의 투쟁>은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자전 소설이다.

나는 수년 동안 내 아버지에 대해 글을 써보려 했지만, 마음대로 잘 되지 않았다. 아마 내 삶에 너무나 가까운 소재였기에 문학이라는 틀 안에 가두어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대해 색다르게 바라보던 칼 오베의 시선은 그에게 가장 가까운 소재인 아버지로 향하게 된다. 여덟 살의 나이로 바라보았던 아버지, 청소년기의 칼 오베가 바라보았던 아버지에 대해서 서술한다. 그리고 소설 중반부가 되면 그는 자신이 서른 즈음에 죽음을 맞이하였던 아버지에 대해 서술한다. 아버지를 시작으로 어머니, 열 살 위의 형 윙베, 할머니,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작가가 되기까지의 자신을 그려낸다.

 

 

  <나의 투쟁1>600페이지가 넘지만, 독자들의 눈길을 끌만한 사건은 크게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은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지는 대목들이 종종 있었고, 그나마 그의 첫 사랑 이야기나 밴드부로 활동했던 이야기, 작가로서 자신의 생활을 담은 이야기 등은 상대적으로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이 소설을 계속 읽었던 이유는 그의 기억에 대해 놀랐기 때문이었다. 세세하고 자세한 묘사력을 통해, 그는 자신의 일상이었던 그 순간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었고 독자들은 마치 자신 역시 그 상황에 있는 듯 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얼굴에서 나이를 먹지 않는 것은 눈밖에 없다. 눈은 우리가 태어날 때나 죽을 때나 한결같이 빛을 머금고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눈동자 속의 핏줄은 더욱 굵어지고 선명해질 것이며 점막은 힘을 잃고 시들시들해지겠지만, 눈빛은 변하지 않는다.

 

   칼 오베에게는 변하지 않는 눈빛뿐만 아니라 변하지 않는 기억력 역시 존재하는 것 같다. 책 표지에도 나와 있듯이, 빛을 잃지 않은 그의 단호한 그의 눈빛에서는 앞으로 그가 보여줄 삶의 투쟁’을 암시하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진중하면서도 솔직한 그의 일상을, 늘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칼 오베의 모습을 계속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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