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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 개정 증보판
고수리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8월
평점 :
어느덧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낱장의 여름 이불을 정리하고 톡톡한 이불을 꺼내 덮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게 내 체온에 의해서만 포근해진 이불 안. 조금의 온기가 가져다주는 소소한 행복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직접적인 촉감으로 느낄 수는 없어도, 마음속 한켠에서 몽글몽글 피어나는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 고수리 작가의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를 읽는 시간은 톡톡한 이불만큼이나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나는 그날의 하얀 눈처럼 담백하고 따뜻한 글을 쓸 것이다. 손가락으로 몇 번을 지웠다가 또 썼다가. 우리가 매일 말하는 익숙한 문장들로 싸박싸박 내리던 그날의 눈처럼. 담담하게 말을 건넬 것이다. 삶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위로의 말을. _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프롤로그 중에서
모두의 삶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바라보는 시각이 참 좋다. 고수리 작가만이 가진 그 따스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참 좋다. 두 번째 에세이였던 《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를 먼저 읽고선 글자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토닥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사뭇 흥미로웠다. 잠들지 못하는 밤마다 써 내려간 글들을 모아 처음으로 엮었다던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을 이후에 만나니 오히려 절제되지 못한 외로움과 스스로를 위한 위로를 보내는 그 이야기들이 더욱 와닿았다.
시간이 흘러 더럽고 무섭고 힘들고 슬픈 어른들의 세계를 알게 된 후에는, 이제 우리가 다른 누군가를 지켜주려 한다. 온 힘을 다해 지키고 싶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우리 모두는 산타클로스가 된다.
산타클로스는 있다. 이 세상에 사랑이 존재하는 한, 우리에게 산타클로스는 있다.
_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p. 111
종종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다 보면 정지되어 있는 듯한 한 풍경에 녹아든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상상한다. 바쁘게 책장을 넘기며 공부하는 사람,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 스마트폰 속 재밌는 영상을 보며 입가에 미소가 어린 사람… 그 사람들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며 그들만의 사정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실제로 정말 그럴지 아닐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이 발칙한 상상을 나만 하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고수리 작가는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에서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비롯해 자신이 만난 사람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풍경을 글 속에 담아낸다. 내가 겪은 일, 내 주변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사람 사는 풍경을 머릿속에 떠올리게 만든다. 저마다 가진 이야기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그림으로 그려질 때의 흐뭇함,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를 읽으며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졌던 이유는 그것 때문이 아니었을까. 나도, 당신도,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듯했지만 사실은 모두 비슷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동질감이 들어서.
예전의 나처럼, 그리고 청년처럼. 어둠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다만 잠시만 그곳에 머무르라고. 어둠 속을 걷다 보면 어딘가에서 당신을 이끌어줄 빛을 만날 거라고. 어둠 속이 너무 희미해 잘 보이지 않는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으니까. _ 책 «우리는 달빛에도 걸을 수 있다» p.184
위로의 온기가 가득한 가을밤, 글 하나에 마음이 따뜻해질 수 있다는 건 정말 좋다.
그 따스한 온기로 오늘 밤은 좋은 꿈을 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꿈에는 달빛이 가득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