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우리돌의 바다 - 국외독립운동 이야기 :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편 뭉우리돌 1
김동우 지음 / 수오서재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족들과 상하이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여행 일정을 짜면서 반드시 빼놓지 않은 한 곳,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 시간이 어긋나는 바람에 청사 안까지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겉모습만을 마주했을 때의 느낌은 썩 좋지는 않았다. 건너편엔 큰 쇼핑센터가 자리하고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반면에, 임시정부청사는 쉽게 지나칠 만한 골목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평범한 붉은 벽돌의 건물을 말없이 바라보다 자리를 떠났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의 모습은 쓰라린 역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국외 독립운동의 대명사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그렇게 보존되어 있었다면, 그보다 더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흔적들은 어떻게 보존되고 있을까. 김동우 작가의 《뭉우리돌의 바다》는 나의 질문에 흥미로운 대답을 전해준다. 그동안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한국과 맞닿아 있던 중국과 러시아를 벗어난,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작가는 한국과 맞닿아 있던 중국과 러시아를 넘어서 인도, 멕시코, 쿠바, 그리고 미국에서 대한민국을 되찾기 위한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추적한다. 그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잊어버린 그 아픈 기억을 마주하며 먹먹해지는 감정을 숨길 수 없게 된다.

날카로운 가시에 찔리고 베여 상처투성이가 되기 십상이었다. 때론 채찍을 드는 농장도 있었다. 하루 일해 식비를 내고 나면 손에 쥐는 건 그리 많지 않았다. 돼지보다 싼 몸값이었고 노예와 비슷한 대우를 받았지만 그래도 살아야 했다. 고양에 돌아가려면. 그 이유야말로 혹독한 농장 생활을 견디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었다. 그랬던 꿈이 일제에 의해 무참이 짓밟힌다. 그럼에도 이들은 포기가 아닌 분투를 선택한다. (p.47-49)

1930년대, 독립운동이 국내에서 국외로 이동하게 된다. 한국사 시간에 언급된 만주, 연해주 등은 비교적 가까운 물리적 거리 때문인지 심리적으로 어색함 없이 익숙하게 다가온다. 몇몇 단체의 이름과 대표 인물, 활동들을 머릿속에 암기하고 있을 정도이니. 하지만 멕시코, 쿠바, 하와이 등에서 생겨난 단체들은 그저 이름만이 전해질 뿐이고 그마저도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이다. 나 역시 그러했다. 멕시코의 애니깽 농장, 하와이의 대조선 국민 군단 등 표면적인 사실만 알았을 뿐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희망으로 그곳에서 버텼는지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있었다.

《뭉우리돌의 바다》는 그러한 우리들에게 그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전달한다. 세대를 거쳐 한국인의 이미지를 어렴풋이 보여주는 '조선'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들의 사진은 묘한 감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낯선 이에게서 느껴지는 동질감은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파고들게 만든다. 그 속에서도 잊히지 않은 한국의 냄새가 고스란히 풍겨진다. 이 사람들이 겨우 지키고 있는 우리 역사의 기억 파편은 점점 희미해져간다.


"멕시코인 부인 사이에서 낳은 제 딸도 한국에서 연수를 받으며 한국 문화를 경험했죠. 그녀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나는 한 번도 조상들의 독립운동에 대해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멕시코에서 태어났지만 뿌리는 한국이죠. 그 이유 하나만으로 지금까지 한국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같은 핏줄이 아니면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이었죠." (p. 89)

김동우 작가의 손가락 끝, 한 번의 셔터로 담긴 바다 건너의 이야기들은 '역사'와 '기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끔 만든다. 기억하지 않는 이야기는 역사로 남지 못하고, 그대로 잊힌다는 사실은 가슴 먹먹하게 만든다. 더 이상 기억할 사람들조차, 그리고 그 기억을 다시 회복시킬 만한 장소도 사라지는 현실 역시 쓰라리다. 《뭉우리돌의 바다》를 읽으며 그 속에 담긴 사진을 통해 그곳을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이렇게 기억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단 사실과, 더불어 이 책을 읽은 나 역시 기억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