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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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고교 과정을 마친 사람들에게 '박완서'는 친숙한 작가 중 한 명이다. <나목>,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그의 다양한 작품들은 교과서에서 반드시 배워야 할 작품으로 손꼽힐뿐더러 한국 현대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1980~19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독으로 마련된 작품집보다는 작품의 일부가 발췌된 글이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마주한 것이 먼저인 경우가 많지 않을까. 나 역시도 그녀의 이름과 작품을, 단행본이 아닌 교과서에서 먼저 만났으니까.


사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작품을 온전하게 읽었던 기억은 뚜렷하게 남아있지는 않다. 어렴풋이 어디선가 읽어 본 기억만이 남아있을 뿐. 그래서 처음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 작품을 온전히 알지 못해 책의 깊은 맛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오히려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들을 온전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아직도 소설의 이야기성과 그 이야기 속에 삶을 반성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불어넣기를 꿈꾸는 지극히 보수적인 이야기꾼입니다. 그런 저의 설자리가 자꾸 좁아져 겨우 억지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걸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제 구닥다리 방법으로는 한치 앞을 못 내다보게 급변하는 현실을 따라잡기 버겁다는 엄살을 떨래서가 아니라 나름대로 진실을 만들어내려는 고통보다는 손끝에 익힌 재주에 의지하고 있다는 자격지심 때문입니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은 기획부터 신선하다. 박완서 선생님이 책 한 권을 세상에 내보일 때마다 어떤 마음이셨는지 모든 것을 담은 서문과 발문들을 모아 놓는다. 하나의 작품집을 독자들에게 전할 때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계셨구나, 하며 집필 과정에서의 수많은 고민들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독자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을 풀어내는 그 글 속에서도 그 특유의 따스함이 묻어 나오는 건 너무도 당연한 것이겠지.



열다섯 홍안 소년 아들에게 자기가 쓴 책을 선물하면서 어미는 수줍어했을까, 자랑스러워했을까. 잘 생각나지 않는다. 25년이란 긴 세월이다. 그동안 출판사 사정에 의해 판권이 딴 데 넘어간 적도 있고, 시대에 맞게 새롭게 단장하느라 표지나 판형을 바꾸면서 책의 부피도 늘리려고 원고를 대폭 보탠 적도 있다. 그러나 초판본 때의 내용은 지금 읽어보면 우리가 그렇게 살았던 적도 있었던가 잘 믿어지지 않는 것들도 이 책의 중요한 골격이라고 생각해서 늘 그대로 유지해왔다. 



'서평'이라는 형식에 기대어 글을 꾸준히 써오면서 '쓰는 삶'에 대해 생각하곤 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척하며 내 속마음을 글로 쓴 적도 많다. 물론 보기 싫은 마음을 가리고자 지극히 표면적이고 무덤덤한 글을 써낸 적도 많다. 《프롤로그, 에필로그, 박완서의 모든 책》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가로서 글을 쓴 박완서 선생님의 자기고백적인 책이기도 하다. 작가로서 가진 고민과 아픔을 글로 풀어내며 독자들에게 '쓰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끔 만든다. 남들에게 완벽해 보이는 글을 스스로 못마땅히 여기기도 하고, 정말 내 온 마음을 바친 작품이 때로는 외면받는 그런 슬픔도 겪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앞으로 어떤 글을 더 써낼 수 있을까, 조심스럽게 스스로에게 물으며 책을 읽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책을 읽으며 서문과 발문을 주의 깊게 읽은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모든 글이 쉽게 쓰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글이 어떻게 이 세상에 나왔는지 궁금해한 적이 별로 없다. 작가의 서문이나 발문은 특별하지 않는 이상 책을 덮기 전 잠시 훑는 정도였다. 그러나 이 책의 모든 글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지금껏 책을 온전히 읽지 않았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서문과 발문, 그곳에도 여전히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품을 넘어 자신의 삶을.



내 소설이 쉽게 읽힌다고 흔히들 말한다. 나는 독자들을 행간에 끌어들여 머뭇거리게 하고 싶은데 그냥 술술술 읽히는 모양이다. 그래서 좀 쓸쓸하다. 그러나 쉽게 읽히니까 쓰는 것도 쉽게 쓴 줄 아는 소리를 들으면 더 쓸쓸하고 슬퍼지기까지 한다.



책을 다 읽자마자 덮지 않기로 했다. 설사 작품이 쉬이 읽힌다고 할지라도, 작가의 말에서는 느려지고자 한다. 글 하나가 쉽게 읽힌다고 해서 쉽게 쓰였다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또 한 번 곱씹는다. 글로 하여금 글을 사랑하는 법을 또 배워나간다.



"

독자의 몫은 그것을 넘어서

정말 있어야 할 삶의 모습을 꿈꾸는 것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게 나의 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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