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무선) 웅진지식하우스 일문학선집 시리즈 1
나쓰메 소세키 지음, 박유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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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쉬이 알 수도 없고 쉬이 말할 수도 없는 것을 하나 꼽으라면, 단연 '마음'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이 통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없으니까. 설사 이미 마음을 주고받았다고 하여도 자칫 잘못하면 순식간에 틀어져 버리니 말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오가는 자리에는 항상 시간이 흘러도 지울 수 없는 자국이 남는다. 그래서 마음은 늘 어렵다.


나쓰메 소세키 문학의 백미라고 불리는 《마음》은 일본 메이지 시대가 저물어 가던 1910년 전후, 당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의 '관계'를 풀어낸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는 대학생 '나'와 세상을 향해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린 '선생님'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마음으로 서서히 스며드는 과정을 보여준다.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여전히 '관계'라는 틀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문제와 고민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나는 선생님을 가까이 다가가기 힘든 신비를 간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가까이 다가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느낌이 마음속 어딘가에서 강하게 존재했다. 선생님에 대해 이런 느낌을 받는 건, 수많은 사람들 중 어쩌면 나 혼자뿐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런 직감이 옳았다는 것이 후에 입증되었기 때문에, 내가 젊어서 그렇다고 말하든 어리석다고 놀리든 그것을 알아차렸던 나의 직감을 어쨌거나 미덥고 기쁘게 생각한다. 사람에 대한 사랑이 가능한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에 들어오려는 사람을 팔 벌려 안아주지 못하는 사람.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가마쿠라로 피서를 떠난 대학생 '나'는 그곳에서 '선생님'을 보게 된다. 함께 바다 수영을 하며 나는 선생님과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한다. 방학이 끝나 도쿄로 돌아온 나는 문득 집에 방문해도 좋다는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그의 집을 방문한다. 이후로 주기적으로 선생님댁을 방문하며 선생님과 친밀해졌다고 느꼈지만 자신에게 늘 거리를 유지하는 선생님의 태도에 의아해한다.


어느새 졸업을 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아버지가 계신 고향집을 방문한 나는 부모님의 성화에 이기지 못하고 선생님께 취업 자리를 부탁한다는 편지를 몇 통 보낸다. 선생님의 답장을 기다리던 '나'는 아버지의 병이 위독해지자 고향에 더 머물기로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생님으로부터 '유서'와 같은 편지를 받는다. 그리고 선생님이 그동안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들을 알게 된다.



이것은 나 혼자 추측해 본 것이 아니다. 선생님 자신이 그렇다고 고백했다. 다만 그 고백이 어딘가 구름 같았다. 그 구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운 것을 뒤덮어 버렸다. 그리고 왜 그것이 두려운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고백은 막연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내 신경을 떨게 만든 것은 분명했다.



나쓰메 소세키는 '나'의 시선을 빌려 외로운 인간의 마음을 조명한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있음에도 인간의 내면에 감춰진 고독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선생님과 나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선생님을 향한 깊은 마음을 감출 수 없는 나의 태도와는 다르게 온화하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선생님의 태도는 대조적으로 나타난다. 그 사이에서 비롯된 괴리는 인간의 외로움을 더욱 부각시킨다.



"나는 과거의 경험 때문에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실은 당신도 신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당신만은 의심하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은 의심하기엔 너무 단순한 것 같습니다. 나는 죽기 전에 단 한 사람이라도 좋으니 사람을 신뢰해 보고 죽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 단 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되어줄 겁니까? 당신은 정말로 진지한 겁니까?" 



선생님은 자신이 그동안 마음을 쉽게 주지 못한 이유를 편지를 통해 '나'에게 전달한다. 자기성찰적인 이 편지 속에서 선생님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죄의식을 고백한다. 《마음》을 통해 소세키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선생님의 편지 한 통 속에 녹아져 있다. 누군가에게 더 이상 신뢰를 줄 수 없게 되어버린 관계 속에서 홀로 남겨진 인간이 선택할 게 된 한 가지, 그리고 또 그 선택으로 인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에서 받은 또 하나의 깊은 상처.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에게 마음을 쉽게 보여주고, 쉽게 마음 한구석에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음이 오가는 자리에 남은 수많은 생채기들과 흉터들이 만든 단단한 벽은 이후의 나를 마주하는 이들에게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또다시 상처가 생기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마음이 오가기를 거부한다. 누군가를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되어버려 내 안의 외로움을 더욱 키워내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도록 만든다. 마음을 주지 못해 생긴 공허함을 채울 수 없어 슬프고 아프다. 마음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마음에 대해 쉽게 형언할 수 없는 만큼 《마음》을 읽는 동안 어려웠던 동시에 이 모든 것들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어쩌면 소세키는 '마음'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사람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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