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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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삶과 죽음의 뗄 수 없는 관계 속에 놓인 인간은 '죽음'이 무엇일지 생각한다. 사람마다 죽음에 대한 정의와 형태가 달라서인지 영화나 소설에서 '죽음'은 익숙하면서도 자극적인 소재로 드러난다. 그래서 생이 끝나는 그 한순간에 대해 이렇게 다양한 상상과 감정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다. 그럼에도 공통적으로 그 순간의 중심에는 '상실'이 놓여있음을, 모든 작품들은 이야기한다.


소설 장르에 따라 여러 필명을 돌아가며 사용하는 오쓰 이치가 '야마시로 아사코'라는 단독 명의로 국내 두 번째 출간한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역시 '상실'의 순간들을 그려낸다. 여덟 편의 단편 이야기들은 몽환적이면서도 서정적인 호러 이야기를 펼쳐내며 읽는 독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오묘한 분위기를 남겨준다. 야마시로 아사코가 보여주는 뛰어난 심리 묘사는 소설 전체에 기묘한 분위기를 관장하며 소설 속으로 독자들을 끌어당긴다.



소설가라는 인종은 초자연 현상을 겪는 비율이 높다. 정신을 예리하게 다듬어 집필하다 보면 일상생활을 하며 굳어진 마음의 껍데기가 떨어져 나가고 그 틈새로 영적인 존재가 스며든다고 한다. 나 역시 작가 나부랭이다. 동료 작가와 교류하며 그들이 체험한 기묘한 일을 자연스레 얻어들었다. 소개할 수 없는 이야기도 있지만 문제가 없는 범위 내에서 몇 가지는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은 지극히도 현실적인 배경 속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화자들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사원, 주부, 학생 등 평범한 일상을 살아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 속에서 '정말' 소설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어찌 보면 이들의 삶에서도 그런 일이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야마시로 아사코는 바로 이 생각들을 소설의 흥미를 위한 발판으로 사용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이루어질 때의 쾌감. 그의 소설이 가진 가장 큰 트릭인 셈이다.



개천을 날아다니는 나비 꿈을 꾸었다. 환청인지 아닌지는 판단하기 어렵다. 입원 중에 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목소리에 시달렸다. 잘못 들은 소리를 의심하고 부풀려서 내게 한 말이라고 믿었다. 믿음은 존재하지도 않는 말들에 현실과 동등한 질량을 부여했다. 환청은 나를 탓했다. 그 일은 전부 네 책임이다. 



여덟 편의 소설 모두 담담한 문체로 풀어진다. 담담함 속에 있는 이유 모를 묵직한 감정.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을 손에서 쉬이 놓지 못하고 읽은 이유는 다 그것에 있었다. 유독 <머리 없는 닭, 밤을 헤매다>가 그랬다. 상상하기엔 다소 무서운 소재와 전개였지만 서정적인 배경 묘사가 어우러져 풍기는 정취가 소설을 다 읽자 마음 한 편에 뭐라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남긴다. 따뜻하다고도, 쓸쓸하다고도, 애상적이다라고도,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그 감성이 오히려 소설을 쉬이 잊지 못하게 만든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가로등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다. 그래서 맑은 날은 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나와 머리 없는 닭은 마치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 아래를 가고 싶은 대로 나아간다. 아득히 넓고 쓸쓸한 세상이 시야 가득 펼쳐진다. 나는 머리 없는 닭과 함께 언제까지나 밤의 어둠 속을 헤맨다. 



오랜만에 읽은 오쓰 이치의 작품들은 이전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보여주었다. 죽음을 이러한 상상력으로 그려낼 수 있구나,라고 감탄했고 그로 인한 상실이 인간에게 어떤 감정들을 안겨주며 또 남은 사람들이 만들어 낼 또 다른 이야기들이 궁금해졌다. 슬프고도 기이한 이야기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에 감사하다.



각양각색의 인생이지만 하나같이 축복과 비애로 가득하다. 모든 필름이 별처럼 반짝여 내 가슴을 가득 채웠다. 영상이 끝날 때마다 나는 운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죽은 자의 나라로 떠나는 사람에게 위로의 말을 건넨다.

아이들아, 잘 자요.

사람들아, 잘 자요.

잘 자요, 편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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