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이 내려오다 -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어
김동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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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일상에 지쳐 한숨을 돌리려 한다. 가깝거나 멀거나 하는 거리와 상관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나면, 나도 모르게 '겨울에 가면 좋은 여행지 추천'을 검색한다. 그렇게 일상에서 떨어져 여행지에서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걱정과 불안들을 떨쳐내고 나면, 불현듯 한 생각이 그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나타난다. '야, 천국이 있다면 이런 거 아니겠어?' 맞다, 내가 비록 천국엔 가보진 못했지만(?) 천국이 있다면 이런 순간들로 가득하겠지.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의 저자 김동영은 자신이 여행했던 도시에서 있었던 아름다운 순간들을 《천국이 내려오다》를 통해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아름다웠고, 영감이 되었으며, 벅차도록 충만해 사랑이 된 순간들을. 김동영 작가의 발자취를 따라 책을 읽다 보면 그가 느낀 천국의 순간을 만끽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저자는 아주 친절하게 자신이 여행한 그 천국을 지도로 그려 길을 제시한다.



이제까지 천국은 하늘에 있는 밝고 부드러운 빛이 가득한 곳이거나 다음 생에 좋은 신분으로 다시 태어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아닌 무로 돌아간다는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안도했다. 내가 믿는 종교는 천국이 있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죽으면 천국이든 지옥이든 그리고 환생이든 아무것도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체를 태우는 불씨처럼 붉게 퍼지는 노을을 등지고 선 그의 표정을 보았다. 내가 절대 지을 수 없는 가장 평온한 표정이었다. 



《천국이 내려오다》는 독특하게도 죽음의 도시부터 시작한다. 죽음 이후의 세계로 연결된다는 갠지스강이 관통해 인도인들에게 특별하고 성스러운 도시로 알려진 바라나시, 김동영 작가는 그곳부터 천국을 찾아간다. 모든 죄를 씻어내며 정화되어 스스로 천국을 맞이한 저자는 일본, 중국은 물론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이슬란드, 미국 등 전 세계의 도시들을 방문한다. 그의 이야기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도시에서 쉽게 접하지 못할 자연 속에서의 순간들이었다.



전기가 하루에 몇 시간밖에 들어오지 않는 이 섬은 밤이 되면 모두 어둠에 갇혀버렸다. 우리는 여기저기에 촛불을 켜고 브 아래 널브러져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게 내가 돈 뎃에 머물면서 한 일의 전부였다. 단조롭고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그곳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느껴지는 고요함과 적막함, 그리고 그것이 주는 편안함. 지금같이 바쁘게 살아가는 이 순간들의 연속에서 고립은 이유 모를 두려움을 안겨준다. 두려움이 외로움을 낳고, 그 외로움은 괴로움을 낳고. 그렇게 서서히 이 삶이 아프게 느껴지고, 그곳이 지옥이라고 느껴진다. 그러나 그 치열한 순간들에서 한 발자국 떼는 순간, 그 모든 감정들은 쓰고 있던 가면을 벗어던진다. 숨통이 트이는 기분과 더불어 이제는 그 모든 것과 하나 되는 여유로움까지. 여행이 주는 묘미가 바로 그것이 아닐까.


하지만 《천국이 내려오다》를 읽다 보면 저자가 여행한 곳이 정말 특별한 장소라고 느껴지지 않는다. 김동영 작가는 그 장소에 살고 있는 누군가의 일상 속으로 들어간다. 각기 다른 장소,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는 이야기의 이면에는 어쩌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일상 역시 누군가에겐 천국이 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나의 일상이 이루어지는 장소에 들어온 누군가는 또 다른 경험을 얻을 수 있을 테니.



긴 여행에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익숙한 천장과 내 몸의 일부 같은 폭신함, 살결 같은 이불 그리고 나의 작은 식솔들에게 둘러싸여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밖의 배달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니 아무리 좋다는 곳에서도 느끼지 못한 안정감이 느껴진다. 창전동에서는 어디로 갈지, 뭘 할지 그리고 애써 특별한 걸 찾아낼 필요도 없다. 그냥 누워만 있으면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있는 곳이 천국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천국에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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