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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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급생》은 두 번째로 만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었다. 오랜만에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책의 매력을 또 한번 느끼기 시작하면서 나는 오래 전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에 빠졌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빠른 사건 전개로 인한 높은 흡입력으로 그의 작품에 매혹되어 《방과 후》, 《동급생》을 눈여겨 보고 있었던 차에 후자를 택했다.처음 읽었던 그의 작품이 너무 강렬했던 터라 그보다 감흥은 덜했지만 그럼에도 흥미로운 전개 방식이 인상에 남았다. 그 사이에 많은 책들을 읽은 터라 내용이 헷갈릴 즈음 이전과는 다른 산뜻한 새 표지의 《동급생》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앞머리를 내린 두 명의 소년, 소녀가 인상 깊었던 기존의 표지와는 달리 리커버된 《동급생》은 소설의 내용을 더 반영하여 담아낸다. 소설 속 사건이 해결되면서 독자들은 자연스레 표지 속 붕대 감긴 손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이 사건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 니시하라의 마음을 위한 것이니까. 히가시노 게이고는 냉철하면서도 여동생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남고생을 매력적으로 그려내며 독자들을 사건 속으로 끌어 당긴다.



하루미의 불행은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욕심 많은 인간들의, 추악한 싸움의 희생양에 불과헸다. 그것을 알았을 때 나는 결심했다. 그 녀석들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그러고 언젠가 꼭 복수하겠다. 하루미의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들겠다―.



사건은 한 여학생이 교통사고를 당하며 시작된다. 니시하라는 자신이 주장으로 있는 야구부의 매니저인 유키코가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히로코를 통해 유키코가 임신한 상태였다는 것을 알게 된 니시하라는 자신이 아이의 아버지임을 확신한다. 니시하라는 유키코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떨칠 수 없어 사건을 파헤치기로 한다. 유키코가 교통사고를 당하던 날, 학생부 지도 교사 미사키가 그녀를 쫓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녀의 죽음이 학교와 관련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미사키 선생이 학교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유력한 용의자로 니시하라가 지목된다. 과연, 학교를 둘러싼 끔찍한 두 사건의 진실을 무엇일까?



그게 트릭이야. 이대로 지금 사건이 매스컴에서 다뤄지면 아무래도 학교 측의 학생지도방침이 문제시돼. 그런데 먼저 야구부 출장 사퇴라는 방법을 쓰면 사고 책임이 야구부 측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지. 즉 학생의 불순한 이성교제 쪽으로 세상의 눈을 호도하는 게 목적이야.



《동급생》을 통해 히가시노 게이고는 교육 현장에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교사와 학생이라는 관계 속에서 애정이 결핍되어 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키코의 죽음과 얽힌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자 학교 측에서는 이 사건을 최대한 조용히 넘어가고자 한다. 유키코의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은커녕 그녀의 죽음으로 인한 학교의 소란과 논란이 하루 빨리 사그라들기를 바라며 그 누구도 걱정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학생들을 통제하려고 억압하려는 모습이랄까.


그러다보니 니시하라와 그의 친구들이 학생부 교사들로부터 받는 제재는 굉장히 크게 그려진다.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 볼 노력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잘못을 강조하며 조용히 할 것을 권하는 교사들의 모습들은 교육 시스템에 대한 문제를 다시 한번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그 시스템 속에서 학생과 교사,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듯한 모습은 소설을 읽는 내내 어딘가 불편하게끔 만든다. 잘못된 교육 시스템 속에서 함께 상처받은 사람들로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수는 없었던 것인지. 그저 대립하는 두 관계가 조금은 마음 아프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우리 학생들은 선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인권 무시라고 할 정도로 교사들은 학생들의 사생활을 침해하지만 이쪽에서는 상대는 전혀 볼 수 없다. 그런 구조인 것이다.

그 구조를 부숴버리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소설의 결말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이 구조에 대해 어떠한 해결책도 남기지 않는다. 흥미를 위한 추리소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소설의 결말은 다소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게 된다. 결국 아이들을 생각하지 않은 어른들의 탐욕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니시하라를 통해 다시 한번 조명시키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뒤바꿀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내지는 않는다. 반전 있는 결말이긴 했지만 시원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아마 그 이유에서가 아닐까. 


그럼에도 고등학생에게 비극적인 결말은 어울리지 않으니 어쩌면 《동급생》은 최선의 결말을 택했을 지도 모른다. 여전히 자신의 꿈을 위해 나아가는 고등학생의 희망적인 모습을.



"니시하라, 여동생에게 시합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잖아. 그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그 꿈이 무너지지 않도록 어떻게든 막는 일은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 그러면 니시하라에게도 인정을 받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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