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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탕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17
이승우 지음 / 현대문학 / 2019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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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탕은 대서양에 닿아 있는 작은 항구도시다. 웬만한 지도에는 나오지도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곳이 세상의 끝이라고 말한다.
서점에 들러 서가에 놓여있는 수많은 책 중 제목이 눈에 밟혔다. 《캉탕》. 발음하기도 어렵고, 익숙하지도 않은 제목을 가진 책을 집어 들어 첫 문장을 읽어 보았다. 웬만한 지도에 나오지도 않아 어딨는지도 알 수 없는 그 곳, 첫문장으로 하여금 《캉탕》이 궁금해졌다.
《생의 이면》, 《사랑의 생애》로 추천받은 이승우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으로 읽었다. 초반에는 쉽게 읽히는 흡입력에 놀랐지만, 이내 이 소설을 완벽히 이해하기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을 깊이 음미할 수 없었던 이유는 내가 아직 《모비 딕》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캉탕》을 관통하는 《모비 딕》을 읽은 독자라면 이 소설을 훨씬 더 깊이 끌어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훗날 《모비 딕》을 읽은 후에 이 소설과 다시 조우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캉탕》의 흡입력은 대단했다. 5월 중순, 항구를 중심으로 일주일간 열리는 축제 마지막 날 바닷속으로 자처해 뛰어드는 사람들. 바다의 신을 달래기 위해 오래된 인신 희생 제사의식이 순화된 형태의 풍습은 '캉탕'을 더욱 신비하고 오묘한 곳으로 그려낸다.
나는 아무 데도 갈 곳이 정해져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 데도 갈 수 없었다.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 데도 갈 수 없다. 아무 데나 갈 수 있는 사람은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라 무능한 사람이다. 허용된 것이 아니라 내버려두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이명에 시달리던 한중수는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 J의 권유로 캉탕을 향해 떠난다. 오래 전, 소설 《모비 딕》을 동경해 바다로 떠난 J의 외삼촌이 머물게 된 캉탕에 도착한 한중수는 J의 조언대로 걷고 보고 쓴다. 머릿속의 먼지를 몰아내기 위해 걷기를 택했다던 니체와 루소처럼 한중수는 캉탕의 축축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고 또 걷는다. J의 외삼촌인 핍이 캉탕에 머물게 된 까닭과 캉탕의 선술집 피쿼드에서 만난 선교사 타나엘이 회고록을 쓰는 까닭을 한중수는 옆에서 지켜보며 곱씹는다. 그들이 왜 그곳에 머물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졌는지에 대해.
우리가 걸어서 거기에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걸으면, 걸은 만큼 거기가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가 두 다리로 부단히 걸어 그 시간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부단한 걸음에 의해 그 시간이 우리에게 오는 것이다. 여섯 시간을 걸었다. 나는 오늘 여섯 시간만큼 나를 밀어낸 것이다.
캉탕에 머물게 된 세 남자는 저마다 각기 다른 과거의 사실로 고통받는다. 과거는 그들을 아슬아슬한 절벽 위로 밀어넣는다. 과거의 사실들을 묻어둔 채 현재 캉탕으로 오게 된 그들이 할 수 있는 선택지는 넓지 않다. 축제 행사의 하나로 깊은 바다의 심연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을 그곳에 놓고 온다. 물 위로 올라온 그들은 새롭게 태어난 듯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에 반해 세 남자의 모습은 사뭇 다른 색채로 그려진다.
'죄와 구원'. 소설의 해설에서는 그렇게 표현한다. 열심히 걸어나간다는 것은 곧 삶을 의미하고 그 걸음의 끝에는 우리의 죄가 있다. 결국 삶은 자신을 향한 수행이다. 이 걸음의 끝에서 구원받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소설에서는 '쓰는' 행위를 보여준다. 선교 활동을 완벽히 끝내지 못한 타나엘이 선택한 것은 회고록이며, J의 권유에 따라 한중수 역시 글쓰기를 택한다. J의 어떤 답변도 듣지 못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글을 써서 J에게 보낸다. 자신에 대한 고백. 그 고백으로 하여금 한중수는 자신의 죄의식을 조금씩 털어간다.
아직까지 삶을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 없이, 그저 앞을 향해서만 걸어왔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를 벼랑 끝으로 몰아 넣을 과거가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어쩌면 걸어 온 시간이 아직은 되돌아보기에 짧다고 느껴지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로 삶에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문득 《캉탕》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걸음의 끝이 향할 방향을 다시 정할 수는 있을 테니.
무슨 일이든 일어난다. 무슨 일이든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다. 무슨 일이든 일어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 안에 있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것이 또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