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잔상들
장혜령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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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의 것들은 정확한 어떤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눈에 보이는 형태 그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유형의 것들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들은 명확한 한 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눈에 보이지 않아 하나의 말로 끝낼 수 없다. '기쁘다'라는 큰 감정의 카테고리 속에서 사람마다 다른 정도의 기쁨을 느끼고, 다양한 형태의 기쁨을 느끼니 말이다. '슬프다'라는 감정도 그렇다.


수많은 마음과 감정 속에서 가장 표현하기 힘든 것은 '사랑'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그만큼 표현도 많은 것이 아닐까 싶고. 드라마 <도깨비>에서는 사랑을 느낀 그 순간을 김인육 시인의 《사랑의 물리학》의 표현을 빌려와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 첫사랑이었다."라고 말한다. 영화 <러브스토리>에서 제니퍼는 올리버에게 "Love means never having to say you're sorry.(사랑은 미안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야.)"라고 말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은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다. 사랑하는 사람, 그는 사랑받는 사람이 자기 안의 사랑을 일깨우는 역할일 뿐임을 아는 사람이다. 무수한 사랑과 이별 끝에도 자기 내면에 결코 사라지거나 부서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아는 사람이다.



문득 읽게 된 책 한 구절에 이끌려 《사랑의 잔상들》을 읽게 되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받는 사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하게 되다니. 사랑을 받는 일도, 사랑을 하는 일도 모두 어렵다. 그럼에도 두 일 중 어떤 일이 더 어렵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해주는 일은 그만큼의 노력이 더 필요할 테니. 자신이 가진 온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음을 충분히 알기에. 그래서 《사랑의 잔상들》을 읽는 시간이 좋았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그 사랑을 감싸 안는지 잔잔하게 풀어내기 때문이다.




당신을 사랑해요, 란 말에 대해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 라는 답을 듣길 바라는 한 사람을 떠올려본다. 두 개의 진술은 실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저는 잘 있어요, 라는 언술 안에는 듣는 상대가 어찌할 수 없는, 말하는 존재의 상태가 내포되어 있을 뿐이다. 그것은 들어와도 된다는 승인과, 상대가 읽었다는 끄덕임과, 하나의 답장과는 무관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쓰는 사람은 어쩔 수가 없다.



어느 순간 사랑에 갑과 을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당연한 말이 되어 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의 수신인에게 열심히 보낸 그 사랑이 되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알고는 있다. 그럼에도 더 말하지 못해 주체할 수 없는 그 마음을, 혹여나 이 마음에 짧은 답변이라도 남겨줄까 끙끙 앓는 그 마음을. 《사랑의 잔상들》은 그동안 사랑하는 사람들이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들을 대신 말해준다. '당신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감정이 이것은 아닌지요?'라는 물음을 글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말한다.


돌아온 짧은 답변에 사랑하는 사람의 심정은 더욱 모호해진다. 그는 나에게 어떤 의미로 말을 한 걸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나도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답이기를 바라지만 그것으로 해석할 수 없는 이 애석한 답을 부여잡고 밤새 고민한다. 어느새 머리는 터질 지경이다. 이렇게라도 보내지 않으면 답답함에 오늘 밤잠은 다 설칠 것 같은 마음이다.




사랑이란 결국 자기 안에 머무는 감정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대상이 죽거나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할 때에도 그 사랑이 완전히 소멸되지는 않음을 경험한다. 외로움 혹은 다른 어떤 이유 때문에 사랑을 좇는다 해도 사실 그것은, 철저히 자기 안에 머문다.



그렇다. 우리가 사랑이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그 순간이 찾아와도 사랑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그것에 무뎌질 뿐이다. 얼마나 짙은 잔상을 남긴 사랑인지에 따라 그 느낌은 사뭇 다르겠지만. 우리 안에 머문 그 사랑으로 우리는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도 있을 테다. 그래서 이 끝의 순간까지도 장혜령 작가는 애틋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두근거리는 설렘부터 이별이 가져오는 외로움과 공허함의 순간까지. 그 모든 것을 '사랑'이라고 한다. 우리 모두는 매일 사랑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랑 속에 살고 있는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당신의 마음에 존재하는 사랑을 마주하길 바라며.



"마음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이, 그러다 그들에 대한 감정이 변화하고 사라지게 되는 것들이 지금도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네가 나에게 그랬듯이, 내가 너에게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그러므로 흘러가기 때문에 우리가 목격하는 모든 장면은 궁극적으로는 슬픔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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