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루티드
나오미 노빅 지음, 오정아 옮김 / 노블마인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몇몇 진짜 마법사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야가라는 인물이 만들어졌고 세월이 흐르면서 거기에 상상력이 덧붙여지고 과장이 더해져 신화와 같은 위상을 얻게 되었지." / p. 380



어릴 적 나는 책상 밑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세계 동화 전집이 그 자리에 꽂혀 있다는 이유로. 다양한 국가의 전설, 민담 등을 바탕으로 구성된 동화 전집 속에서 유독 눈길을 끈 동화책 한 권이 있었다. <아름다운 바실리사>. 전체적으로 어두운 분위기와 무서운 마녀가 등장하지만, 의외로 마녀는 주인공인 바실리사에게 어떤 해도 입히지 않는다. 물론 바실리사의 옆에는 바바야가가 원하는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도와준 귀여운 인형 하나가 있었으니까.


《테메레르》로 전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훔친 나오미 노빅은 어린 시절 즐겨 읽었던 '바바야가'에 관한 폴란드 동화에서 영감을 받아 《업루티드》를 집필한다. 인간의 끝 모를 공포와 두려움을 흡수하는 비밀의 숲 '우드'를 배경으로, 그 곳을 한 때 관리하고자 했던 마녀 바바야가를 전설로 만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바야가라는 마녀가 가진 원래의 어둡고 무서운 분위기를 유지하며, 나오미 노빅은 자신만의 상상력을 곁들여 한 소녀의 성장을 그려낸다.



우리는 골짜기의 사람들이었다. 골짜기에서 태어나 딸을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도 그곳을 떠나지 않을 정도로 골짜기에 깊숙이 뿌리 내린 사람들. 그리고 우리는 우드가 들이마신 그 힘을 들이마시며 골짜기에서 자랐다. 문득 탑의 내 방에 걸려 있던 그 이상한 그림이 떠올랐다. 스핀들과 그 지류들이 은색 선으로 표시된 그림. 이상한 끌림이 느껴져서 내가 본능적으로 가려버린 그 그림. / p. 440



10년에 한 번씩 드래곤은 드베르닉 마을에서 열일곱 살의 소녀들을 데려갔다. 소녀들은 저마다 울음을 터뜨리며 계단에 줄지어 서 있었고, 그는 유력 후보로 생각되었던 카시아가 아닌 천방지축 소녀 아그니에슈카의 손을 낚아챈다. 나오미 노빅은 아그니에슈카의 눈으로 드래곤과 상황들을 바라보며 독자들이 그녀의 성장을 응원하도록 유도한다. 드래곤을 따라 마법을 공부하고, 새로운 마법의 힘을 느끼고 깨달으며 더 나아가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우드의 힘에 맞서도록 만든다.


천방지축이지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가족들을 비롯해 드베르닉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이 느껴지는 아그니에슈카는 주체적이며 독립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아름다운 바실리아> 속의 바실리아가 자신을 괴롭히는 계모와 두 언니에게 굴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처럼. 그러기에 《업루티드》 속 아그니에슈카는 누구보다 빛나는 존재로 그려진다. 서서히 성장하며 빛날 수 있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것, 그 모습만으로도 《업루티드》를 읽으며 흐뭇해졌다.



나는 드래곤의 모든 경고를 무시했다. 이 끔찍한 나무를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내 안의 모든 것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쏟아내고 여기서 죽어버릴 것이다. 내가 살던 세상, 내가 카시아를 이 오염된 괴물에게 먹이로 남겨주고 돌아갈 세상을 나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내가 일으킨 지진으로 으스러져 죽는 편이 나았다. 반드시 놈을 함께 데려갈 것이다. 나는 땅을 파헤치며 우리 모두를 집어삼킬 구덩이를 열 준비를 했다. / p. 169



살짝 아쉬웠던 점은 나오미 노빅이 만들어낸 로맨스랄까. 《업루티드》의 초반부에, 아그니에슈카를 선택한 드래곤은 그녀가 신비한 능력을 가졌음을 깨달으면서 그녀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둘 사이의 미묘한 감정이 오가기는 하지만, 소설의 후반부가 될 때까지 확실한 감정을 주고받지는 않는다. 아그니에슈카의 마녀로서의 성장에 치우쳐서일까, 소설의 끝이 다가와서야 개연성 없는 로맨스가 펼쳐친다.


마법과 숲, 판타지적 요소로는 충분했다. 더구나 한번 펼치는 순간 놓을 수 없는 가독성까지. 67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을 쉬지 않고 읽게 만들었던 나오미 노빅의 상상력과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아그니에슈카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나오미 노빅이 남겨놓은 상상력은 오로지 독자들의 몫이다. 그 어떤 상상이든, 모두 새로운 이야기의 뿌리가 될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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