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작의 역사 - 우리와 문명의 모든 첫 순간에 관하여
위르겐 카우베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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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모든 질서의 근본이라는 오래된 표상은 여기서 맞지 않는다. 이른바 시작이라는 것을 면밀하게 관찰할수록, 그것은 더욱 알 수 없고 우연하게만 보이니 말이다. / p. 287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만들어지기까지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인류는 이전에 없던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발명하며 많은 것들을 이룩해왔다.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은 역사를 쓸 가능성의 길 위에 서서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는 당연하게 여기게 된 사회적 질서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모든 시작의 역사》는 그동안 역사책에서 깊이 들어가지 못했던 역사적인 첫 발자취들을 짚어낸다.


《모든 시작의 역사》는 흥미로운 목차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당연하게 여겼던 인류의 직립보행은 물론, 불의 사용, 말하기의 시작 등 인류의 첫 발자취들을 그 어떤 역사 관련 책보다 낱낱이 파헤친다. 인지를 하기 시작한 인류들을 미술을 통해 자신들이 보고 느낀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을 담아내고, 음악과 춤을 통해 자신들의 감정들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문명은 그런 바탕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게 된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 변화를 맞이한 사람들이 그것의 기록을 남겼거나, 심지어 그렇게 하기로 결심했다는 가정을 하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사회적 변화가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의도가 이런 변화를 결정했다거나 또는 심지어 그 방향을 결정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 p. 194



위르겐 카우베는 우리가 자명하다고 확신하는 것들의 시작을 《모든 시작의 역사》을 통해 모두 뒤엎는다. 고고학, 역사학, 인류학 등을 바탕으로 하여 유전한, 언어학, 문학 등 방대한 영역의 학문을 토대로 하여 그것들의 시작을 자세하게 탐구한다. 그리고 지금의 쓰임새들이 대부분 그것이 생겨난 이유가 아니었음을 알도록 만든다. 아무 연관성이 없던 사건들은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서로 결합되면서 지금의 결과를 낳았을 뿐임을 인지하도록 한다.



시작들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언제나 여러 가지가 필요했다는 사실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그 어떤 문명적 업적도

단 한가지 메커니즘이나 단 한 가지 원인 덕에 생겨나지 않았다.



불편한 지식이 생각의 지평을 넓혀줄 수도 있다는 어느 저자의 말처럼, 《모든 시작의 역사》은 가끔 나의 지식 배경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불편한 지식들을 다양한 관점으로 제시한다. 조금은 친절하게 생각의 환기를 위한 효과로 그림 자료가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동물과 인간이 다른 점을 '말하는 행위'로 구분하거나 세상에서 들어온 불확실성을 깨버리는 데에 '언어'가 큰 역할을 한다는 등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어 정확히 표현하기 어려웠던 그 쓰임새를 《모든 시작의 역사》가 명확하게 정리해주어 흥미로웠다.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시작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게 되면, 우리는 이 가능성의 길 위에서 더 나은 사유들로 가득한 역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멀고 낯선' 고대에서부터 지금까지 인류는 충분히 많은 것들을 해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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