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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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지만 그 소녀에게는 너무도 일렀다. 소녀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음식을 만드는 법도, 글을 읽고 쓰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했던 소녀가 배운 것은 '외로움' 이었다. 평생 야생동물을 연구해온 델리아 오언스는 일흔이 가까워진 나이에 첫 소설을 출간한다. 누군가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맑은 곳을 연상케하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무서운 입소문으로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게 된다.

델리아 오언스는 자신이 그간 자신이 벗삼았던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소설의 배경으로 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한 소녀를 세워둔다. 외로움으로 가득했던 소녀를.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카야라는 소녀의 성장이야기와 의미심장한 러브스토리, 또한 살인 미스터리 소재를 넣어 법정스릴러를 그려낸다. 카야의 행적을 따라 소설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녀의 마음 한 편에 남아있는 외로움을 함께 느끼게 된다.



"카야, 조심해, 꼭. 누가 와도 절대 집 안에 들어가지 마. 너를 잡아갈 수 있어. 습지 깊은 데로 도망가서 덤불에 꼭꼭 숨어. 발자국 지우는 거 잊지 말고. 오빠가 가르쳐줬잖아. 너도 아버지를 피해서 숨을 수 있어." /p. 24





거기서보면 엄마가 꼭 손을 흔들어줄 거야. 하지만 온 힘을 다해 뛰어갔을 때는 파랑색 여행 가방이 시야에서 막 사라지고 있었다. 가방은 숲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계단에 올라가 기다리려고 돌아선 순간 카야의 가슴에 검고 고운 진흙 덩어리처럼 묵직한 슬픔이 얹혔다. / p. 15


《가재가 노래하는 곳》은 카야의 어머니가 집을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다섯 아이 중 막내였고 언니 오빠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났던 카야는 어머니와 조디 오빠를 유독 따르며 좋아했지만, 술만 먹고 들어오면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에게 지친 가족들은 집을 떠나기로 마음 먹는다. 어린 카야는 그저 집에 남아 떠난 가족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갈매기들과 친구로 지내며 늪지에서 자유롭게 지내던 카야는 어느덧 학교 갈 나이가 되었고, 글자를 모른다는 놀림으로 아이들을 피해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늪지에서 살아가는 법을 혼자 터득하기 시작한다.


소설 속 카야의 어린 시절은 애니메이션 <타잔>을 떠올리게 만든다. 유인원 사이에서 자란 타잔은 그들을 보고 학습한 결과로 자신 역시 유인원이라 생각하며 살아가고, 늘 자연 속에서 다른 동물과 어울려 지낸다. 물론 카야는 타잔보다는 마을에 가까운 늪지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람들의 삶과 가깝다. 그러나 글자를 읽을 줄 몰라 그림으로 표현하고, 다른 사람들을 경계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그런 장면들을 연상케 한다.


델리아 오언스는 1952년부터 시작된 카야의 어린 시절과 1969년의 살인 미스터리를 교차로 전개하며 소녀의 성장을 그려낸다. 카야의 성장이 두드러지는 부분은 단연 '첫사랑'이었다. 배를 타고 늪지를 잠깐 벗어난 카야는 길을 잃어 테이트를 만나게 된다. 늪지에서 발견할 수 있는 귀한 깃털을 서로 몰래 가져다 놓으며 두근거리는 설렘을 느끼게 되고, 테이트는 카야에게 글을 알려주며 그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하지만 카야는 꼼짝도 하지 않고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소년에게서 강렬한 이끌림과 강렬한 밀어냄이 동시에 느껴지는 바람에 그냥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조용히 노를 저어 집으로 돌아갔다. 심장이 갈비뼈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 p. 101



무엇보다도 카야의 감정을 굉장히 섬세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읽는 독자들은 카야의 감정을 무엇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소중한 것이 떠났을 때 가슴을 묵직하게 누르는 그 느낌, 강렬한 첫사랑의 떨림, 그리고 또 다시 기약없는 기다림 등 아픈 사랑을 해본 경험이 절로 떠오르는 감정 묘사가 두드러진다. 이렇게 섬세한 전개 때문인지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읽는 내내 카야가 가깝게 느껴졌다. 마치 오랜 친구처럼.




인생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거라지.

하지만 난 알고 있었어.

사람들은 결코 내 곁에 머무르지 않을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단 말이야.



사람들은 그녀 혼자 자기 몸을 방어하며 살라고 저버리고 떠났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여기 있게 된 소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 앞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됐다. 너무 일찍 외로움을 알아버린 소녀에게 어떤 말을 전할 수 있을까. 평생을 걸쳐 아무도 없이 사는 법을 배운 소녀에게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가재가 노래하는 곳, 그곳에 외로운 소녀가 하나 있다. 그리고 그 소녀가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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